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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Jun 19. 2019

[가짜감정 리뷰](1)엄청난 책을 만나다.

이 책은 2019년 나의 베스트 책이다. 내 감정은 나의것.

* 이 글은 꽤나 긴 글이 될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이 책은, 알라딘 웹서핑에서 어쩌다 우연히 걸린, 평점 9.1을 넘긴(검증이 어느 정도 됐다는 의미겠다.) 책이라 언젠가 한 번 봐야지~하고 올해 구매했던 책이다. 그냥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내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지난 월요일, 이상하게 이 책을 보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책이 나에게 가져가 달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들고 동네 커피숍으로 갔다. 오전 10시에 들어가서 오후 4시 30분경 나왔다. 그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밑줄을 긋고 또 그었다. 샤프로 나의 사례를 적고 또 적었다.


책을 많이 구매도 하고, 또 중고로 판매도 하기에 웬만하면 밑줄을 안 그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나, 이 책은 첫 장을 넘기고서부터 그냥 바로 노란색 싸인펜으로 줄을 죽죽 그었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그런 책이다.



사실, 난 이 저자를 알지 못했다. 저자 소개란에 나와있는 이분은 서울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다음 서울대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한 뒤 미국 플러신학교에서 가족치료학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상담교수를 역임한 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기독교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가족상담 분야의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손꼽힌다고 한다.


딱딱하고 권위적일 것 같은 스펙의 보유자지만 너무 알기 쉽게,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내용으로 큰 인사이트를 줬다. 이 책은 두세 번, 아니 그 후로도 두고두고 보면서 어떤 부분에서 더 강하게 느낌이 오는지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감정에 대한 이야기와 기천, 진영 부부의 상담 리포트가 책 속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신기한 것은 이 책 속 진영이 영락없이 내 모습 같아서 깜짝 놀랐다. (추측하건대, 기천은 아마도 나의 남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데 이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본문 중 요약]

감정이 풀어져야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감정이 안 풀리면 쓸데없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돼 항상 지친 느낌이다. 그러나 감정이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 삶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거슬린다] 것은 화의 약한 단계이다. 거슬리는 감정은 어쩌면 두려움, 외로움, 열등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즉, 거슬림은 표면 감정이고, 두려움과 외로움은 이면 감정이다.

거슬리는 감정의 근원을 알고 이를 조절하면 된다. 한 번의 싸움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유 없이 화가 나고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든다면 [나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자.

어떤 사람이 주변의 모든 사람과 갈등관계에 있다면 분노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여러 감정들은 이런 욕구들이 충족되거나(긍정감정), 혹은 충족되지 못해서(부정적 감정) 발생한다.

[건강한 자기애의 형성]은 건강한 성격의 기초가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지속적인 돌봄을 제공하면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 기본적인 신뢰를 갖는다. 안정적 애착이 잘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엄마와 안정된 유대(애착)를 형성하지 못하면 건강한 자기애를 형성할 수 없다. 이를 <불안전 애착>이라고 한다. 채워지지 않은 자기애의 느낌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사랑받으려고 하고 소속되려고 애쓴다.

이렇게 자신을 잃고 타인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은 모두 마음 깊은 곳에 들어 있는 수치심 때문이다. 수치심으로 인해 사람들은 기형적 삶을 살게 된다.

<감정을 왜곡하는 방법> 에는 1) 감정이 없는 것처럼 살기 2) 감정만 있는 것처럼 살기 3) 감정을 꾹꾹 눌러서 참다가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다.

다른 사람이 원인 제공을 했다 하더라도 나에게 생긴 감정은 <내 것>입니다. 내가 그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화가 나고 분노한 감정은 결국 내 것입니다. 상대방의 자극에 의해서 화가 난 것이긴 하지만 상대는 자극을 했을 뿐 화가 난 것은 나 때문이다. 내 안의 분노, 열등감, 외로움 등이 건드러지면서 화가 난다. 똑같은 말을 들어도 여유로울 때는 화가 덜 난다.

상대방이 자극한 감정 덕분에 내가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나의 깨달음


(본문 중)

진영 씨는 당위적인 사람이다. 당위적인 사람들은 [~해야 한다] 같은 형태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진영 씨는 일 잘하고, 똑똑하고 분명한 사람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자신의 외로움을 해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진영 씨는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자기 일을 알아서 잘하는 것이 부모에게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었다. 결혼해서도 남편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느낌은 남편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은 자신의 외로움 때문이란 것을 깨닫게 되자 남편에게 화를 낸 것이 미안해졌다.

진영 씨는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기천 씨에게도 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영 씨가 할 수 없는 일이다. 필사적으로 막고 싶은 일이다.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플수록 진영 씨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보다 요구하고 명령하는 방식으로 다그친다. 자기 마음이 아픈 것은 다 기천 씨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요구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험한 말을 하거나 잔소리를 하거나 심지어는 신세타령식의 비난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천 씨는 진영 씨로부터 더 멀어지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악순환의 레일에 오른다.

진영 씨는 남편이 멀어지면 억울하다.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감정들 즉, 외롭고 허전한 느낌들 때문에 부드럽고 친절한 기천 씨를 선택했는데 속은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메시지를 전달했는데도 기천 씨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으면 진영 씨는 이제 익숙한 이면 감정인 외롭고 허전한 느낌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

이제 진영 씨는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에선 당당하고 싶은 마음에 화를 내는 자신과 또 한편에선 외로움을 느끼는 찌질한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자신이 외로운 여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란 걸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 인정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란 자신을 지탱하던 지지대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진영 씨의 지지대는 '나는 똑 부러지게 내 일을 잘 해내는 괜찮은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외롭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자신이 아주 작게 느껴졌다.

진영 씨는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진영 씨는 이런 세상에 있다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일에 집착해 왔다는 사실을 이제 충분히 인식했다.



1) 알아서 척척척 똑똑하고 분명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 [인정받기] 위한 내 안의 [외로움]의 해결책이었다.


나는, 사례자 진영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마지막 국민학교 세대다) 시절 짝꿍 손을 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등, 하교를 하던 유쾌한 아이였다. 친구들은 자꾸 걸으면서 내가 자기들을 바깥으로 민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초, 중, 고 시절 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고 작은데 앞에서 까불다 선생님한테 알밤을 쥐어 박히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애들끼리 쥐돌이 파라 이름 불리며 중학생 시절 말뚝박기도 하고...(나는 명랑하고 수다스러운 개구진 아이였다.)


그렇게 지냈던 나는.... 어느 시점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성공> 해야 한다는 강한 열망과 야망에 사로잡혔다. 그 후 나는 야무지고 똑 부러진 사람이라는 주변의 평가를 받으며, 첫인상이 왠지 깐깐한 B사감 같기도 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알고 보면 어리바리하다고 남편은 내 별명을 허투루로 지었다.)


책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외로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어봤다. 그것에 대한 나의 히스토리를 생각해보니...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외로웠던 순간들]

-[ss교회 중등부 1학년 시절] : 어울릴 친구가 별로 없어서 외로웠다. 이 느낌이 지금도 교회 가기 싫어하는 무의식과 연관이 있는 걸까?(당시 친오빠는 또래의 어울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고2 수학여행] : 부모님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일부러 안 갔다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두루두루 어울리는 친구는 많았지만 단짝과 같은 절친이 없던 내가 일부러 핑계를 대고 안 간 듯하다.
-[유치원 1박 2일 캠프] : 당시 하계동 벽산아파트로 이사 가서 일곱 살 때 별들 유치원이라고 조금 먼 곳을 차 타고 다녔다. 그때 1박 2일 캠프를 갔는데 내가 여름 샌들 한 짝을 잊어버려서 방마다 울면서 찾으러 갔던 것 같다. 그리고 캠프파이어 등 단체로 행사할 때 오줌을 싼 것도 같다.
-[개척교회 봉사] : 중 2 때부터 교회 반주자로 한 이 인고의 세월... 나는 또래가 없어 늘 외로웠던 것 같다.
-[전학 간 경험들] : 초3, 중2, 고3 때 부모님 일로 인해 이사 후 전학을 갔었다. 표면적으로는 빠르게 적응해 친구들 잘 사귀었으나 내면적으로는 기존의 친구를 매우 그리워하고 슬퍼했던 것 같다.
-[소규모 회사 재직 시절]: 나 빼고 2명밖에 없던 곳에서 상황 상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 같이 뒷담화 하고 일부러 비위를 맞췄던 것 같다. 비록 그들이 후임일지라도. 외톨이가 되기 싫었던 게 큰 듯하다.




2) 나는 자기주장 잘하고 표현을 잘한다고 생각했으나

 -> 감정을 왜곡하는 방법 중 하나인 <감정만 있는 사람>의 패턴으로 살고 있었구나.


이것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사람들이라 하는데, 모든 행동의 근거는 현재 경험하고 있는 감정이라고 한다. 화가 나면 바로 화를 내고, 화가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 좋게 행동한다.


사실, 이 부분은 결혼 이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 스스로도 평화주의자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혼 이후 받아주는 상대방과 살면서 숨겨져 있던 본성이 드러난 것 같다. 또한, 이 부분은 성장기 내가 엄마한테 불만을 가졌던 요소 중 하나였는데(기분파) 나 또한 그 모습 그대로, 가끔은 더 심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남편에게 가장 심한데,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운다고 한다.(나는 주로 화) 이들은 소망을 감정의 형태로 분출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을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사람으로 어른이 돼도 아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의 이유는, 환상의 세계 속에서 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현실을 바라보며 슬픔을 느끼지만 현실의 슬픔은 환상 속의 다양한 감정들로 바꿔 버린다. 자신 속에 있는 진정한 감정을 만나지 않으려고 과장된 감정의 홍수 속으로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외였다. 나는, 감정을 비교적 잘 느끼고 표현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직면하지 않은 한 유형으로서 과장된 감정의 홍수 속에 숨는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가.... 그런 건가.... 진짜 감정이 아닌 건가.....


더 웃긴 건, 남들에게 용납될 만한,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가 되지 않을 안전한 감정(가짜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한다고 한다...... 이 또한 정상적인 유대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3 나의 열등감 포인트를 생각해보다


(본문 중)

박 과장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S씨의 열등감과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 생각해왔다. 계급장 떼고 붙으면 내가 이긴다 자부해왔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는 무수히 많은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들은 때로는 우월감으로, 때로는 열등감으로 표출되며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열등감의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아마도 내 주변 사람들 중 저 리스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며 때로는 질투와 시기를 하기도 했겠다. 그러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내 처지를 원망하다, 결론은 '아빠가 부자여야 하나'로 귀결됐겠지. (나는 성장기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아빠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고, 친밀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말이다.)


[나의 열등감 포인트]

-부모 재력/능력/다정다감한 부모
-사랑꾼 남친(편)을 둔 사람
-나의 직업/좋은 엄마 콤플렉스/행복하고 멋있는 부부의 모습
-근엄하고 세련된 외모 + 당당하고 자기표현 잘하는 남편의 모습
-남편한테 사랑받고 관심받는 여자들
-나의 몸매/우아한 부드러움의 소유자
-사립초등학교 나온 아이들/유학 다녀온 아이들
-미혼인데 자기 능력으로 집 산 여성 커리어우먼




4) 나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보통의 작은 사람이라는 사실.

->수치심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


수치심은 부모로부터 건강한 자기애가 충족되지 않아 느끼는 불안, 외로움,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수치심의 메시지를 갖고 산다.
무의식 속에 수치심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본모습(수치스러운 모습)을 알까 봐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다양한 방어기제들을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억압, 회피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려울 때 이를 감추려고 화를 낸다. 화를 냄으로써 자신에게 맞춰졌던 포커스를 상대방에게 돌리면 본인은 두려운 감정에서 시선을 뗄 수 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려다 보니 불안하고 두렵고, 불안함과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화를 내는 것이다. 진영 씨와 기천 씨가 서로에게 화를 냈던 이유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애에 상처를 입는다. 어느 부모도 아이의 자기애를 온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 부모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수치심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역설적으로 이런 인간의 불완전성과 한계를 받아들일 때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부모도 불완전하다. 나도 불완전하다. 너도 불완전하다. 우리 모두 인간으로서 불완전한 작은 존재들이다. ->그렇게도 피하려고 했던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오히려 해결이 가능하다.


그전에는 왜 부모님이 나를 안정애착으로 키우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 걸까 원망도 했다. 그러한 교만한 마음이 내 아이를 양육할 때 가장 크게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됐던 것 같다.


나는 너 만큼은 어떠한 수치심도 생기지 않게, <안정애착>을 잘 형성시켜 주겠다 전의를 불태우다 -> 불완전한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내 아이도 수치심과 불안정 애착을 갖겠지 하는 죄책감 -> 안정애착 형성을 위해 무리함 ->참다 폭발 대폭발 엄청 큰 화 -> 스스로 실망, 아이에 대한 미안함, 미래에 대한 걱정


네버엔딩 사이클의 반복이었는데..... 나는 작은 존재다. 그 누구도 수치심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들 또한 어느 순간 인생의 어려움 속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테니 말이다..... 내가 그러한 것처럼.






서른 중반, 나 자신을 찾으려는 목마름과 갈망으로 6개월간 퇴직금 630만원으로 내면아이를 달래주는 프로젝트인 <엄마의 안식년>을 통해,

저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글로 담았습니다.


뭔가, 나같지 않다고 느껴지며 엄마로서의 삶이 공허하고 답답하다고 생각되시거나

알파걸 같던, 진취적인 우리 아내가 출산 후 달라졌다고 느끼는 남성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서른여섯, 좋은 엄마 되려다 멈춰 서다>가 궁금하시고 리뷰글을 써주실 수 있으시다면

제 이메일로 주소를 보내주시면, 무료로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댓글신청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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