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에 알게 되는 것들.

여행은 전, 중, 후로 나뉜다.

by 제니


지난주, 3박 4일간의 제주여행을 다녀왔다. 1박은 세 식구와 함께 한 여행이고, 나머지 2박은 우리를 포함해서 총 네 가정이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따로 또 같이, 수영 등은 같이하고 나머지 일정은 각자의 일정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그런 여행.


여행 전

-제주도 그룹 여행은 거의 처음이라 6개월 전부터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해 놓았다. 변수는 여행 전 부부싸움 등으로 인한 취소가 될 뻔하였으나 우여곡절 끝 모두가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 전, 여행에서 입을 옷, 가지고 갈 물품 등을 챙기며 짐을 챙겼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나마 짐을 줄였다.



여행 중

남편과는 여행 중 크고 작은 트러블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어떻게 보면 <주도권 싸움>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주 부딪히는 것은 [길을 잃었는데 잘 못 찾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부분/ 쇼핑에 관한 것] 등으로 좁힐 수 있겠다. 신혼여행부터 시작해서 많은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는 남편과 여행을 안 가겠다고 말한 기억이 많으나 어찌하다 보니 늘 함께 하고 있다. 그런 게 가족인 건가;;;


결혼 후 듣기 싫은 말은 <내 맘대로 다 한다>였다. 그러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내가 제주도에 가서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등을 미리 공유하며 서로 하고 싶은 것을 논의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림 가게>에 대해서 충돌이 있었다. 평소 인스타그램으로 눈여겨본 그림 가게가 제주도 세화에 있기에 이번에 가는 길에 이동 중 들리고자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에 대해 미리 상의 & 언급을 했다.

나는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언제나 설명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림 가게>를 그림 가게라 말하지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지 난감할 뿐.... 사소한 것으로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평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바로 <무대뽀>다.

이 유형을 만나면 정말 인상 찌푸려지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달까...


그런데, 책에서 내가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나 성격, 어떤 부분은 내가 똑같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싫어진다고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마도 맞을 것이다.


나는, 우아함을 추구하고자 내 안의 그런 부분을 지나치게 억누르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또 참고... 최대한 무대뽀 스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 중, 남편과의 의견 충돌에서 나는 처음으로 참지 않았다.

내 안의 거대한 폭풍이 일어나 나는 할 말을 다 하고, 무대뽀 스럽게 충분히 발산했다.

소극적 공격으로 나를 자극하는 남편은 구시렁구시렁거리기를 잘하는데, 그림 가게를 가면 숙소에 늦게 도착한다고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운전한다고 말하며 운전석에 앉아서 약 1시간가량을 아주 혼잣말로 툴툴거리고 욕을 하며 껌을 짝짝 씹었다. 사실, 아이가 있어서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걱정돼 운전을 꺼렸던 것인데, "까짓 거 죽기밖에 더 하겠냐."라고 스스로 말하며 나는 거침없이 운전을 했다.

아마도 남편은 지난 7년여를 살면서 나의 그런 무대뽀 스러운 모습은 처음 봤을 거다.


와 근데 속이 후련하다.


그동안 억누르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 세상에 나오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좋은 게 아니던가....... 마음먹으면, 누구보다 무대뽀 스러워질 수 있는데 말이다... 37년 만에 봉인 해제!!!!!!!!!




나에게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아들러리안 수업을 들으며 나는 그간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 <포기>하고, 덜 중요한 것을 악다구니 쓰며 지랄하는 모습을 알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 타인은 내가 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리하여, [인지] 단계를 거친 후, 나는 앞으로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양보하지 않고] 싸울지라도 [주장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다.


그러한 마음이었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존의 나는 <갈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기에, 싸우거나 갈등이 일어나면 안 된 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갈등의 순기능도 존재한다. 속으로만 생각했던 양쪽의 입장을 수위가 높고 소리가 커서 문제이지만 수면 위로 올라와 서로가 인지하게 된 다는 점이다. 기존의 나는 갈등 상황을 회피하고자, 마지못해 yes를 하거나 스스로 맘 속으로 포기하고 말하지 않은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오 예~ 이렇게 지키는 거구나!!! 감 잡았어.




관계의 적당한 거리유지에 실패하다.


나는 사실 그룹이나 단체생활보다는 소그룹, 일대일, 소수 관계를 더 좋아한다.

한두 명의 절친과 어느 정도 친한 다수의 사람들의 관계로 그간 인간관계를 해 왔다.


그런데, 결혼과 출산 이후로 새롭게 알게 된 관계 들은 이러한 내가 느끼기에는 부담스럽거나 불편한 관계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예를 들자면 교회 순모임 등이 그러한데 순에서 그래도 좀 더 친밀한 한, 두 가정 or 한 두 여성분들과는 교감할 거리도 많고 서로에 대해 잘 아나, 나머지 다수의 가정 or 여성분들에 대해서는 오다가다 얼굴만 아는 정도라 조금 교류하기 난감한 경우가 많다. 특히, 기도제목을 나눈다거나 삶에 대해 나눌 때, 나는 항상 궁금했던 것들이 속으로 "사람들은 정말 다 기도를 해줄까?"였다.


나는 인간관계를 맺으면 그 사람에게 많은 [시간/관심/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애정을 가진 대상에게는 더욱 많은 에너지를 쓰며 그만큼 기대감도 커진다. 이러한 나의 성격으로 다수 관계를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다. 나의 애정은 한계가 있기에.


나의 관심의 양 질은 한정되어 있기에 모두를 향해 그러할 순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편의 경우 다수가 있는 그룹 관계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 안에서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는 평소에도 인간관계에 크게 에너지를 쓰지 않는 편이다.(일 하고 애 보기도 버거운 현실)


이번 여행에서 결혼과 출산 이후 5년 여를 알고 지낸 한 지인과 불편한 감정을 쏟아내며 관계가 중단이 되었다. 그간 오해가 있기도 했고 각자가 30대 애 키우며 일을 하는 힘겨운 생활에 처해있기도 하고, 나의 경우는 월경전 증후군인지 아주 과한 분노가 일어났다.


아마도 나 혼자 어떤 상황 속 느낀 감정들의 스토리를 쓴 무수한 에피소드가, 어떤 한 광경을 보고 급 시나리오를 쓰며 활화산 같이 타올랐을지도 모르겠다.


조용하게 거리를 두려고 하다가 화 난 게 있냐고 묻는 그 아이의 말에 참다 참다 폭발을 해서 거칠게 쏘아붙였고, 나의 서운함이 이해가지 않는 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왜 나머지 두 명한테는 안 그러면서 저한테는 필터가 촘촘하게 작용해요?"



무대뽀 스러움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이 친구 에게도 거침없이 말을 했고, 그렇게 순간적으로 정리된 상태로 관계가 단절됐다.


사실, 예전 같으면 나는 이런 경우 사건을 곱씹으며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에 복기하여 전화나 카톡으로 오해를 풀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런데 그냥 내 속에 있는 말을 해버리니 마음이 후련했다.


다만, 그 아이의 말을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나는, 왜 다른 두 명의 사람들보다 그 아이에게만 촘촘한 필터를 작용해 사소한 것에도 서운해했을까......


아.... 나는 내가 특별히 애정 하는 대상에 대해 관심과 밀착도가 높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일에 대해 급격히 케어하고자 한다.


철없는 모습, 가능성이 있는데 안 하는 모습, 내 마음을 몰라주거나 서운하게 느껴지는 사건 들에 대해 피드백을 하기도 하며, 상대가 원하는 공감적 경청이 아닌, 내 기준과 생각으로 충고를 가장한 조언을 하기도 한다.


나와 오랜 시간을 지낸 절친들은, 그런 경우 약간의 시간을 두지만 내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잘 알기에 다시 관계가 회복되고 진심을 알아주기도 한다.(나를 이해해 준다는 표현이 맞겠다.)


내가 너무 내 맘속으로 그 친구를 [편애]했구나.

걱정과 불안이 나처럼 많은 친구이기에 좀 더 안심하고 편안하게 지내기 바랬고, 충분히 잘하고 있는 스스로를 인정해주고 토닥여주길 바랬고, 내가 너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나의 사소한 말, 행동, 약속을 잘 지켜주길 기대했다. <중요성> 키워드는 내 인생의 큰 부분인데, 내가 친밀하게 느끼는 상대가 점차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관계의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다고 느끼는 시그널은 아래와 같다.


사소한 것일 지라도 내가 한 말을 안 듣고 다시 묻거나 까먹는 경우.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내가 한 말에 공감이 아닌, 자신의 견해로 판단하는 경우.

말투, 표정 등에서 나를 소홀히 여긴다고 느껴지는 경우.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경우.

서로의 일상에 대해 무관심 해지거나 잘 모르게 되는 경우.



그렇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주 바쁘고 중대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30대 중반,후반이다.

내 지인들 또한 나와 비슷한 시기를 관통하고 있고 하루하루 살아내기 버거운 시기다.

그런데, 나의 작은 마음은 여전히 중3 소녀처럼 많은 것을 바라고, 기대하고 있다.


내가 상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 저울의 균형이 심각하게 치우치기 시작하면 나는 이내 마음을 닫아버린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인연이 여기까지 이거나, 시간이 흘러 서로의 상황이 좋아지고 오해가 풀어져서 다시 조우하게 되거나.
나는 더 이상 과거를 후회하거나, 관계에 질척거리지 않는다.

내가 가는 등산에 같이 오를 사람이면 족하다.

내가 특별히 애정 하는 대상들을 위해 하산하거나, 먼저 가서 손 잡아 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보폭으로, 공통의 관심사로,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옆에 두며 따로 또 같이 그렇게 걸을 거다.



그러나 안타깝고 마음이 쓰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무관심한) 사람들이 아닌, 누구보다 더 애정하고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들과의 균열은 나의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나 또한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 이번 여행 후 나의 깨달음

1) [관계의 적당한 거리 유지하기]
: 촘촘한 필터를 켜는 대상들은 내 관심과 친밀도가 높다 느껴 그럴 수도 있는데 그 경우 상대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나와 타자를 구별하고 각자의 인생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며 응원한다. 대신 해결해주려고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는다.

2) [참는 관계는 어느 사건이 생길 때 급격히 깨질 수 있음] : 그때그때 피드백하고 해결하고 넘어가기.

3) [나의 중요한 것을 위해 잔다르크가 되어라] : 타인에게 인정받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을 위해 잔다르크가 되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싸움을 각오하고 잔다르크가 되자.


여행 후

여행을 다녀온 뒤 하루 종일 집 정리, 짐 정리를 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행은, 좋든 싫든 나에게 자국을 남긴다. 이번 여행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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