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을 바라보며.

아, 정말 신체는 정직하다~~ 요즘 몸이 쑤신다. 눈도 침침하고 ㅎㅎㅎㅎ

by 제니

1) 불혹의 의미


30세는 이립(而立)이라고 한다. 역시 《논어》에 나온다. 이(而)는 접속사로 다른 뜻이 없다. 립(立)은 자립하였다는 말이다. 스스로 주관을 확고히 세워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자기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40세가 되면 바깥 사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혹(不惑)이라 했다. 그전까지는 이것을 보면 이것이 옳은 것 같고, 저것을 보면 저것이 옳은 것 같아 판단을 세울 수 없었는데, 나이가 마흔 살이 넘게 되면 그런 판단을 흔들림 없이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불혹의 나이가 넘어서도 자기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모습은 곁에서 보기에 참 민망하다.


by [네이버 지식백과] 불혹(不惑)의 중년(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2011. 5. 23., 정민, 박수밀, 박동욱, 강민경)



결국, '불혹'이라는 것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스스로 주관을 확고히 세워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자기의 길을 간다는 것.


2) 자기다움


나를 안다는 것과, 이해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30대에 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자기다움> 찾기였다.


30년 간 후천적으로 학습되고 살아온 <나> 아닌 기질적으로 타고난, 본연의 나로 살고자 여러 시도와 도전, 경험과 실패, 후회화 미련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이제 그 시도의 마무리가 될 즈음인데 뭔가 값진 성과가 있었을까? 브런치를 시작한 게 재취업을 한 서른 중반부터니 일기장 같은 끄적임을 5년간 한 격이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는 그런 행동들은 고스란히 내 상태와 변화의 기록이기도 하겠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조금씩 불편해지고 당연 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 그것은 나이에 따른 자연스러움일까 나다워진 걸까?


묻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고,

마인드셋을 한 뒤 행동에 옮기는 것.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애쓰며

우아함을 노력하는 것,

내 것을 소중히 하고 지키며 보호하고

타인에게 사랑과 덕을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는 것(경제적 도움, 보람, 정서적 채움 그 어떤 거라도)


40대, 내가 추구할 것 들이다.


30대, 너는 이기적이다, 변했다, 너밖에 모른다, 철이 없다 등의 주변의 온갖 비난을 고스란히 등에 업은 채 나는 치열하게 <나>를 찾기 위해 달려왔다..


성취 주의자로서 그 누구보다 눈에 보이는 아웃풋을 중시하는 내게 이보다 더 과한 '장기투자'는 없었다.


불혹을 앞둔 지금, 다이내믹했던 30대를 돌아보니 이것저것 이룬 것도 많구나.


ㅡ결혼

ㅡ직장생활 2번

ㅡ책 2권(e북/ 종이책)

ㅡ창업(현재 사업자만 유지 상태)

ㅡ출산(아들 8세)

ㅡ이사(4~5번)

:살아본 동네-길음/사당/금호/서수원

ㅡ여행

1)국내ㅡ제주도, 강원도, 공주 등

2)해외

(서유럽 4개국ㅡ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세부, 괌, 태국(방콕, 코사무이), 베트남(호찌민)


큼직한 것들을 이렇게나 많이 했는데 난 30대에 한 게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했으니 난 진정한 욕심쟁이다 후훗~~



아무튼, 난 호피 뱀피 벨벳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게 나야~~ 시도는 이제 시작이지만.

(그걸 알아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네)

[사진설명]_자라에서 내 선택을 받은 아이템들. 어서와 뱀피, 벨벳아~~~~
[사진설명]_아이쇼핑에서 내 맘에 들었던 아이템들. 난 왜 이런 것들만 좋아라할까 ㅎㅎㅎㅎ


3) 관계


30대에는 혼자서 판단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서 절친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들었다. 내 표현으로 전달되는 상황은 아마 조금 변질돼 상대에게 전달됐겠고, 변질된 상황을 듣고 판단한 친구의 의견은 그 친구가 살면서 느낀 그 친구의 (경험이나 상태, 판단이나 해석)이었을 거다.


그것을, 아무 필터 없이 그대로 듣고 꼭두각시처럼 한 게 화근이었다.


그간 우정이라 믿고 허심탄회하게 속 얘기를 마구 쏟아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상대에게 피로감을 줘 지치게 만들 수 있고, 상대 또한 그의 틀(사고방식, 판단, 해석, 가치관)로 그 모든 말들을 듣기 때문에 진정한 이해와 수용이 될 수 없다.


친구라 해도 적에게 하면 안 될 얘기는 삼가라는 명언이 불현듯 떠올랐다. 극심한 혼란이다.


그래, 서로에게 좋은 우정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뭐든 당연한 게 없으니까. 너무 가까워 서로의 생각이 섞인것이 혼란의 연속이었지 우리 우정이 잘못 된 건 아니었다.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40대이다. 위로는 셀프, 온전한 홀로서기.
그 후에는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길 희망한다.



아무튼 가끔 괴로우나 내가 여전히 좋다 난.

매거진의 이전글틀을 깬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