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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000가 아니다.

나는 허성혜다. 태어날 때부터 여전히.

by 제니

나는 김미경이 아니다.

나는 오은영이 아니다.

나는 임경선이 아니다.


이 세 사람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때 임경선 작가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적용했다가 정말 고독사 할 뻔했다.

30대 중반에, 관계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서 애매한 관계들을 다 정리했더니 정말 친구가 몇 안 남게 됐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온몸을 갈아서 육아를 하며 아이를 돌보는데, 아이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 자아비판을 하며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과 책을 보고 또 봤다.


세상 돌아가고 변하는 속도는 어찌 그리 빠른지, 분명 나보다 늦게 태어난 분인데 김미경 강사님의 속도에 발맞추려다 가랑이가 찢어질뻔했다. 매일 꾸준히 나름의 열심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도, 새로 배워야 할 건 왜 이렇게 많고 도달해야 할 목표는 또 왜 그리 많은지.


나는 여전히 아침 기상도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메타버스니 NFT가 어쩌니, 그거까지 배우려고 하니 늘 마음이 가쁘다.(근데, 굳이 전 국민이 꼭 다 알아야 하니?)



이제 그냥 나는 나를 잘 데리고 살아야겠다.

나는 오은영도, 김미경도, 임경선도 아니다.

나는 꾸준히 하는 거라곤 글 쓰는 것과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실행하는 것 밖에 없는, 허성혜다.


나는 에르메스도 없고(그 정도의 능력도 없고), 아이를 온전히 대신 돌봐줄 도우미나 양가 부모님도 존재하지 않고,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남편과 살고 있지도 않으며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지 않아 그게 어떤지도 전혀 모른다. (물론, 책과 영상을 보며 후천적 경험을 얻고자 내 30대에 정말 피나게 노력했다.)


우리 부모님은, 대 다수의 부모님들이 그랬듯이 먹고 사는게 바빠서 나의 자존감 따위에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하교 후 돌아온 나에게 오늘 학교생활이 어땠고 친구들이랑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난, 언제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유년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경험도 없으며 아버지 친구가 외국인도 없다. 그 흔한 사촌 한 명 외국에 살고 있지 않다. 그다지 세련되지도,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다. 우아함과 도도함을 꿈꾸며, 시크해지려고 노력하나 여전히 허술하고 가끔은 구수하다.


요즘 어쩌다 마흔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코로나 시국이라서 그런지 정말 몸 컨디션이 하루가 다르게 왔다 갔다 한다. 오후 넘어 근육통으로 시작된 극도의 컨디션 저하가 저녁까지 이어져 아이와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이가 내 폰을 보겠다고 하다가 휴대폰 걸이를 망가트린 거다. 난, 내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게 싫다. 그게 내 뱃속으로 낳은 아들이라도. 뭐랄까, 마치 그건 나를 함부로 다루는 느낌이랄까? 어린 시절 내가 소중히 다뤄져 본 적이 없는 건지, 스스로 그렇다고 '해석'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누군가 나를 '보석같이' 대해주기를 소망했다.


(물론, 외국 어떤 유명 모델은 자녀가 명품가방에 낙서를 해도 웃고 있더라. 그분은 가방이 많으니까 나랑 비교할 게 아니지 뭐. 난 몇 개 없다고 나에겐 소중하다고. 왜냐? 비싼 거니까. 나도 명품을 걸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다루며, 아이가 가방을 찢건 낙서를 하건 괜찮다고 웃어주고 싶다만.)



아이를 재우고 차분하게 하루를 정리해보니, 굳이 그렇게까지 대응할 필요는 없었다. 메모지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라고 덕지덕지 써 놓으면 뭐하냔 말이다. 도대체 난 안 괜찮은데 말이다.

신발장 위에 올려놓은 문구. 누가 나에게도 다정하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이제 어떻게 해볼까?"라고 물어봐주면 좋겠다.


아들과 나만의 '사과하는 방식'으로 나도 자기 전에 아들에게 엽서를 썼다. 부디 아들이 엽서를 보고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그러나 이것도 나의 희망사항일 뿐.)


나는 여전히 서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엄마다.

그냥 이제는 그게 '나'이자, '나란 엄마'라는 것을 정말로 받아들여야겠다.

법륜스님의 말처럼, 깃털처럼 가볍고 편안하게. 그렇게 육아를 해야겠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한 걸' 해줄 수 있는 마음이에요 -by 법륜스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 초라함이, 내 아이에게 비수 같은 화살이 되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리정돈 및 주변정리를 해야겠다. 그리고 밀린 설거지를 꾸역꾸역 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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