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내가 사랑스럽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은 그렇다.

by 제니

사랑스러운 나


아들이 친구 생일파티에 가서, 아주 오래간만에 이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 가서 북스리브로 서점에서 요즘 베스트셀러들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책도 한 권 구매했다. 애경백화점 커피숍에서 민트 초코 쉐이크를 주문하고(다이어트 중이지만 오늘은 좀 쉬자) 여유 있게 독서를 했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 거울 속 내 얼굴과 마주했다.


"오, 예쁜데?"


세월이 흘러서 잔주름 등은 생겼겠지만 20대 때보단 조금 더 여유롭고, 뭔가를 더 아는 것 같은?, 약간의 농염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섹시함이 묻어나는 얼굴이 거울 속에 비쳤다.


하긴,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의 순진무구한 '소녀'가 풍기는 매력도 매력이지만,

"난 이제 제법 알 듯해요." 라거나, "난, 이제 웬만한 건 다 아니까 개수작 부리지 마세요~." 하는 느낌은 아무래도 다르겠지.


'아름다움'은 어떤 한 기준이나 시기가 아니라, 시기마다 적절하게 차이가 있다.

자의식 과잉이 있는 나지만(마흔 즈음이라 서서히 현실 속 주제 파악도 하고 있다.) 오늘 거울 속 내 모습은 제법 마음에 든다. (화장도 잘 됐고, 내가 좋아하는 브라운 톤 원피스도 입었고 홀로 여유롭게 있어서 그럴까.)


스물아홉의 내가, 서른아홉을 넘어서 마흔이 된 지금의 내 모습이 더 멋질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내 인생의 많은 선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서른이 넘어가면 뭔가 끝나는 줄 알았다. 인생의 황금기는 서른까지가 절정이며, 그 이후는 하향곡선을 그리며 내리막길로 떨어지는 건 줄 알았다. '여자'로서 더 괜찮은(이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남자를 만날 확률도 줄어들 것이며, 서른이 넘기 전에 인생 과업을 이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내 또래의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아무래도 그런 주변적인 것들이 더 크게 와닿았다 보니 '본질'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인생의 흐름 속 중요한 선택들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물론, 나 스스로 거울을 바라보며 내 모습이 '예쁘다'라고 말할 때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나에게 가장 암흑기였던, 서른 후반 몇 년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옥 그 자체였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니라 얼마나 놀랐던가. 생기는 1도 없고, 삶의 의욕이 전혀 없는 비참한 여성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가엾고 놀랍던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라고, 더 이상 나를 잃기 전에 나를 찾아야 한다고.


한동안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거울 속에 비춰진, 세상 다 끝난 것 같은 그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애써 입꼬리를 올려보려고 해도 얼굴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좌절했고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고 느꼈고, 엄청난 상실감에 시달렸다.


그런 인생의 시기를 지나왔기에(지나간 건지, 아직도 관통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오늘 거울 속 내 모습이 더 예뻐 보였다. 다시금, 생기를 되찾고 화장을 하고 무언가를 할 의욕을 되찾는 데까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돌보며 견뎌온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며,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며,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인생을 사느라 남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바쁘게 산다는 것을 나는 안다. 누군가는 나의 성공을 시기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나의 성공을 바라며 조건 없이 나를 지지하며 도와준다.




힘들 가진다는 것


돌이켜보니 십 대 후반에도 나는 '힘'을 갖고 싶었다.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입시 전공을 선택할 때도 '힘'을 키울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선택했다. 힘이라는 것은 power이며, 쉽게 말해 '영향력'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나는 추구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인생의 여러 가지 예기치 않은 일들과 뒤늦은 사춘기 및 퇴행을 거쳐왔다.


20대 초, 중반의 나보다 30대 중, 후반의 내가 더 유치해서 황당하기도 했다. 내가 쓰는 글들도 퇴행했다. 기자를 꿈꾸던 그 시절에는, 신문 사설을 베끼며 시각장애인들의 눈물겨운 사투에 대해서 진지하면서도 논리적인 글을 주로 연습하고 썼다. 그러던 내 글쓰기도 좀 더 쉽고 일상적이며 비전문적인 것들로 달라지기도 했다.


뭐, 어쨌건 간에 나는 계속 써왔다. 그건 변하지 않는 명확한 사실이다. 난 뭘 위해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는 쓰는 행위가 좋다. 쓰는 행위는 쉽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준다. 나는 날 위해 쓴다. 지금까지는 내가 쓴 글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고 썼다. 어쩌면 온라인 일기장에다 주절주절 거리는 것처럼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의 글이 어딘가 비슷한 상황에 있거나, 누군가의 어떤 상황에 작은 희망이랄까, 아니면 단서나 울림을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쓰나 보다. 나의 늘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순간을 지탱해 준 것이 읽고 쓰는 것이기에. 혹여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이타적인 마음'에.


인생의 변곡점마다 나는 뭔가를 '창작'했다. 희한하게 힘들면 힘들수록 나는 뭔가를 열심히 창작한다. 이십 대 중, 후반 첫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자작곡을 한 대여섯 개 만들었다. pmp로 녹음하며 작사, 작곡, 피아노 반주, 노래까지 직접 하며 예술혼을 발휘했다. 그 녹음파일은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가까운 지인이나 그 파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작곡'을 배워보고 싶고 '싱어송 라이터'를 열망하기도 한다.


열정은 있었으나, 지금 되돌아보면 매우 쪽팔리기도 한 신입사원 시절의 에피소드를 모아서 e북을 냈고, 경력단절과 모성애 부족, 육아의 어려움을 '6개월의 안식년'이라는 컨셉으로 뭔가 시도하고 그것을 글로 엮어 책으로 내기도 했다. 사실, 그 책에도 언급했듯이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라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지치고 힘든 순간, 이겨내야 할 그 무언가가 있을 때 노트북을 켜고 건초염이 올 때까지 쓰고 또 썼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나는 온 힘을 다해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하염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내 상태에 따라 내 글은 달라진다. 어휘 선택, 글의 분위기 등등.... 가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글들은 발행하고 뒤늦게 발행 취소를 하기도 했다. 뭐랄까, 글은 이래야 한다~ 등의 내부 검열이 한번 더 발동해서.


뭔가 또 삼천포로 빠졌지만, 한 1년간 미친 듯이 방황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잔잔해지며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은 열망이 되고 나는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실행을 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그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힘을 내고 전진하고 있다.


오늘 산 책 '알코올 생존자'에서 '싸움의 기술'영화 속 대사를 떠올려본다. 아마도 나는 맷집이 좀 세졌나 보다. 과거에 두려워하던 것들이 그다지 두렵지 않아 졌다.


"네 안에 가득 차있는 두려움, 맞아본 자의 두려움, , 그걸 깨부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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