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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에 관하여.

색깔도 어찌나 까맣던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by 제니

결혼 전 살던 집은 오래된 빨간 벽돌의 다가구 주택이었다.


가끔 화장실을 가려고 자다가 일어나 거실 불을 켜면, 부엌 쪽 천장에서 검정 색깔의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스르륵 재빠르게 움직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엄살이 조금 심하며 리액션이 큰 나였기에, 그 녀석과 눈을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새벽녘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혹시 또 바퀴벌레가 나올까 무서워 참기도 했다.


어떤 날은, 조심스레 부엌 불을 켜서 바퀴벌레가 없는지 천장을 둘러보다가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지 않아 안심하며 '다행이다'를 외치려는 찰나, 검은색 물체가 천장에서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져서 아아아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도저히,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다. 희한하게 부모님은 엄지손가락 만한 바퀴벌레 이야기를 해도 놀라지 않고 그러려니 했다. 아빠는 손으로도 바퀴벌레를 때려잡기도 했는데, 난 정말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난 벌레를 무서워 하기에... 귀뚜라미 하나도 아들과 서로 누가 잡는지 씨름하기 때문에....


바퀴벌레를 피해 탈출을 감행했다. 결혼 후 서울로 이사를 가서 한 9년 정도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다.


어제 일이었다.

부모님이 사는 집은 큰 문을 열면 베란다 같은 공간이 있고, 거기에 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구옥이라 공간 활용이 좀 넓은 편인데 뭔가 입구로 들어가기 전 시커먼 물체가 내 눈에 띄었다.


서서서설마,,, 저저 저저 건..... 아아아 아아아악!!!!!!!!!!!!!


난 재빠르게 아빠를 소환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꺼먼 바퀴벌레였다.

몇 년간 부모님 댁에 벌레가 없었는데.... 그 녀석의 크기를 보니 이건 새로 생긴 녀석이 아니었다.

다른 집을 통해 이동을 한 건지, 어딘가 숨어서 번식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엄지손가락 반 만한 크기였다.


아빠는 태연한 얼굴로 나오더니 신발로 밟으며 바퀴벌레를 죽였다. 재활용 상자를 들었다 놨다 하니 바닥에는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총 2마리 엄지손가락 반 만한 크기의 바퀴벌레를 보았다.


나는 엄마에게 세스코를 불러달라 간청했다.

벌레는 너무 무섭기에.

특히나, 아주 까맣고 두툼한 바퀴벌레는 정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아들과 바퀴벌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나 : 아들, 나중에 바퀴벌레가 나오면 네가 잡아. 네가 남자잖아~

* 아들: 무슨 말이야, 엄마가 잡아야지. 내가 엄마 아들인데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난 엄마가 됐지만 여전히 바퀴벌레가 너무 무섭다.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를 어떻게 잡을지에 대해 연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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