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5일차

'충분하지 않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경계하라!

by 제니

누구에게나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다. 부부라고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스스로 이겨낼거다. 견뎌내고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아들러 식 표현의 과제분리와 '각자의 과제해결'에 전념하리라.



넌 누구냐


벌써 만 4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초보 엄마다. 만 3세까지 엄마가 키우라는 암묵적 사회적 메시지로 1년 육아휴직을 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 결국 친정 근처로 전세 만기일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

15개월부터 슬슬 어린이집을 보내고 재취업에 성공. 그 후 18개월~지난주 까지 아침에 일어나 인사하고, 저녁에 집에 가 간단한 샤워와 책 읽어주기 등으로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왔다. 아들의 습관, 식성, 감정, 생활패턴, 성격 등 사실 나보다 할머니, 할아버지인 우리 엄마 아빠가 더 잘 알고 있는게 맞다.(왜냐, 맞벌이니까) 머리털 나고 기기 시작해 신기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말대답도 잘 하고 '안돼'와 '싫은데'를 반복하는 아들은 대한민국 나이로 5세. 이제 '어린이'가 되었다.



갈림길에서의 선택


이번 3월이 고비였다. 작년 9월, 서울로 이사 후 '주말부부'로 지내며 평일에는 친정에 거주하며 출퇴근을 해왔다.(나는 왕복3시간, 남편은 30분 이내거리) 중간에 아이 어린이집을 옮기는 게 수월하지 않아서였다. 을지로가 직장인 남편과 논현이 직장인 나. 나는 6개월을 수원 친정에서 출퇴근을 하며 아들을 케어해왔다.


서른 넘어 부모님과 같이 살다보니, 감사하지만 갈등도 많았다. 생활패턴이 다른 두 가족의 결합인데 몸과 마음이 편않던 6개월의 시간. 유치원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반일반이 된 뒤 하원도우미를 구해야하나 고민하던 시기가 왔다. 출근이 비교적 늦은 내가 등원은 한다해도 2시50분에 하원하면 퇴근해서 돌아오는 7시 전까지 하원과 케어해주는 이모님이 필요했다. 대략적인 비용은 100만원 이상으로 알고 있다.


오랜 '고'민이 시작됐다. 많은 책에서는 비용을 떠나 커리어를 지켜야 한다고 써있었다. <린인>을 쓴 새릴 샌드버그의 책에도, <여자에게 일은 무엇인가>를 번역한 책에도 여자에게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안다. 다 안다. 허나 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름 내가 가진 것에서는 부단히 노력해서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결혼 이후 선택의 연속이었다. 새릴 샌드버그는 6시에 퇴근해 자녀들과 꼭 저녁식사를 한다고 책에 써있었지만 그건 새릴 샌드버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내가 바라본 현실이었다.


20대 때는 나의 가능성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계급장 띠고 덤비면 다 이긴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당당하다 못해 조금은 건방져 보일지도 모르는 패기가 있었다.


허나 서른 중반이 지나 애가 딸린 워킹맘이 되어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일'을 하고 싶어하는 나의 '욕구'는 때론 누군가에게 '이기적'으로 비쳐졌다.
대한민국에 이미 퍼져있는 모성신화,
'엄마'에 대한 각자의 욕구하는 이미지들이 사회에 넘치고 넘쳤다.


커리어를 더 잘 다졌어야 된다는 자아비판과 원망도 수많은 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막말로 의사,변호사, 전문직 등 뭔가 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대우나 급여, 환경이나 복지가 좋은 커리어를 만들었다면, 큰 고민없이 도우미를 쓰며(도와주는 양가 부모님이 안 계시다면) 일을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이건 또 아닌 것 같다. 전문직 여성들도 똑같은 워킹맘이더라.) 늘 그러했지만 이 시점에서도 나는 '애매'했다.


대학교도 인서울은 했지만 명문대는 아니고(난 우리 대학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첫 취업도 애매하고, 만 35세까지는 좋아하는 일들을 경험해 보고자 다짐했지만 업종과 직종을 옮기느라 커리어도 애매했다.



그랬다. 내가 아이의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사표를 낸 이유,
'나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임신 이후 지금까지 시달렸었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던 것도 많았던 서른 살, 하늘의 선물로 이직한지 2개월이 안 돼 아이가 생겼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에게 온 생명을 기뻐하고 축복하기 이전에, 아이는 내가 설계해 놓은 나의 미래를 가로막는 '방해물'로 인식 됐다.


육아 선배들의 말을 들으니 아이를 낳으면 더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에, 나는 임신 6개월 즈음 배부른 몸으로 듣고 싶던 코칭 고급과정도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못 들을 것 같아서)


그때 내가 느낀 감정도 '나는 지금 부족하다, 충분하지 않다'였다.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위해서도 부족하고,
뭔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내고(감사하게도 회사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배려해주셨다.) 만삭 때도 못다한 블로그 포스팅을 하겠다고 앉아 있어서인지 예정일보다 일주일 뒤에 이틀간의 유도분만 끝에 제왕절개로 첫 아들을 낳았다. 좁은 공간에서 아들과 서로 경계하는 시간을 가지다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친정 근처로 다시 백기를 들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누군가를 돌보는 행위가 처음이던 나에게 모든 것은 새롭고 두렵고 어색하고 무서웠다.)


그리고 재취업을 해 2년 여를 다니다 찾아온 선택의 갈림길. 이제라도 더 늦기전에 아이와 애착을 잘 쌓고 내가 낳았으니 어느 정도는 책임지자는 책임감과 모성애가 발휘됐다. 돌이켜보니 그 또한 '나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부족한 엄마다.'라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가 작용한 것 같다.


갑자기 울적져 냉장고에 있던 칭다오 맥주를 땄다. '연애의 발견' 드라마를 한 달 보기 정액제를 끊고 보기 시작했다. 오늘 유치원 등원 3일째, 다행히 천천히 적응해 주고 있는 아들이 대견하지만, 하루 2시간만 원에 가기에 종일을 함께 하는 생활이 계속되자 조금 지친 듯 했다.(항상 아이를 돌보는 분들이 들으면 어이털려 하겠지만 난 그랬다.)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 문득 내 배를 바라봤다. 처녀 때 군살도 없고 복근도 살짝 보일듯 나름 배는 괜찮았는데 튼살, 제왕절개 수술 자국. 뭔가 서글퍼졌다.



당신은 이미 충분한 엄마


슬쩍 눈물이 맺혔다가 내 배를 다시 바라보니 나의 '모성애'가 새삼 느껴졌다. 그래 맞아, 나는 부족하지 않아. 내 '기준'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열 달 배부르고 배 째고 내 몸에서 낳은거다. 그거 자체로도 대단한 일인데 나는 왜 입버릇처럼 '불량엄마'로 내 스스로를 재단해왔을까.


나는, 내 나름의 모성애와 책임감으로 지금까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육아와 가정을 위해 밸런스를 맞혀왔고, 그렇게 한 선택들에 책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것이다.


가끔 사소한 다툼 때 남편은 자기 커리어를 왜 '질투'하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이건 질투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시스템의 부재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전업주부 vs 워킹맘 패러다임으로 편가르기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 결혼을 했으면 성별 이슈를 떠나 남자건 여자건 함께 일 하거나, 한 명이 일 하면 한 명이 아이를 돌보거나, 아니며 회사나 정부가 제도를 만들어 일 할 수 있게 해야하는데 이건 개개인이, 특히 '여성'에게 그 부담을 지우니 모든게 힘겹고 선택의 연속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짧은 육아휴직을 한 뒤 도우미 이모님을 구하고 일을 계속하는 게 나는 더 행복했을 것이다.)


'애매한' 위치의 평범한 여성에게 더 그러하다.
연봉이 4,000~5,000이 안 되고
월급이 300만 원이 안 되더라도
'일 하고 싶은 여자'는 있는 법이다.


뭔가 어떤 기준에 미달되면 집에서 일하는 게 낫다는 식의 암묵적인 대답들도, 300 만 원도 안 되는 급여에 도우미 비용으로 200 만원 언저리를 줘야하는 현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아프거나 등 하원을 책임져야 하는 주체가 '여성, 그리고 엄마'인 이 현실 앞에 나는 그냥 꺽여버렸다. 어쩌면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거울을 보는데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거다. 왕복 3시간의 통근시간, 외벌이 하기에는 팍팍한 현실 속 어떻게든 일을 하고 가정에도 보탬이 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남는게 주름인가 싶었다. '힘들면 쉬어도 돼,'라는 남편의 말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유치원 옮기고 등하원 문제를 이야기하다 가끔 야근을 할 수 있으니 그럴 때는 하원을 책임지라고 한 말에 "우리 회사는 그런 회사 아니야"라는 남편의 말에 어이가 털리기도 했다.


아이를 잘 양육하기 위해 선택한 이전 직장이, 대표님의 배려로 오전 10시 출근을 하고 늦게 끝나지 않았지만, 나 또한 '그런'회사는 아니었다. 아무리 워킹맘을 위해 배려를 해줘도, 소규모 조직에서 민망하고, 칼퇴하고, 아이를 위해 연차를 쓰는 것은 '나 또한'쉬운일은 아니었다.


화가 몰려왔다.
지금껏 내가 포기해 온 것들에 대한 분노.
더 독하게 지키지 못한 억울함.
힘들어도 글로벌 기업에서
과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우리 가정과 미래를 위한 거라지만
MBA까지 하고 있는 남편이 부러웠다.
나도, 야망과 꿈이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노력을 덜 한건가? 눈물이 맺혀왔다. 그래서 나는 사표를 냈다.

그리고 오늘 다짐했다. 나는 이미 충분한 엄마이다. 나는 이미 충분한 나 자신이다.

소중한 이 시간을 인생의 발판 삼아 더욱 비상하기로.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


아이와 온전히 함께하는 이번 주,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있다.


인풋이 아웃풋으로 정확히 나오는(가끔은 아니지만) 모습을 목격하며,
시간, 정성, 관심, 사랑을 기울이니
아이도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봤다.
'통제'와 '강압'보다 '신뢰'와 '묻기'를 통해 생활습관도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물론, 삼시 세 끼를 직접 만들고 치우고 아이를 케어하는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견뎌보려고 한다. 마땅한 무게를 감당하려 한다. 나는 엄마니까. 그리고 나 자신이니까. 나에게 허락된 소중한 이 시간을 아이와 교감하고, 신뢰를 쌓고, 그런 시간으로 보내고자 한다. (몇 달이 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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