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라는 시간 사이에 변한 건 내 '생각'뿐.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당신은 현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Q)당신은 현재 어떤 모자(역할)를 쓰고 있나요? 당신이 쓰고 싶은 모자는 어떤 것인가요?
“나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고 괜찮은데 당신만 불행한거야”
우리 사이의 진실. 이 한 마디로 표현이 가능했다.
그는 현재 글로벌 기업의 과장, 대학원생, 그리고 유부남이자 아빠. 다 가지고 다 이뤘다.
나는, 백수, 애엄마,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無. 우리는 대학 동문이었는데 말이다 ㅎㅎ
우리가 느끼는 삶의 질과 온도차가 다를 수 밖에 없는 현실,
나의 감당하기 어려운 힘듦과 불행함이 '서로의 문제'가 아닌 '나만의 문제'와 '인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랬군. 나 혼자 이런 상태였구나. 거기서 우리의 차이가 발생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이마를 쳤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지금의 삶을 선택한 내 개인의 문제였다.
그 누구의 공감과 위로, 남편이라는 사람과도 교감할 수 없는 이러한 현실 앞에
나는 내 스스로 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나가기로 다짐했다.
'육아'라는 이름으로 잠시 '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어쩌면 남편은 나를 부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의 쉼이자 방학,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9시30분 ~2시30분 이 '5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기로.
회사에서의 일, 인간관계의 어려움, 피로와 스트레스 등의 많은 짐이 있겠지만, 타이틀이 붙은 남편이 부러워 할만큼 대단하고, 자유롭고, 성장하고, 이 시간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는 내가 되기로. 자칫 잘못 하다간 텔레비전 앞에 넋 놓고 앉아서 눈물 흘리며 내 인생을 탓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불안감에 헤드헌터한테 연락온 기업에 무의식적으로 이력서를 넣으려고 하다 생각해보니 애 등원이 9시인데, 10시 출근 회사를 또 어디서 구하나. 등원도우미 하원도우미 다 구하기도 난감하고 허들이 너무 많구나. 에라 모르겠다. 걍 이 시간을 즐기자. 언제 또 올지 모르니.(그럼에도 마음 속 불안감이 찾아오는 건 뭘까 뭘까….)
▷사진설명: '버스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한남동 카페들이 나온다. 한 곳 한 곳 방문하는 즐거움이 크다'
백수 2주차에 접어들었다.
이번주부터는 9시 등원 ~ 2시50분 하원을 하니 지난주 보다는 숨통이 트였다.
월,수,금 동네 상가에서 10시에 하는 줌바댄스를 등록했다. 대략 7명 내외의 기존 회원들이 줌바를 하고 있었고 나는 거의 막내격이었다. 어제 격렬한 댄스가 끝나고 한 분이 오시더니
“줌바 등록하신 거 환영하고요 저는 총무인데 단톡이랑 밴드가 있으니 초대해드릴게요 번호 좀 알려주세요.”
“아 네네 저는 000-0000-0000입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83년 생 이에요”
“아…막내네요”
“네네 감사합니다.”
동네, 줌바 초기회원이라고 설명한 총무님이 나를 단톡과 밴드에 초대했다. 여기는 또 다른 세계.
2월 말까지 나의 정체성은 회사에서 불리는 직급인 ‘허선임’이었다.
결혼한지 6년차, 애 낳은지 4년 차인데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허선임의, 허선임에 의한, 허선임을 위한. '일하는 여성 허성혜' 였다.
정체성이 그러다보니 환경이 변했지만 내 인식과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밥 얻어먹으려고 나도 결혼했는데 사실, ㅎㅎ) 남편과 아침밥 주니 안 주니로 다투다 출산 이후에도 어벙벙….이유식 때 좀 열심히 하다 친정근처 가고 다시 일 시작한 뒤는 주방 근처를 잘 가지 않았던 나.
주말이면 다음날 아들 아침을 뭘 먹여야 하나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에게 당당하게 걱정말라고 말하고 그 다음날 어김없이 늦잠을 자 남편이 아침을 준비한 나날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내 정체성이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도 ‘허선임’이었다.
고객사와, 회사 동료와 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업무에 대해서 생각하고, 때론 집으로 일을 가져오기도 했다.
신기한 게, 그랬던 내가 백수 된 뒤 내 스스로 나를
‘엄마 & 아내’로 정체성을 정하고 나니 자동적으로 인식->행동이 바뀌었다.
‘엄마’라는 정체성을 생각하며 해야 할 do list 가 자연적으로 따라왔고
나는 아침 저녁을 뭐를 만들어 먹을지 걱정하며 검색하며 장을 보고 요리를 했다.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마트에서 닭 볶음탕 재료를 사서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생선 종류를 잘 안 만졌다보니, 껍질을 뜯고 닭을 씻는데, 그 촉감이 왜 그렇게 징그럽고 무서운지 소리를 질렀다. 이건 초딩도 아니고…..근데 원재료들은 아직도 무섭고 거부감 느껴진다 ㅠㅠ
신혼 초, 명절 때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주신 생동태가 생각난다. 반 갈라져 있는 거대한 생선 수십 마리가 내 앞에 놓여 있었고 시어머니의 주문은 가시를 빼고, 삼등분을 내라는 것이었다. 서른, 집에서 손하나 까딱 안 하던 나는 상견례 전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다 먹은 저녁 설거지를 하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울었던 전적이 있다.
사실, 설거지를 한 행위에 대한 눈물이라기보단, 아직은 결혼 전이라 나는 손님이라고 생각해서 예의상 “설거지 제가 할게요.”라고 했는데 진짜 하게 돼, 약간의 서운함과, 등돌려 서서 설거지 하는 나와 거실에 모여 앉아있는 시댁 식구들(남편, 아버님, 아머님) 의 화기애애함이 순간적으로 비교되며 나는 이제 ‘주변인’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내가 눈물이 난건. 아마도 그랬다.
내 인생에서 늘 ‘주인공’이었는데 결혼을 앞두고, 아직 식을 올리기도 전에
‘주변인’으로 전락한 그 느낌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랬던 나인데 고등어 한 마리도 다듬어 보지 않았는데 결혼 한 뒤 첫 명절에 맞은 미션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차라리 고객사 영업을 100 건 하라는 것보다 더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한 마리, 한 마리 까시를 빼고 또 빼는데, 이놈의 생선들은 까시가 왜 이렇게 안 빠지는지…..
손에는 비린내가 진동하고, 까시는 안 빠지고. 거기다 살은 왜 그렇게 통통하고 큰지 질감이 너무 징그러운거다. ㅠㅠ 생선 너무 무셔..ㅠㅠㅠㅠ 거의 마음 속으로 울면서 한 거 같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한데 내 기억으론 30마리 이상이었는데 남편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과연, 누구의 기억이 맞는 것인가. (그 뒤 우리 시댁에서 일 한 기억은 별로 없다. 외식문화)
친정 엄마도 이런 나를 어이없어하지만. 팩트다.
고등학교시절 공부하라고 한 뒤 집에서는 물 한 컵 내 손으로 마시지 않던 나라 거의 남자라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런 성인 두 명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니, 둘 다 어려움이 만만치가 않다.
전업주부가 꿈이고 살림을 잘하는 야무진 분들을 보면 참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각자의 재능이 다 다르기에, 일단 해 볼 만큼 해보고 잘하는 거에 몰빵 하기로.
▷사진설명: '난생처음 만들어 본 닭볶음탕. 제법 맛있었다'
지난 한 주 그저 분주하게 지내고, 이번 주 약간의 시간이 나는데 어영부영하다보니 시간이 훅 간다. 일을 하면 규칙적으로 기상, 취침, 먹고, 일히고 자는 게 가능한데 FREE한 백수가 되고보니 그 누구가 통제(터치)를 안 하니 이건 잘하면 대박이요 못하면 쪽박이다.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서른여섯 성인으로 요리와 간단한 살림을 마스터해보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자는 나의 원대한 목표는 이러다 개나 줘야 할 판이다. 코칭 교육에서도 많이 말하는데 나 또한 SMART한 목표가 필요하다.
일단 생각나는 대략적인 리스트.
1) 매주 일요일 저녁, 다음 한 주의 '구체적인 시간표 짜기'(월별 계획/주간 식단/ 등)
2)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기한' 설정 : 1차목표 3~5월
-3월 아들애착형성 & 살림
-4월-글쓰기(투루언니 워킹맘생존기 초안끝내기/여행기 기획안 완성/갭이어 프로젝트 시작)
-5월-여행/교육 등...
3) 기상과 취침시간 고정하기(5시기상-11시 취침)
4) 새벽 글쓰기(5시30분 ~7시까지)
5) 아들에게 집중타임 3시간 (매일 3시-6시) 휴대폰 안 보고/ 딴짓 안하고/ 오롯이 집중
6) 감사로 아침과 저녁 맞이하기
7) 내 짜증 밖으로 분출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