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가장 가까이 누릴 수 있는 건 바로 '하늘'
오늘은 한 10일 간 일상에서 내가 발견한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백수 되고 보니 하늘을 볼 기회가 늘었다. 어제는 운동 끝나고 아이스라떼 테이크아웃 하고 오는데 미세먼지 걷힌 파란 하늘과, 그 위에 떠있는 구름이 어마어마 한거다. 사무실에서 앉아있을 때는 파티션 너머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느라 보지 못했던 구름.
왕복 3시간 이동 시간에는 좀비처럼 탔다 휴대폰만 뚫어지게 보느라 놓치고 있던 하늘과 구름.
돈 안 들고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인데 요즘은 미세먼지 땜에 이것도 쉽지 않다. 그냥, 뭐랄까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해진다.
글 쓰고 사색하는 시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커피 한 잔.
함께하는 시간을 '공유'하고 '즐기는'나.
하지만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있어서 지금까지 개념은 '시간을 때운다'였다.
어쩌다가 하루 종일 육아를 전담하는 날에는,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때울 수 있는지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했다. 가까운 쇼핑몰에 가거나, 친정찬스, 누군가 집에 초대하기 등 어마어마 한 이 '시간'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 어떤 이유가 나를 짓눌렀을까. (아마도 완벽하게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에 였을거다.)
다루기가 어려웠다 우리 아들은. '일'은 차라리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대로 할 수 있고 고객사한테 '을'이지만 '욱'할 수라도 있는데 반해 '육아'는 내 의지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일부분이었다. 쉽게 울거나 뛰거나 짜증내는 아이를 '달래는'일은 정말 어렵고, 그 배후에 찾아오는 '당황스러움', '창피함', '수치스러움'들이 감정을 자극했다. 뭔가 마트에서 아들이 바닥을 기거나, 백화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 '상황'이나 '행위'자체를 인정하기 싫고 빨리 처리하고자 급급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들때문에 내 무의식에는 '아들과 둘이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이미 자리잡혔던 것 같다. 그런 무의식이 '시간'에 대한 개념을 '때운다'로 인식시켰다.
생각해보며 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 나는 지금껏 때우기에 급급했나, 반성과 함께 호흡을 가다듬어본다.
이제부터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때우다'가 아닌
'보낸다', '공유한다', '함께한다'로 바꿀 것이다.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가끔은 아들이 하는 말에 '억'하고 놀랄 때가 있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까 말이다. 얼마전에도 하원 후 키즈카페를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이러는거다. ㅎㅎ
"엄마 키즈카페 진짜 갈거예요? 절대로 안 가면 용서 안 할거예요."
"엄마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나 기침해서 밖에 못 나가겠어."
"엄마가 연수 배워서 데려다주세요. 소풍고 가고 과자도 먹으러가요."
맞벌이를 할 때는, 주중 2일정도, 주말은 거의 풀로 외식 하거나 배달음식을 먹었었는데 10일 간 거의 매일 요리를 한다. 식재료도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만, 외식보다는 비용도 적게 들고 몸에도 좋을 거라 합리회한다.(맛은 아직 장담 못 함) 커피 한 잔 5,000원은 안 아까워하는 내가 무 하나가 3,000원인 거에 왜 그리 놀라는지. (엄마 말하길, 너는 커피값만 아껴도 부자 됐다고…)
자유가 생겼지만 역설적으로 더 자유롭지 못하다. 반복되는 일상, 루틴한 하루가 마무리 된 저녁. 이틀에 한 번 꼴로 맥주를 마시며 2KG이 늘고 배가 무지하게 나왔다. 일 할 때는 꾸준히 이동하는 시간이 있고 걷고 일하는 에너지가 있는데 집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왔다갔다 하고 늘어지다보니 훅 오는 거 같다. 다시 빨간 경고불(다이어트는 무덤에도 가져 갈라나보다 끝이없다@.@)
아들 재우고 자유롭게 드라마를 보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 뭘까. 홀가분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초라함'이 몰려온다. 저녁에 산책을 나가 길을 걷다 바라본 건너편 신축 아파트의 불빛에 '초라함'이 느껴진다. 영상통화를 하며 본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모습에 '초라함'이 느껴진다.
수시로 찾아오는 '이 감정'을 그냥 인정해주고, 충분히 느껴야겠다. 애써 부정하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고. 지금은 충분히 그럴 때니까.
내 정체성이 달라지니 짜증도 덜 내고 화도 덜 나고(새로운 화가 오지만…5세와의 결투) 한층 여유로워진 건 확실히 맞다. (불안감은 좀 늘었지만.)
그러고 보니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수 없이 많은 고민과 번뇌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렇게 홀가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고민의 시간을 줄일 걸 그랬다.
사표를 내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며 땅이 무너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뭘 그렇게 욕심 부려 꿈을 이뤄보겠다고 아등바등 안절부절 노심초사 했는지 모르겠다. 단톡에서 과감히 ‘나가기’버튼을 누르는데 어찌나 신나고 자유롭던지. 쇼생크 탈출 저리가라다.(그러나 다시 들어가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간 분주해 못 보던 사람들과 슬슬 만나고 있다. 화요일에는 15년 만에 대학교 신입생 시절 밴드부 보컬이던 H를 만났다. 그녀 또한 이직으로 인해 잠시 텀이 나 조우했는데 처지가 비슷했다. 6살 아들을 둔 워킹맘.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게 아니라는 위안과, 우리 내 여인들은 대학시절 강철같은 자아와 페미니스트 같은 당참이 있었는데 15년 지나 현실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생각해봤다.
우리 둘 다 내면에 억압되고 억눌린 자아가 많다는 결론을 내리며,
더 늦기 전에 신나게 놀기로 했다.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 속 살고 있는 우리.
내 고민을 해결해 줄 그 누구도 없기에, 스스로 씩씩하게 세상과 마주하며 부딪히며 해결하고자 한다. 징징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좀 넘어지더라도 묻지 말고 혼자 힘으로. 부숴버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