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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 과잉은 어떻게 파괴되는가.

찌질함의 극치를 경험하고서 소멸되어 간다.

by 제니
"[상실감]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슬퍼해야 할 것은 슬퍼하면서 상황을 인정하고, 능력 밖의 일은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믿을 준비를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다."
-by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럼




#1

요즘 애정하는 브런치 글이 있다. 한편 한편 볼 때마다 어찌나 좋던지....


어제는 특별히 가슴에 들어온 챕터가 있었다.

'피해의식'의 촉매제는 바로 '자의식 과잉'이라고 한다.


04화 피해의식의 촉매제, 자의식 과잉 (brunch.co.kr)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자의식 과잉'이 덜한 사람은 그냥 훅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타인'에게도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타인'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암 그렇지. 그걸 깨닫는 데 좀 오래 걸렸다.


나는 원하는 걸 다 '누려야 하는 대상'이라고 착각했다. 30대 이후 그게 잘 안 되어 괴로웠다.

그간 누려온 것들이 나의 노력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과 배려'가 있었음을 잘 알지 못했다.



#2

오전에 오랜만에 요가를 갔다. 1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선생님 저 진짜 유연했었는데.... 아 그건 20대니까 너무 예전이네요.ㅎㅎㅎ"


누구에게나 '인싸'시절이 있다.(물론 몇 부류들은 '아싸'였다고도 하지만) 근데 그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면 문제가 되겠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나 또한 하루하루 소멸되어가고 있다.


조금 느리더라도, 지금의 자리에서 뿌리내려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비록 후회되는 과거의 사건이 있더라도, 아쉬운 결정들이 남아있더라도, 이루지 못한 꿈들이 있을지라도.


그런 면에서 나는 여전히 '융통성'이 없다.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말이다.



#3

폭발할 것 같은 그 무언가가 가슴에 남아있다, 예전에는 그 '에너지'를 쓸 곳이 명확했는데(공부, 수능, 대학, 취직 등등) 그 '대상'이 모호해져서 생기는 병 같다. 막 가슴이 미치게 답답한데, 뭔가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상태. 뭔가 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뭐부터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상태.


그러다 잠시 '회피'하는 방향으로 찌질한 행동들을 한다.


아 쪽팔려.




[오늘의 다짐]

그래도, 나름 스스로는(누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인데 쪽팔리게는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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