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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50일째.

백수돌입 두 달이 다 되어간다.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생활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내가 생각하는 '우아함'은 어떤 것인가요? (우아함의 정의를 내려보세요)
Q)'우아함'을 지금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Q)매일 10분씩 '나를 대접하는 시간'을 만든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법 쌀쌀했던 날씨는 꽃들과 함께 더웠다 추웠다 아직은 변덕스럽다. 내 마음같이.


#1 - 내 생애 첫 장조림, 어머니의 사랑


장조림을 했다. 아들 아침 저녁을 챙기는 게 쉽지 않은데 영양가를 생각해 좋아하는 메추리알 장조림을 하기로 다짐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장조림에 필요한 소고기 장조림 부위를 사고 무항생제 삶은 메추리알을 사고, 아들을 재우고 만들어 보았다. 소고기 요리는 핏물 빼기 등부터 시작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 인터넷 레시피의 순서대로 고기를 찬 물에 넣고 핏물을 빼고 30분을 기다린다. 핏물 뺀 고기가 될 동안 한 쪽에서 육수를 만들었다. 반 자른 양파, 통 마늘, 대파 등 필요한 재료들을 넣고 펄펄 끓였다.


좁은 주방이 참으로 분주하다. 숙련된 사람들은 요리를 하면서 그때그때 치우고 정리하며 한다는데, 초보는 할 때마다 레시피 찾느라 분주하고, 불 조절하랴, 레시피 보랴, 쌓인 재료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쇠 젓가락으로 꾹꾹 눌러봐서 잘 읽은 것 같아 소고기 삶던 냄비 불을 껐다. 다른 그릇데 옮긴 뒤 하나하나 잘게 손으로 찢었다.

뜨겁기도 하고 질기기도 하고, 음식은 역시 손 맛 이던가.


▷사진설명_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어봤다. 엄마가 요리를 잘해서 보통 먹어본 사람이 잘 만들거라고 하긴 하던데 그 말이 맞나 모르겠다.



이번에는 간장 소스를 만들기 위해 양조간장, 참기름, 간마늘 등을 넣었다. 잘게 찢은 고기들을 또 다른 냄비에 넣고 삶던 육수와 간장소스를 넣고 메추리알을 넣었다. 끓인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미 짜졌다. 장조림은 짠 맛이라지만 이건 좀 많이 짰다. 뒤늦게 흥건했던 간장 국물들을 덜어내고 주걱으로 타지 않게 열심히 휘저었다. 대략 2시간 내외가 걸린 듯 하다. 재료비 2만원 정도에 비해 완성된 양은 작은 반찬통 2개 분량이라 적자임에 분명하다. 허나, 시판되는 장조림보다 몸에 좋을 거라는 생각으로 심리적 위안을 삼는다.


그간, 집에서 당연하게 먹어 온 장조림 등 기본 반찬이, '엄마의 수고'에 의해 먹을 수 있었음을 다시금 느낀다. 엄마도 우리를 위해 바쁜 일상에서도 음식을 하느라 참 바빴구나.


우리가 다 그렇게 컸구나. 일상은 참으로 단순한데 복잡하고 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들이 굉장히 많구나. 나만 몰랐네ㅎㅎ




#2- 반가운 이면에 찾아온 '초라함'


지금까지 4개의 회사를 다녔다. 희노애락이 있었고 그것을 공유한 사람들이 있었다. 2008년 첫 취업 후 지금까지 소식을 전하는 J선배를 만났다. 워낙 스마트 하기도 하지만 대단한 노력파다. 같은 직무로 알게 된 그 해를 지나 선배는 타 회사의 인사,노무 부서에서 일을 시작 했고 곧이어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노무법인에서도 일을 했다. 선배도 우리 아들보다 한 살 어린 딸을 낳고 지금껏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서로 바삐 사니 만난 건 3~4년 전이다. 그런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00공기업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역시, J선배는 내 주변에서 시험을 잘 보며, 또 집중력이 대단해서 결과물이 큰 사람 중에 하나다. 그간 많은 고생과, 힘듦이 있었음을 잘 알기에, ‘최종합격’을 받아 든 선배가 기뻐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서울에 올 일이 있다고 해 급하게 정해진 ‘벙개’를 했다. 오랜 만에 봐도 엊그제 그 모습이다 서로.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고 그렇게 서로의 길을 응원했다.


“너는 재주가 많아서 그래.”


뭘 못해야 한 길을 쭉 가는데 이것저것 조금씩 할 줄 아는 게 지금의 나를 만든 듯 하다 ㅎㅎ


공기업 시험 정보도 주고, 나이제한이 없고 블라인드 채용이라 준비해봐도 좋겠다고 이야기해줬다.

아, 맞아... 내가 지금 서른여섯이지. 한가하게 남편 말대로 ‘자아찾기’할 때가 아닌데…


물론, 한가한 자아찾기는 아니다. 가정 내 여러 갈등 요소를 목격 한 뒤 내린 처방이지만 그 효능이 매우 느리기에 약을 먹기가 겁이 난다. 특히나, 잘 알고 있던 지인들의 소식을 듣자면 거창하고 뚜렷한 소신으로 시작한 ‘자발적 백수’의 길도 두려운 길로 바뀌게 된다.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가 주는 부담감, 뭔가 이제는 안정적인 그 무언가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편견, 나만 다람쥐 통 안에서 바퀴 굴리기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자괴감. 참 에너지가 남아도나 보다. 이런 저런 상념들이 많은 걸 보니.



‘공기업’이 확 끌리지만, 뭔가 또 시작하기 앞 서 지난 내 과거를 돌아보았다. 다니던 네 곳의 회사는 그런대로 좋은 곳들 이었다. 안정적이고 여자들이 선호하는 곳도 있었고, 워라밸이 잘 맞는 곳도 있었고, 직무가 참 좋은 곳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나온 나이기에, ‘공기업’을 들어간다고 해서 안 나올 수 있을까,


내 적성이 조직보단 다른 쪽에 맞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허나, 한편으로는 가보지도 않은 그 곳(공기업 같은 조직)에 오히려 또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한다. 이제 좀 더 노련해졌고 여러 갈등도 경험해보고 아이도 낳아봤기에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신 단디 차리고, 시작한 거나 잘 하자. 이도 저도 안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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