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육아’,그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보석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 스스로에 '어떤 편견'을 갖고 있나요?
Q) 그 편견은 '내'가 만든 것인가요, '타인'이 부여해 준 것인가요?
Q) 자신에 대한 '편견'중 한 가지를 직접 실행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아,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 만든 울타리와 편견 속 시도하지 못하고 꽃피지 못한 채 꺾이는 건가.
회사를 다닐 때면 분주하고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으나 통장에 입금이 되고, 집에 있으니 전보다는 여유가 있지만 점점 줄어드는 잔고,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버리는 시간, 아이의 만족감이 커질수록 반비례하게 나의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공존한다.
나의 모성이 잘못 된 것일까.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감’을 마주한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中>
나는 분만기가 닥쳐올수록 이러한 생각이 났다. ‘내가 ‘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그러나 있기에 자식이 생기는 것이지.’하며 아무리 이리저리 있을 듯한 것을 끌어 보니 생리상 구조의 자격 외에는 겸사가 아니라 정신상으로는 아무 자격이 없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품이 조급하여 조금 조금씩 자라 가는 것을 기다릴 수 없을 듯도 싶고, 과민한 신경이 늘 고독한 것을 찾기 때문에 무시로 빽빽 우는 소리를 참을 만한 인내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무지몰각하니 무엇으로 그 아이에게 숨어 있는 천분과 재능을 틀림없이 열어 인도할 수 있으며, 또 만일 먹여 주는 남편에게 불행이 있다 하면 나와 두 몸의 생명을 어찌 보존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그림은 점점 불충실해지고 독서는 시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자신을 교양하여 사람답고 여성답게, 그리고 개성적으로 살 만한 내용을 준비하려면 썩 침착한 사색과 공부와 실행을 위한 허다한 시간이 필요하겠다. 그러나 자식이 생기고 보면 그러한 여유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게는 군일 같았고, 내 개인적 발전상에는 큰 방해물이 생긴 것 같았다.
이해와 자유의 행복된 생활을 두 사람 사이에 하게 되고, 다시 얻을 수 없는 사랑의 창조요 구체화요 해답인 줄 알면서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행복과 환락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어찌나 슬펐는지 모른다.
-1921년 5월 8일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흔히 말 하는데, 가끔 정말 그런가 생각하게 된다. 아이의 '자기중심성'을 목격할 때마다 거울을 마주하듯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큰 사고가 날까 걱정되는 마음과, 감정의 활화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내 모습을 직면하는 게 너무 슬퍼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나를 보고 아들도 울었다.
설정 값을 바꿔야겠다.
늘 좋고, 행복하고, 유쾌한 날만 있는 게 아니라,
사건사고 없이 무탈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엄마가 많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답답하고 절박한 상황에, 도움 청할 곳이 아무도 없어 막막하고 눈물 나던 그때, 엄마는 손 내밀어준 은인이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주변을 돌아보니 감사할 게 많다. 의식하지 못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 중 당연한 게 없다. 엄마한테 잘 해야겠다. 옆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며 나 또한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