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힘든건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엄마가 무릎이 아프다고해서 동네 전문병원에서 MRI를 찍었다. 선천적 연골기형이라나 레이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 무릎 허리 이런 부위는 큰 병원 2~3군데를 간 뒤 결정하는 게 좋다고들 해 유명한 병원을 수소문했다.
때마침 경희대병원 배내경 교수님이 유명하다고 해 그곳에 다니는 k오빠에게 문의를 했다. 보통 일반예약을 하면 진료대기만 1년정도 걸리는데 알아봐준 덕분에 빨리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급하게 연락이 온 걸 보니 예약한 다른 환자가 취소를 한 모양이디.)
오늘 오전 10시 30분으로 예약을 하고, 관련 자료들을 어제 준비하러 동네 병원에 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담당의사가 수술하는 날이라 오늘 8시30분까지 다시 오라고 했단다.
14갤 아들을 아침먹이고 아빠 차를 타고 부랴부랴 동네 병원으로 이동. 허허 이거 웬걸! 접수가 8시30분 이었고 진료는 9시 부터란다. 게다가 부원장이라는 그 의사분이 오전 회의로 10분 지연 된다고 알려왔다. 대기번호는 5번.
수원에서 회기까지 못해도 1시간 30분은 걸리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9시20분.
부랴부랴 의사의 확인을 받고 원무과에 가서 진료기록이랑 영상물을 띠는데 또 20분이 걸린단다.
나도, 엄마도 마음이 조급해왔다. 미안한 마음 가득안고 다시 연락을 취해 좀 늦는다고 말했다.
K오빠가 신경써준 덕에 생각보다 일찍 날짜를 잡을 수 있었지만, 일이 잘 풀리지는 않는다.
그즈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억 울 하 면 출 세 하 라'
라는 말이었다.
아빠 차에 올라타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을 본다.
취업소개를 해줬던 후배였던 j는 모임을 조직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전 회사 팀장이던 h선배는 독자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이었다.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열심히 달리고 있었고 난 멈춰있었다.
아니, 어쩌면 정체하거나 뒷걸음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육아가 참 어려운데, 육체적인 것이 전부는 아니다.
점점 커가는 아이와는 다르게 점점 퇴행해버린 듯한 나의 인생 시간표 때문이다.
한 때는 같은 배를 타거나 더 빨리 달렸다고 생각했던 내 배만 침몰한 것 같은 위기감.
아무리 소리쳐도 구조될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아이가 커버린 후 쓸모 없어질 것 같은 불안감.
이 모든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며 어지럽히는 내 머릿속이 가장 힘들다.
요즘 읽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 보면, 정신의 문제는 육체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안다.
잘먹고 잘자고 잘쉬면 이런 생각도 안 든다는 걸.
허나 육아는 언제나 예측불허.
뭐가 문제였는지 새벽에 깨 30분 넘게 고래고래 울다 잠이든 아들을 달래느라 이미 잠을 설쳤고,
감기가 걸린듯 한 아들을 태워 엄마의 병원을 함께 가야 하는 지금 현실이 역시나 나를 돌볼 수 없게 만든다.
당장 어딘가에라도 취업해 이 상황을 종료하고 싶지만, 괜한 '회피'라는 자책감에 디시금 심호흡을 해본다.
이런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할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