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음식 맛집을 발견했다. 시끌벅적한 초등학교 한국어 교실 수업이 끝나는 목요일, 교문 밖으로 나오는 나의 마음은 깃털이고 구름이다. 그대로 베트남 식당으로 달려가 혼자 점심 식사를 즐기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휴식을 완성하는 화룡점정!
처음엔 쌀국수만 먹었었다. 그러다 다른 음식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져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메뉴판 윗줄 왼쪽부터 차례로 먹어보기로 했다.
"이거 좀 실망스러운데?"
두 번째 줄 첫 번째 메뉴인 찹쌀밥에 대한 첫인상이다. 국그릇에 밥을 담아 엎어놓은 듯한 형태의 노란색 찹쌀밥 위에 베트남 양념 돼지고기, 베트남 햄, 야채가 고명처럼 얹어져 있었다. 그 고명의 양이 너무 적어 보여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단 젓가락으로 한 입 먹어 보았다. 그러자 인도네시아 친구 '광쪼우'가 머릿속에 휘리릭 나타났다.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휘리릭.
"이거 어디서 먹어본 맛인데..."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인 2000년, 대만 타이중시 동해대학 여자기숙사에서 어학연수 첫 학기를 보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대로 적응하느라 꽤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과 날씨였다. 룸메이트 모두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일 뿐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숙사에 있으면 말이 빨리 늘지 않을까 하여 시작한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하루에 몇 마디 나누기도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어학당 친구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 화교인 광쪼우, 태국 화교인 야차이와 친해졌다.
외로움 못지않게 힘들었던 건 덥고 습한 날씨였다. 그때는 기숙사 방에 에어컨이 없었다. 두 번째 학기에는 학교 밖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 방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누나만 7명이 있는 태국 부잣집 막내아들인 야차이 방에만 에어컨이 있어 수업이 끝나면 야차이 집으로 몰려가곤 했다.
날씨와 연관된 추억은 웃프다. 여름밤 길가 관목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거짓말 조금 보태 한 다리에 50방씩, 도합 100방씩 모기에 물린 적도 있다.
"이게 무슨 냄새지?"
함께 어학연수를 떠난 친구가 자신에게서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며 한참을 킁킁거리다 찾아낸 냄새의 근원지는 손목시계. 가죽으로 된 손목시계 끈에서 걸레 냄새를 찾아낸 적도 있다. 허리띠를 하던 친구는 배꼽 주변에 피부병이 생긴 적도 있다.
겨울은 겨울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난방시설이 없기에 기온이 10도대로 떨어지면 몹시 추웠다. 겨울에도 20도 이상의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우리네를 생각해 보면 그 냉랭함을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철에 대만 아이들은 두툼한 솜이불을 덮었고, 나 역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가볍고 따뜻한 오리털 이불을 덮었다.
언제인가부터 몸이 몹시 가려워졌다. 몸 여기저기 가렵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잘 때 무의식적으로 긁어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에 상처가 생겼다. 특히 산부인과 질환이 심해져 몹시 괴로웠다. 지금 같으면 당장 산부인과에 달려갔겠지만, 그때는 산부인과, 것도 대만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 두려워 이러다 나아지겠지 하며 하루 이틀 미루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돼서야 병원에 갔다. 친구와 물어물어 더듬더듬 20~30분 정도 걸어갔던 것 같다.
산부인과 의사가 진료하더니 곰팡이 균에 감염되었는데, 염증이 심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겨울철에도 습도가 높은 대만에서는 수시로 이불을 야외에 널어 햇볕에 말렸어야 했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이불속 오리털에 곰팡이가 생겼던 것이다. 그제야 기숙사 옥상에 여기저기 널려 있던 이불이 떠올랐다.
의사가 소독을 하고 곰팡이 균을 죽이는 질정제를 넣었다. 진료를 마치고 다시 터덜터덜 걸어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너무 힘들고 지쳐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광쪼우' 집 문을 두드렸다.
"잠깐 쉬었다 가도 돼?"
다행히 광쪼우가 집에 있었다. 방에서 잠깐 쉬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질정제가 녹으면서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러자 상처에 소독약을 들이부은 것처럼 아파왔다. 자면서 긁은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이 통증이 서러운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병의 마개를 열어버렸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쪼우가 잠시 쉬라고 하며 쓱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눈을 번쩍 뜬 나에게 친구는 30분 정도 잤다고 했다.
"밥 먹고 가."
이때 광쪼우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문 밖에서 사부작사부작 밥을 한 것이다. 착하고 고맙고 배려심 넘치는 광쪼우! 이때 만들어 준 밥이 바로 코코넛 밥이었다.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 23년이 지난 지금 병원에 동행했던 친구는 광쪼우가 밥을 해 준 것은 기억이 나지만 그것이 무슨 밥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한 바가지의 눈물과 감동 한 컵이 더해진 광쪼우의 코코넛밥, 그 기억이 생생하다.
"맛이 어때요? 코코넛을 넣은 찹쌀밥이에요. 한국 사람들 중에 이 밥 느끼하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장님의 질문에 광쪼우가 생각난 이유를 깨달았다. 그 맛이었다. 23년 전 산부인과에서 돌아오던 그날,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던 그날, 지쳐 잠들었던 나에게 광쪼우가 해 준 그 밥맛이었다.
밥 먹다 눈물이 흘렀다. 며칠 후 친구와 다시 방문한 베트남 식당에서 친구에게 참쌀밥 먹다 눈물이 흐른 얘기를 해주다 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찹쌀밥이 눈물 버튼을 제대로 건드렸다.
남동생 가족과 올겨울에 동남아시아 리조트로 여행을 가려고 계획 중이다. 괌이나 사이판을 가자는 사람도, 발리에 가자는 사람도 있다. 만약 발리에 간다면 나는 자카르타를 경유하리라. 광쪼우를 만나야겠다. 20년 만에. 광쪼우의 아내와 나이 마흔이 넘어 낳은 아들도 만나리라.
"광쪼우, 잘 지냈어? 며칠 전에 베트남 찹쌀밥 먹었는데 네 생각나더라. 그날 나한테 참쌀밥 해준 거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