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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으로 채우지 못한 빈 하늘에 우리 잠시 끄적일까요.

[ 잠시 잠깐 들러가는 그날의 에세이 : 지나간 이들을 그렸습니다 ]

by Soden

나를 지나간 이들을 한데 모아 그려봅니다.

사랑하였거든,

사랑하지 않았거든,

모두모아 그렸습니다.


과거의 이들이 모였을 때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집니다.


그들은 내가 살아갈 수 있다 말해줄까요.

그게 아니라면,

나를 멈추어 세 우려 들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사랑이라 불리우던 어떤 이는

여지껏 나의 세상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나의 세상을 자주 소란스럽게 하였고

이따금씩 내가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곤 하였습니다.


미움뿐이 없을 거라며, 서로 입안 가득 머금은 아밀라아제를 허공에 분사하던 어떤 이는 지금

' 이 편지는 영국로부터 시작되어'의 문장의 편지를

처음 마주했던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종이에 적힌 미신과도 같은 문구 몇 자를 손목이 시리도록 꾹꾹 눌러쓴다면 정말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면서요.


한평생 미움뿐일 거라 여기던 이로부터

저 또한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만하는 어마무시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 이 편지는 미움으로부터 시작되어.. 그럼에도 당신에게 작은 희망이 깃들기를 '






올 겨울 나는 유난히도 자주 아파야만 했습니다.


절절 끓어대는 집안 온돌방의 온도는 계속해서 올라갔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냉기는 내 마음속 한가득 자리하고는 떠날줄 몰랐습니다.


이러다 영영 이번해를 넘기지도 못한채 마음이 동사할 것만 같은 불안에

작은 온기라도 모이면 나아질까 싶은 마음으로 하나둘 그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지나간 이들을 한데 모아 그리다보니 벌써 저만큼의 온기가 모여졌습니다.

나는 이제 저 온기들로 봄을 기다려볼심산입니다.



메마른 가지끝에 홀로 솟아오른 목련의 봉우리를 발견했습니다.

온 가지끝 새하얀 팝콘들이 열리는 오시에

지나간 이들을 그리기를 그만 멈추어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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