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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리여리 Mar 20. 2021

[서평] 토마스 뢰머 - 신명기역사서 연구

Thomas Römer, The So-Called Deuteronomistic History: A Sociological, Historical and Literary Introduction (London: Bloomsbury, 2007).


오랫동안 기다린 책이 나왔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매우 좋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아 나중에 번역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에게 이 책이 번역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 책이 번역된다는 소식만으로도 매우 기뻤다. 아마 그 소식을 듣고 약 1년 후에 종이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아무쪼록 한국에서 이렇게 가치 있는 번역들이 계속해서 시도된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조금 더 깊이 있고 풍성한 토론의 장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한국에서 번역된 책들은 주류 학계에 비해 상당히 뒤처진 논의들일 수밖에 없다. 학계의 논의 대부분이 영어 혹은 독일어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국어로 번역되는 책들은 주류 흐름들보다 최소 10년 이후에 그저 쫓아가는 형국이다. 이 책만 해도 원서는 2005년에 초판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15년 후에야 비로소 번역이 된 것이다. 물론 번역되는 책도 다양하지 않고 번역자의 취향에 따라 한두 권만 번역되기 때문에 학계의 다양한 입장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저자인 토마스 뢰머(T. Römer)는 현재 구약학계를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학자이다. 스위스 로잔대학교와 꼴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를 지내고 있는 그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들 중 한 명이다. 그의 박사 논문에서 논증된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단절성은 이미 학자들의 열렬한 토론의 장을 형성하였다. 이 책에서는 제목 그대로 신명기역사서를 연구한다. 더불어 이 책의 부제를 따라 사회학적, 역사적, 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만큼 저자의 논증은 상당히 치밀하며 정교하다.


신명기역사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마틴 노트(M. Noth)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고로 이 책의 곳곳에서 노트를 언급하며 넘어간다. 노트 이전에 주목할 만한 학자는 드 베테(M. de Wette)이다. 그는 왕하 22장에서 요시야가 발견한 책이 원-신명기였을 것이라 주장하여 1805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요시야와 신명기 자료를 하나로 묶음으로 D 자료는 요시야 시기로 고정되었으며, 오경(Pentateuch)이 아닌 사경(Tetrateuch)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흐름을 이어받은 노트는 전기 예언서 연구에서 신명기사가(the Deuteronomist)라는 단일편집자 혹은 저자가 일관된 관점으로 하나의 문학체를 형성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역사 흐름의 중요한 순간에 내레이터가 등장하여 역사를 요약하는 회고 형식으로 표현한다는 데에 있다(수 1:1-9, 12:1-6, 23:1-16; 삿 2:11-3:6; 삼상 12:1-15; 왕상 8:14-53; 왕하 17:7-23). 더불어 신명기사가가 이 역사를 기록한 시기는 예루살렘 함락 이후이며, 목적은 왕국의 몰락을 신학적으로 회고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노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서 현재까지도 신명기역사서 연구에서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노트의 주장이 그가 주장한 그대로 수용된 것은 아니다. 노트의 주장은 수정, 보완 혹은 비판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노트 이후의 흐름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크로스(혹은 하버드)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스멘트(혹은 괴팅겐) 학파’이다. 먼저 F. M. 크로스는 신명기역사서를 요시야 시대에 기록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이해한다. 이 견해에서 신명기역사서의 초판은 요시야의 업적을 칭송하는 왕하 23:25로 끝맺음을 하고, 왕하 23:26-25:30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추가된 본문이다. 반면에 R. 스멘트는 본문의 성격에 따라 공통된 편집층을 구분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명기역사서는 그 주제와 관심사에 따라 DtrH, DtrN, DtrP 등으로 구분된다.


노트의 가설이 중요한 이유는 신명기역사서를 하나의 문학체로 구성함에 따라 그 영향력이 성서 곳곳에 나타난다고 주장하게 된 점이다. 전기 예언서에만 한정되어 있던 신명기사가의 영향력은 이후 예레미야 등의 예언서와 사경 등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대표적으로 블룸(E. Blum)은 사경 내에 존재하는 비제사장 본문(non-P)에서 신명기사가의 영향력을 발견하기도 한다(KD). 더 나아가 만약 사경과 신명기역사서가 연관이 있다면 창세기-열왕기의 거대한 문학 단일체(구경, Enneateuch)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뢰머의 논증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신명기 12장 분석이다. 최근 오경 연구의 경향이 페르시아 시대에 집중하는 것과 같이, 그는 신명기 12장의 최종 편집 시기를 페르시아 시대로 주장한다. 그는 본문이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시대에 걸쳐 총 세 번 편집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로 12:13-18은 요시야의 왕권 강화를 위해 정치적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다. 두 번째로 12:8-12는 포로기에 기록된 것으로 성전에 대한 암시를 주는 본문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12:2-7, 20-27은 페르시아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강한 분리정책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뢰머에 따르면 신명기 12장의 편집 과정은 마치 책의 초두에 서문을 작성하듯이, 각 시대를 지날 때마다 본문이 추가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명기법전이라 부르는 신명기 12-26장의 첫머리에 몇 구절이 추가되었다는 주장이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전 학자들이 쌓아 온 연구 성과 위에 자신의 주장을 차근히 논증한다. 학자적 성실성과 정교한 논증에 토대를 둔 글을 꼼꼼히 따라간다면 어느덧 저자의 주장에 설득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소단락들이 시작될 때마다 독자들을 위해 친절히 안내하는 참고문헌과 군데군데 등장하는 요약, 그리고 초판이 출간된 지 15년이 지나 다시 출간된 한국어판 독자를 위해 친절하게 작성된 한국어판 저자 후기는 독자를 세심히 배려하는 저자의 따뜻한 관심이 묻어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이 책의 말미에 성구 색인과 참고문헌이 있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 물론 이 정도 아쉬움으로는 이 책의 다른 좋은 점들을 가릴 수 없다. 이 분야에 관하여 최근 학계의 논의가 궁금한 독자는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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