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리여리 Mar 26. 2021

[서평] 헤르만 궁켈 - 창세기 설화

Hermann Gunkel, "Die Sagen der Genesis," in Die Genesis übersetzt und erklärt, handbuchkommentar Ⅰ/1 herausgegeben von Nowack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3.. Aufl. 1910), V-C, (=9.. Aufl. 1977, V-C).


Hermann Gunkel, Genesis, vii-lxxxvi. Translated by Mark E. Biddle. MLBS. Macon: Mercer University Press, 1997.



  헤르만 궁켈(H. Gunkel)은 양식비평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의 방법론은 백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확장되어 사용하고 있으며, 본문 이전 단계(pre-text level)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방법론이다.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궁켈의 창세기 주석은 매우 두껍다. 책이 두꺼워진 데에는 서론도 한몫했다. 일종의 방법론의 전환을 가져온 독일어 원서는 약 한 세기가 지나서야 영문으로 번역되었다. 그만큼 대작은 쉽게 손대지 못하는 위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알고 있는 자료비평의 초석을 쌓은 벨하우젠(J. Wellhausen)이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궁켈이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자료비평이 각 문서(JEDP)의 저자를 추적하는 방법론이라면, 양식비평은 저자와는 관계없이 각기 다른 장르에 속하는 자료들을 연구하는 과정이다. 성서에 다양한 양식들이 등장하는데 궁켈은 바로 이 다양성에 집중하여 연구를 시작하였다.

*궁켈은 특별히 자게(Sage)에 천착한다. <창세기 설화>의 서두 '옮긴이의 일러두기'에서 이 자게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 두었다.


  어떤 문화이든 장르가 다르다는 것은 사회적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떤 것은 시로, 어떤 것은 내러티브로 표현될 수 있다. 이렇게 장르가 다르다는 것은 사회적 상황이 달랐다는 것이다. 또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이 있었음을 암시하며, 양식비평은 그 삶의 자리(Sitz-im-Leben)를 추적해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삶의 자리는 본문이 태동한 실제 삶의 맥락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식비평은 인명과 지명의 기원과 연관된다. 실제로 우물가에서, 시장에서, 모닥불 주변에서 나누어지던 이야기들이 실제로 형성된 구전 전승에 초점을 맞춘다.


  궁켈의 양식비평이 태동하던 시공간적 배경은 19C 말-20C 초의 독일이었다. 당시 여러 국가들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통일되어 분리되어 있던 국가가 통합되던 때에 민속학(Volkskunde)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떠올랐다. 이 시기에 민속학이 새로운 학문적 관심으로 떠오르면서 신화, 전설, 민담 등을 연구하여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특별히 그림 형제(Brüder Grimm)가 구전되던 민간전승을 모아 동화를 엮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고대 근동의 여러 유물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신학의 각 분야를 아우르는 종교사학파(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를 형성하였다. 종교사학파는 고대의 다양한 종교 속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을 비교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고대 근동 유물의 발견은 이스라엘 종교가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님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 종교를 파악하려고 하였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비교종교학이 시도되었다. 이렇게 고대 근동의 발견은 성서의 각 양식이 고대 근동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파악하도록 도와주었다.


  양식비평 연구는 궁켈의 창세기 주석으로부터 시작한다. 궁켈은 자신의 창세기 주석에서 창세기가 전설들의 모음이라고 밝힌다. 벨하우젠은 여러 개의 문서들이 모여서 책을 형성하였다고 주장하였지만, 궁켈은 구두 전승에서 이어진 이야기들의 수집물이라 본 것이다. 궁켈 당시에는 고대인들이 머리가 좋지 않고 긴 텍스트를 암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궁켈은 자신의 연구를 작은 단위부터 시작하였다. 그렇게 그는 창세기를 주석하며 구전으로 전승된 최초의 본문은 짧고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독자적인 이야기라 생각하였다. 문서 이전 구전단계부터 연구한 궁켈은 양식비평을 통하여 문서 이전의 발전상을 그리면서 자료비평의 결점을 보완하려 하였다. 자료의 편집자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본 벨하우젠과 마찬가지로, 궁켈도 전승의 수집자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본다. 수집자는 단지 전해져 내려오던 전승들을 이어 붙이기만 했을 뿐, 전승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전승이 스스로 이어져 온 것이라 본다.


  많은 신화는 질문들에 답하고 또한 교훈을 주기는 바라는데, 이는 창세기의 기원 설화도 마찬가지다. 창조 사화는 묻는다. 하늘과 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왜 안식일이 거룩한가? 낙원 이야기는 묻는다. 인간의 이성 그리고 그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와 나란하게,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인간의 언어는? 남녀 간의 사랑은(2:24)? 어찌하여 여자는 출산에 그토록 큰 고통을 느껴야 하며, 남자는 척박한 땅을 갈아야 하고, 뱀은 배로 기어야 하는가? 기타 등등.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바로 언급된 설화들의 핵심 내용을 구성한다. 역사적 사건처럼 보이는 홍수 설화는 또 달리, 끝 부분에 "병인론적"(원인제공적, etiological) 내용을 다룬다. 왜 그러한 홍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가(8:21ff.; 9:8ff.)? 무지개의 의미는 무엇인가(9:12ff.)? 그러한 이야기들의 결말은 자연스레 "그러므로"의 문장으로 끝맺는다("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등).

H. 궁켈, <창세기 설화>, 48-49.


  창세기 주석의 서문인 이 책 <창세기 설화>는 대부분의 내용이 기원론적 이야기에 대한 해설이다. 그리고 이 기원론적 이야기는 아주 작은 단위의 설화들이다. 예컨대, 헤브론 설화, 소돔 설화, 롯의 딸들에 대한 설화, 이삭의 희생 설화, 야곱과 라헬이 우물에서 만난 설화, 브니엘에서의 야곱의 씨름 설화 등(74p) 작은 단위의 설화들을 통해 기원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에 일종의 해답을 주고 있다. 민족 간 갈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고 우리의 조상은 어떻게 하여 자손을 이루었는가 질문한다면 창세기는 이를 설화를 통해 해답을 내려준다. 한국인에게 공통된 뿌리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번 '단군'이라 대답하는 것과 상통한다.


  최종 편집에 대해서는 궁켈도 자료비평의 틀을 따른다. 문서 이전 단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지만 당시 분위기가 자료비평에 크게 매료되어 있던 분위기인지라 결국 본문의 최종 편집은 자료비평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본서의 5장과 6장을 보면 당시 학계에서 논의되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궁켈의 공헌점은 아무도 보지 못했던 본문 이전 단계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 양식비평은 보다 다양한 방법론들과 대화하며 발전해왔다. 트리블(P. Trible)은 수사비평을 통해 양식비평을 문학비평의 지평으로 넓혔으며, 이저(W. Iser)의 독자반응비평을 성서에 적용하여 독자의 역할이 강조되는 새로운 연구방법이 제시되었다. 스위니(M. Sweeney)는 양식비평을 공시적, 통시적 방법론을 통하여 기록 혹은 구전 형태에 언어학적 분석을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양식비평의 이러한 통합적인 접근 방식은 우리가 성서를 해석하는 데에 앞으로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궁켈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방법론과 비평 방식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책을 읽어본 이는 거의 없다. 궁켈의 방법론과 양식비평의 태동에 관심이 있고, 창세기에 관심이 있고 보다 깊이 있게 읽고 싶은 이라면 꼭 손에 한 권씩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바래지 않는데 이 책은 이를 절실히 증명해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