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환 May 29. 2021

초라함

정세린 <purple forest>

 후회는 단물 같지만 빨아먹을 것이 없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앞만 보는 것은 마치 수레와 같다. 끌려오는 것이다. 굴러가거나. 10월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썩 익숙하지 않다. 돌아보지 않는 것은 죽음이다. 누군가는 돌아보지 않을 용기가 없다고 했지만, 맞다. 나는 죽을 용기가 없어서 돌아보는 것이다.


 열차를 자주 탔었다. 열차는 적어도 내가 타고 있는 동안 아주 평온하게 달렸다. 밖에서 들었으면 레일에 바퀴가 갈리는 것이 아주 시끄러웠겠다 생각하며 창문을 바라보니, 날갯짓 한 점 보이지 않았다. 화폭 같구나. 난 달리는 와중에 그렇게 멈추어진 것들을 보았다. 와중에 옆 옆 좌석에서 들리는 타이핑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하니, 금방 터널이 나왔고, 그 덕에 나는 창문을 스윽스윽 문질렀다.


 골칫덩어린가, 열차는 많은 것을 담지 못하니 말이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것에  너무 많은 돈을 주고 탔다고 생각했다. 좌석에 열선이라도 깔아주지 원망스러워졌다. 그래서인지 일어나 자판기로 향했다. 동전은 없었지만, 그저 뭐가 있는지 보고  작정을 했다. 가보니 사이다, 이온음료, 녹차 같은 것들이 었다. 모두 하얀 조명 밑에 내려진 것이, 추워 보였다. 얘들은 적어도 선반 위에 열선이 깔리지 않은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날씨에 자판기에 뜨거운 캔커피가 없다는 것은,  자판기 답다고 생각했다.


 터널과 풍경을 몇 번 반복하면 도착지가 나온다. 물론 중간마다 역에서 잠시 멈추긴 하지만, 그 순간에는 눈을 꽉 감는다. 원래 눈을 감는 것이나, 터널을 보는 것이나 같다. 하지만 문지를 창문이 없는 것은 꽤나 초라하다.


 종점과 종점을 오갔다. 그래서 내가 내린 후 기차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언젠가 저 열차도 다시 방향을 돌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도 그렇겠지, 종점에 왔다고 해서 평생 서있을 순 없겠지. 똑같은 길만 하염없이 오고 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부러워졌다. 그러기만 해도 쓸모 있다며 사람들이 찾으니.


 레일 위 기차 시늉을 해보았다. 입으로 칙칙폭폭 소리도 내볼까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옛날이지 않은가. 요즘 기차에선 끼익 거리며 애써 멈추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에 한 마리에 새 조차 보기 어렵구나. 생각해보니 난 기차로서 영 꽝인 듯하다. 죽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었다. 아 이래서 사람은 용기가 없이 죽는구나. 난 10월에 살아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