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내 취향인데 취향은 딱히 없음
그동안 '취향'을 잘 못 알았다. 취향이라는 건 경험을 통해 얻거나 생기는 줄 알았다. 네이버사전을 통해 알 게 된 "취향"의 뜻에는 경험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취향 趣向 : 명사;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딱히 무언가를 겪지 않아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냥 기분이나 느낌, 상황 혹은 설득 따위로 생기는 것이다. 어쩌다 취향이란 말에 꽂히게 된 건지, 괜한 민망과 부끄러움이 두드러기처럼 돋아났다.
얼마 전 친구가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하는 글을 보고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했다. 구태여 '취향'이란 말을 강조하며 내 글을 폄훼하려는 시도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친구가 건네는 취향이란 실체를 확인하려 애썼다. 취향과 연결시킬만한 그 친구의 성격, 성향, 흥미나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이슈 등등 있는지 물어보았고, 헛소리 같은 대답에 인내심을 십분 발휘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만 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그냥 그 뜻이다.라고 했으나, 그게 뭔데라고 되묻는 한껏 도전적인 그의 눈빛에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폄하할 수밖에 없는 말로 이 짧은 논쟁을 끝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책 좀 읽어라."
"평상시에 책을 가까이하면 네 글 따위를 읽겠니."
맞네. 그러네... 순간 뒤통수를 빡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애초에 좋은 글 좋은 책 널렸는데. 구태여 내 글(책)이라 한들 무겁고 거대한 눈꺼풀과 책 표지와 페이지를 들어 올리는 희생을 발휘할 의무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거 겁나 씁쓸하네. 어쨌든 취향으로 진입은 오롯이 기분과 느낌에 의해 선택하는 것이지, 경험과 숙련으로 하여금 밀도가 쌓이는 것은 먼 훗날의 영역이란 것이다.
몇 달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소설가의 책이 우후죽순 팔리면서 너도나도 평가인지 리뷰인지 모를 말을 한마디씩 SNS에 옮겼을 때가 떠오른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의견보다는 취향으로 진영이 갈린 의견이 더 지배적이었다. 나는 한강 소설가의 소설을 꽤 애정을 담아 읽어본 터라 취향으로 놓고 나누는 걸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다지 한강 소설가 작품 취향 이슈에 끼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론 "취향? 취향도 계속해서 접하고 경험해야 생기는 것 아닌가! 한 달에 소설을 몇 편이나 읽고 취향 타령하는 건가!" 하며 경시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만 셈이다. 차마 하늘을 우러러보기에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걸었던 지난 며칠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으나, 그런 수치는 왜 이리 오래 남는지 여태 이어지고 있다.
서사나 구조, 언어를 조근조근 혹은 대충대충 뜯어먹어가며 재미가 '있네 없네' 하는 건 자칫 밑천이 드러나거나, 너무 예리한 비평 탓에 또 다른 세계를 열어젖히는, 이 두 축으로 되려 저울질될 가능성이 있다. 취향도 저울질의 가능성으로 진입이 가능하지만, 모든 걸 말살할 가능성이 더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저 ''취향이야!' 한 마디 뒤에는 모든 이유나 동기를 깡그리 무시하는 무시무시한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향이 뭐냐고 묻는 건 조심해야 한다. 취향을 묻는 것 자체가 비아냥일 수 있으며, 그 비아냥을 배로 돌려줄 차고 넘치는 명분과 선택이 바로 취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