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玆山魚譜

※질투주의 영화뒷담화

by 지음 허투루

관찰을 통한 상상력은 사람을 설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힘을 지닌다. 이준익 감독은 상상력에 세밀한 관찰을 더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인물로 그 배경에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내가 저 영화 속 사람 중 한 명이 되어 서사를 따라다니는 착각이 든다. 관찰자로서 주인공들에게 몰입해 그들의 내러티브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 같은 불편이 생긴다.

위에서 말한 불편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외면하고 싶은 불쾌가 아니라, 영화와 현실 그리고 나 사이의 간극을 선명하게 자극하고, 울림을 발생시키는 단초이다. 섣부르게 관객의 현실과 주변 따위를 돌아보도록 질문을 하거나, 훈수를 두는 꼰대 짓이 없어서 좋다. 실제 인물을 영화로 녹이며 원래 가지고 있던 인물의 이미지를 소비하는데도 꼰대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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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부터 영화 연극 희곡 각기 다른 컨텐츠

이준익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상상력이다. 그의 첫 천만 관객의 영화 『왕의 남자』 덕분이다. 『왕의 남자』는 김태웅 희곡 『이(爾)』를 각색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자산어보 얘기하다가 갑자기 왕의 남자?) 희곡을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인물이 변화를 거치며 희곡은 희곡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여운을 남긴다. 특히 ‘공길’이란 인물을 희곡에서 탐욕적 권력자로 파멸을 맞는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연산군'과의 얼레리 꼴레리 멜로적인 인물이다. 상상은 서사와 연결하여 전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특히, '공길'은 실록에 등장하며, 실존인물의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나와있지 않다. 몇 줄 안 되는 실록의 기록이 희곡으로 영화로 한 편의 드라마가 되어버린 상상의 결정체. 소설의 허구나, SF 공상과학영화는 전혀 다른 레러티브 한 상상력, 『자산어보』 또한 마찬가지다. 실록의 기록에는 '정약전'의 유배생활이 열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준익 감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흑산도(자산) 백성(창대) 모습을 담아내며 우리 현실로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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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왼 쪽JTBC 방구석1렬 스틸 컷 ‘출처

‘창대’란 인물 또한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정약전’은 조선의 강상을 어지럽힌 사학(천주교)을 받아들였다 하여, 흑산도로 유배된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정약전’과 ‘창대’라는 인물과 그들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인물을 통해 역사와 오늘날 시대정신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흑백의 영상미는 관객이 관찰자로 정직하게 영화를 들여다보도록 몰입감을 더한다. 특히 조선 후기를 왠지 모르게 1960년대 아주 가까운 역사 배경으로 데려온 듯하다. 특히, 『동주』에서처럼 영상 자체가 언어가 되어, 모든 감각기관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영화는 색채, 소품, 어부로써 생물을 다루는 손과 손놀림, 그리고 민초와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 공간과 흑산도(자산)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봐도 얼마 많은 과정을 치밀하게 거쳤는지, 단 한순간도 걸리적거리는 게 없이 영상이 읽힌다. 정조가 승하한 후 상황과 「신유박해」, 「황사영 백서 사건」, 정약전이 소나무 벌채 금지 정책에 대해 저술한 『송정사의』와 어물 장수 문순득의 표류 경험을 기록한 『표해시말』의 집필 과정도 영화 속 일화로 배치해 반갑고 이 모든 게 미쁘기도 하다.


단 하나 꼰대력이 조금 엿보인 모습이 있다면, ‘배움’ 고결한 철학? 열린 태도? 서양 문물의 가치까지 받아들이며 민중의 삶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정약전의 의지, 숭고함, 교훈의 메시지가 컸다. 그러나 충분히 자연스럽고, 계몽이 당연하다시피 한 일생이었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지만, 가거댁을 비롯하여, 창대에게 천자문을 알려준 풍헌, 흑산도 별장의 대사 속에도 얼마든 현실과 맞닿은 울림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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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스나이더 컷, 고질라 VS 콩처럼 대작 블럭버스터 영화의 스크린을 찢어버릴 것 같은 훌륭한 그래픽 영상 효과 뽕뽕 영화들 가운데 빛나는 단 하나. 그 특별함. 날것의 느낌과 그 날것의 생생한 현장을 위해 무수히 많은 역사적 문헌과 자료를 참고했을 노력과 기술! 절대 블럭버스터의 그래픽 기술에 뒤지지 않을 우리의 영화. 나의 영화.

이래서 준익이 형 준익이 형 하는구나.
(이준익 사단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진짜 뭐 그런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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