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답답주의 영화뒷담화
미드나이트
도시의 밤은 낮과 대립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밤은 어느 밤들보다 밝고 소란스럽다. 고로나 19로 인해 밝고 소란스러운 밤이 짧아지긴 했지만, 도시의 번화가는 그래도 저 달의 밝기를 추월한 지 오래다. 영화 미드나이트의 공간은 그런 번화가 뒤 주택단지가 만들어낸 골목과 언덕 그 사이 빼곡하게 늘어선 비보호 도로와 건물들 사이사이 밤보다 더 어두운 곳이다. 악어의 쩍 벌린 입처럼 빛을 천천히 삼켜버릴 듯 오싹하고 불길한 공간으로 재현했다.
<미트 나이트>는 어둠마저 더 어두운 곳에서 청각장애인의 살해 위협이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면에서 불길함과 공포가 더해진다. 빛 한 줌 없는 어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남은 빛마저 빼앗길까 무서운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경미`는 귀가하던 길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소정`을 목격하고, 그녀를 도와주려다 연쇄살인마 `도식`의 새로운 타깃이 된다. 같이 있던 ‘경미의 엄마‘ 또한 청각장애가 있다. 그녀는 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모양 분위기 여러 몸짓을 보고 ‘도식’의 정체를 가장 빨리 눈치 챈다. 그럴수록 ‘도식’의 타깃만 늘어날 뿐이고, 위협은 한 사람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생태계 파괴자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도식’의 추격을 받는 ‘경미’와 ‘경미 엄마’ 파괴 직전의 위기에서 기지를 발휘해 헤쳐나가는 긴장감의 스릴러 영화 <미드나이트>
‘경미’는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것이 빛이다. ‘도식’은 ‘소정’의 빛을 하나하나 빼앗으며 코앞까지 다가온다. ‘소정’이 의지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궁지에 몰리는 서스펜스는 쫄깃하다. 그러나 ‘도식’은 화룡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도 어이없게 ‘소정’을 놓치는 실수를 반복한다. 이쯤 되면, ‘소정’의 생존이 아니라, ‘도식’의 살인을 응원하게 될 정도로 ‘도식’의 미숙한 결정력에 연민이 인다. ‘소정’의 기지는 비단 ‘소정’ 뿐 아니라 ‘도식’을 둘러싼 인물과 협력으로 일어나긴 하지만, 절벽 끝에 선 ‘소정’을 마치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을 거란 오만과 교만으로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러니 혼자이던 소정에게 협력자들이 점점 달라붙고, ‘도식’의 거짓말이나 살해 의지 따위는 더는 ‘소정’의 빛을 빼앗지 못하고 되려 궁지에 몰린다.
도식아 분발하자!
감독은 분명 경찰 공무원 공권력 행사나 신뢰에 대해서 큰 불만을 품은 게 분명하다. 살인 목격자를 놓치고, 청각장애 목격자에 관한 매뉴얼과 그들이 목격자에게 대하는 방식이 풍자나 해악에 가까울 정도로 희화하고 있다. 특히 살해, 납치, 용의자의 도식을 확인하고서는 2차 피해를 고려하지 않고 소정과 소정의 어머니를 아무런 조치 없이 집으로 돌려보낸다. 주변 탐색도 하지 않고 곧바로 위험에 노출되게 만드는, 마치 도식의 의지보다 경찰의 미흡이 위협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묘한 인과관계에 놓인 경찰이란 장치를 매우 훌륭하게 배치하였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는 영화 곳곳에 발견된다. 청각장애와 소리와 수화, 그리고 소리를 알려주는 불빛, 현관의 반투명 유리. 휴대폰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중에 가장 시선을 잡아 끈 장치는 역시 캐릭터다. ‘도식’은 연쇄살인범이지만 사이코패스는 아니다.(너무 허술해!) ‘소정의 오빠’는 멍청하긴 해도 ‘도식’ 따위는 혼자서 찜 쪄 먹을 모태솔로 아니 모태 동생바보이며, ‘소정’은 똘똘하고 오지랖 넓은 심청이라는 것. 그들의 현실 자체가 어떻게 해서든 이야기를 더해간다. 영화가 디테일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주택단지에는 너무하다 할 정도로 사람이 없고, 2인 1조로 움직이는 절대원칙의 순찰 같은 디테일 따위는 없어도 극을 끌고 가는데 무리가 없다, 아니, ‘무리가 없다’기 보단, 오히려 일부러 디테일을 축소해야만 살아나는 긴장감을 위한 장치로, 주연 조연 헐 거 없이. ‘캐릭터’야 말로 영화 <미드나이트>의 남은 빛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훌륭한 장치다.
이 영화의 ‘재미’는 장치에 의한 답답함에 있다.
그러니까 존나 답답해야 이 영화가 사는 것이다.
근데, 관객은 안 그럴지도……
영화의 현실성이라는 건 디테일한 절대원칙이 아니라 소리가 없는 사람이 처한 현실이라든가 소통의 방식, 그리고 소리가 없는 사람들이 소리가 넘치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표현‘ 인 것이다. 빛, 문자, 수화 너무도 명확한 소통방식이 있음에도 오롯이 소리만 고집하는 이 사회는 소정을 소외하고 있진 않은가? 되묻는다. 나는 관객인가? 소리가 넘치는 세상인가? 소정인가? 그도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