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음 허투루 Jun 09. 2023

나는 내 글에 자신이 없다.

그냥이라는 욕망

  

  책을 한 권 내고, 고작 몇 권 팔아 보겠다고 지인들에게 책을 파는 서점 링크를 보냈다. 지인들이라고 해봐야 고작 20명 남짓, 팔아봐야 얼마나 팔리겠냐 기대 따위는 애초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한 명이라도 책을 구매해 줄 누군가를 찾아 휴대폰 연락처 목록을 뒤지고 있다. 휴대폰 연락처는 200명 가령 있지만 선뜻 링크를 보낼만한 사람이 없다. 그리 제외시켜 버린 사람의 면면을 보며,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과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불편한 사람들이다.

  뭐가 그리 불편한가.


  불편한 이유는 많지만, 하나하나 나열하기엔 피곤한 상기일 뿐이다. 다만, 그다지 친하지 않거나, 저장만 되어있지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저 친하지 않은 건 비즈니스관계 보다도 못한 그러니까...... 꼰대 같은 사람들이다. 책이 왜 이리 비싸냐는 둥, 리뷰를 평가질로 착각하고 갑자기 문학강의라도 하듯 침을 튀겨대는 둥,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쓰냐는 둥, 한마디 말이 백개의 불화살로 돌아올 것 같은 빌런들이다.


  물론 독자를 선택할 수도 없고, 그러한 비판이 무서우면 글을 쓰지 않는 것 또한 타당하다. 너무 타당하고 온당하고 적절하여, 내 모든 말이 변명, 핑계, 지랄 같은 구실에 불과하다. 나는 평가질 따위에 겸허하게 넘기거나 경청하여 복기하여 자양분으로 삼을 만큼 넉넉지 못하다. 그렇다고 반박이나 논박할 만큼 자신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쫄보다. 나는 몇 번이나 스스로 '쫄보'라고 규정하고 그러니까 공포를 조장하지 말아 달라고 손과 발을 빌어대는 중이지만, 세상은 나 같은 한 개인에게 관심 없다. 그래도 빌어대는 걸 안 할 수 없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최악의 방어다. 최악은 자신이 있거나 실력을 갖추지도 못했으면서, 이 바닥에 발을 디밀었다는 것이고, 밑천이 드러나는 게 무서워 갖은 허세와 비약을 일삼는 미령이다. "미령 (靡寧)"의 뜻은 어른의 몸이 병으로 인하여 편하지 못하다.이다. 즉, 글을 쓰겠다 다짐과 행동이 "어른"이라면 "병"은 실력이고, "편하지 못하다"는 지금의 허영과 허세에 찌든 못난 태도 아닐는지, 그런데도 책 한 권 팔아보려, 링크를 보내는 마음 한 구석에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괜한 엄살이 아닌가! 그것도 맞다. 어차피 판매량은 대충 정해져 있으니, 알게 뭐냐! 단지 좀 어떤 기대 같은 것이 왜 이리 부담스럽고 주체스러운지. 그래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한 명만 더 찾아 링크를 보내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표지 디자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