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와 “지음”
허투루가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음 앞에 앉자마자 지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잔을 모두 비워 버렸다. 컵 안에는 채다 녹지 않는 얼음만 쌓여 있었다.
"뭐냐?"
지음의 물음에 허투루는 '존나 빡쳐서 열이 뻗친다'며 과장스럽게 들숨과 날숨 사이, 어간이나 어미에 말하나 더 붙으면 욕이 될 것 같은 말을 섞어 내뱉었다. 약 500mL나 되는 차가운 음료를 숨 한 번 안 뱉고 마시고는 숨을 허떡거렸다. 지음은 솔직히 허가 흥분한 이유에 대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음료를 허락도 없이 남기지 않고 다 마셔버린 허투루의 무례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허투루의 무례에 대한 핀잔에 앞서 무슨 이유인지 물어봐야 하는 어떤 책임이 차올랐다. 책임이란 건 허투루가 저지른 무례에 어떤 사유가 있다하더라도 자신의 음료를 탈취한 사유 따위가 시답지 않음을 상기시키 위한 하나의 명분이나 순서라 여겼다.
지음이 허투루에게 '뭔데 그래?' 음성의 고조 없이 건조하게 물었다. 허투루는 지음의 말 뉘앙스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좀 전에 있었던 자신의 일을 지음에게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웬 할아버지가 이어폰도 없이 유튜븐지 뭔지 음악을 존나 크게 틀어놓고 있잖냐. 내가 왜 그 할배 음악 취향을 알아야 하냐?"
그니까 허투루의 말은 그 음악이 듣기 싫었던 건지, 시끄러웠던 건지, 혹은 듣기 싫어 시끄럽게 느꼈던건지 아니면 시끄러워서 듣기 싫었던 건지. 어쨌든 그 할아버지에게 시끄럽다고 꺼달라고 했는데, 그 할아버지가 오히려 역성을 내며 네 말이 더 시끄럽다고 했단다. 그러다 작은 말다툼이 일었고, 허투루는 말이 통할 것 같지 않고, 자신이 타려던 버스가 도착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는 건데. 지음에게 오는 내내 생각해 보니, 화가 났다고 했다. 흥분해서 말하는거 치곤 꽤 간결하고 두서있는 설명에 지음은 어떤 일이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너랑 그 할아버지 말고 사람 없던?"
"웬 아줌마도 있었어. 참내, 그 할아버지 휴대폰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더라. 노인네들은 배려가 없어."
지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아이스 아메카노를 탈취할만한 이유로 판단되지 않았다. 고작 자기가 듣기 싫어 할아버지버지와 아주머니의 음악감상회에 시비건 꼴이 아닌가. 게다가 버스정류장이 공공장소라지만, 정숙과 엄숙을 요구하는 자리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찌 보면 늘 버스정류장의 상가는 음악을 내부가 아닌 밖을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틀어놓고 있지 않나? 지음은 그게 더 시끄러운 것 같다고 늘 여겨서 그런지 그 할아버지의 음악이 얼마나 시그러운지 가늠이 되진 않았다.
할아버지 휴대폰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요즘 아이돌이나 힙합, 영탁이나 임영웅 같은 트렌디한 음악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가! 취향이 차이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취향이란 게 참 무섭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 짜증 난다고 짜증을 내뱉는 허의 모든 행동이 지음은 거슬렸다. 이것도 취향 차이! 결국은 허투루의 짜증 따위가 제대로 와닿지 않기 때문일 터.
지음은 노인들이 이어폰을 안 쓰는 것보다 거리에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데, 괜히 따라 부른다거나 안무를 따라 하듯 갑자기 춤을 추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동선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침범할 것 같은 행동이 더 무례하고 위협 같다고 여기고 있었다.
허투루에게 벌어진 일과 배려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배려'란 말이나 ‘배려’를 누가 누군가에게 하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배려 해야지.” “배려 좀 하자.” 그렇게 되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 그냥 임무이지 않나? ‘넌 나에게 배려를 해야 돼’라는 명령과 응당 그리 해야하는 권위 말이다. 타인에게 배려를 바라는 유일함이 부탁 아닐까? 부탁은 하는 사람과 부탁을 받아들일지 말지 하는 사람으로만 나뉠 뿐. 결국 자신이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그 행동의 결과가 이타적이면 배려가 되는 게 아닐지. 뭐 그런 소소한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지음은 굳이 허투루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지 않았다. 괜한 취향다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예의니 뭐니 하는 것은 세대 간에 차이나 취향에서 비롯하나 보다! 그리 여겨질 뿐이다. 결국 더 힘 있는 사람이 더 옳다. 뭐 그런 썩을 마인드!
지음은 허투루의 토로에 호응하거나 답하는 대신 손을 내밀었다. 허는 무슨 의미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투루는 지음을 쳐다봤다.
"나 한 모금도 안 마셨는데 네가 다 쳐마셨어. 니건 내가 리필해 줄게 너는 내 커피 사! 뭐 해. 카드 내놔!"
"쪼잔한 세끼!"
"버릇 없는 세끼!"
허투루의 카드를 들고 주문하러 계산대로 갔다. 지음은 아메리카노가 아닌 달달하고 휘핑이 잔뜩 올라간 음료를 주문했다. 지음에겐 누가 누가 잘못이다 따위는 별로 의미 없었다. 중요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제삼자일 뿐. 제삼자의 의견은 그저 의견일 뿐. 함부로 의격을 피력했다간 강요나 냉소가 될 가능성이 컸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의 우정의 강도를 실험하거나 확인할 이유는 없다. 괜한 긁어 부스럼이다. 그런 쓸데없는 오지랖보다. 허의 카드로 산 음료가 더 맛나다. 역시 비싼 건 남의 돈으로 사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고집 안 부리고 선뜻 카드를 넘겨준 허의 손. 그게 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