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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허투루 Apr 16. 2024

Y의 낯선

Y는 불특정 "You"

 conte


 전주역에 도착하고 나니 열차시간이 30분 남짓 남았다. Y는 역무원에게 자신의 표를 보여주었다. 전동휠체어가 타려면 리프트가 설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먼저 가서 설치하고 있을 테니 시간 맞춰 나오라고 했다. 역내 방송에선 Y가 타는 열차가 5분 연착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Y는 전주역 입구 커피쇼 야외 테라스로 나가 커피 한 잔 마시며 열차를 기다리로 했다. 약 35분, 짧으면 짧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열차를 기다리는 Y의 입장에선 지루한 기다림이 될 게 뻔하기 때문에 여유를 섭취하기로 했다. 실제로 테이블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는 거랑 커피라도 한 잔 올려놓여 있는 거랑 같은 시간이라도 흐르는 시간이 달리 느껴지곤 했다.  


 흡연구역 쪽에서 웬 할아버지가 Y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전동스쿠터를 타고 있었다. 역사 입구 쪽에 전동스쿠터를 잘 세워 두더니, Y의 테이블 옆에 앉아 Y를 대놓고 쳐다보았다. Y도할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르는 척 휴대폰을 보며 부담스러운 할아버지의 시선을 흐르는 시간에 띄워 흘러 보내려고 했다. 이윽고 할아버지 음성이 Y의 귀에 꽂혔다. 외면하기 힘든 거리였고, 목소리였고, 시선이었다. 할아버지는 Y의 전동휠체어에 대해 물었다. 자신이 타고 있는 건 휠체어라기 보단 오토바이에 가깝다고 하며 좀 더 Y에게 밀착해 전동휠체어를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할아버지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할아버지를 피해 열차 타는 곳으로 나갈까? 찰나의 머뭇거림. 그 할아버지는 Y의 휠체어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고선 자신의 얘기를 살포시 꺼냈다.  

 할아버지의 목적은 기차에 몸을 싣는 게 아니다. 전주역 근처에 살면서 심심하면 가끔씩 나온다 했다. 가끔은 혼자서 곡성 남원 혹은 멀리 서울까지 다녀온다 하는데, 일이 있어서 혹은 누군가 만나러 가는 게 아닌 혼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인 듯 싶었다. 작년에 할머니를 먼저 보내고 마땅히 집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다고 할아버지는 신이 난 듯 말했지만, Y는 움직일 기회를 잃고 말았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것도 신기했고 매우 낯설었다. 모질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할아버지의 말을 고대로 마주해야 했다.


 휠체어가 자신이 타고 있는 전동스쿠터보다 작다며 정부 지원을 받았냐는 둥, 몇 년에 한 번씩 지원을 하냐는 둥, 그러다 Y의 장애를 두고 어쩌다 몸이 이렇게 되었냐는 물음까지. 할아버지는 미취학아동의 호기심 어린 온갖 궁금함을 필터 없이 Y에게 쏟아냈다.

 Y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자신을 설명할 아주 간단한 매뉴얼을 간략하게 꺼내 놓았다. 살아오면서 자신의 장애를 설명하는 곤욕에 시달려야 했고, 그때마다 어딘가 모를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 감정을 쏙 뺀 자기 설명 혹은 자기소개 매뉴얼을 만들어 앵무새처럼 반복할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반응은 달랐다. 동정을 보내기도 했으며, 쿨한 척 별거 아닌 듯 "지금이 중요하지." 같은 어떤 긍정의 모먼트를 보여주곤 했다. Y는 그럴때마다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같은 말로 얼머무렸다. 그다지 어색한 웃음을 자연스러운 웃음 혹은 다른 무언가로 보이지 않게 애쓰진 않았다. 그래야 지나친 오지랖으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Y의 의도를 잘 따라주었다. 이 할아버지도 자신의 의도를 느끼고 알아주길 바랐다. Y의 매뉴얼을 들은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감탄을 자아냈다. Y가 한 말은 열일곱 살 때 질병으로 장애가 생겼다고 한 게 다였다. 할아버지는 Y의 말을 "알아서" 해석하고 급기아 나도 잘 알지 못한 고난에 대해 위로했고, 다리가 없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전동휠체어를 신기해했고, 시간을 확인하려다 떨어뜨린 휴대폰을 선뜩 주워주며, 자기 옷에다 쓱, 떨어진 휴대폰을 먼지를 털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할아버지와 그렇게 30분을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중 아들이 있다는 얘기도 얼핏 있었고, 다음에 정부지원이 되면 전동스쿠터 말고 전동휠체어를 받아야겠다고 말도 있었다. KTX가 아닌 다른 무궁화열차나 새마을열차는 전동스쿠터 진입에 어려움이 있다고도 했다. 그것이 규정에 있는 건지 아니면 역무원의 불특정다수를 위한 배려 혹은 폭압인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수긍은 한다. 전동스쿠터의 부피는 사람 3명을 합친 만큼 공간을 차지하니까 말이다. 그거에 비해 Y의 전동휠체어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금세 30분이 흘렀다. Y는 뭔가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Y의 기차 시간까지 챙겨주며, 어서 가보라며 배웅을 했다. 뜻밖에 배웅에 어리둥절 자리를 떠날 수 있었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찝찝함. Y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그새 전동스쿠터를 타고 전주역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또 어디를 가는 걸까! 질주본능에 충실한 할아버지라니, 먼 미래의 자신이 아닐까! 그런 기시감에 Y의 몸이 잘게 떨려왔다.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지만 주위는 고요했다. 커피 맛이 썼다. Y는 저 할아버지의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문득 저 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의 트랙을 질주하였는지 궁금해졌다.

 

 Y는 KTX에 올라탔다. 익산역까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익산역을 지나자 금세 고속철도의 속력을 되찾으며 질주했다. 마치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저러할까. 차창에 비친 Y의 얼굴이 전주역의 할아버지 얼굴로 겹쳐 보였다. 아니, 자신의 얼굴에 주름이 그어진 듯 빗방울이 차창을 타고 밀려나고 있었다. 공주를 지나 천안에 다다르자 엄청난 비가 쏟아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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