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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허투루 Apr 29. 2024

뚱,땡! 자의식

자주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까먹는다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conte


물이 된 것만 같다. 어딘가로 끊임없이 흐르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잔잔하게 찬 물결이 일어나는 호수의 그런 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웅덩이. 어쩌다 흘러넘쳐 고이게 된, 혹은 비 온 뒤 아직 마르지 않은 웅덩이.

'준'은 꿈을 꾸는 거 같다. 그리고 꿈이라고 인식했다. 이걸 자각몽이라고 한다지. 굳이 꿈에서 깨어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선지, 물이 된 자신을 훑어본다. 양탄자 위에 누워 있다. 양탄자는 파란색이고 물결무늬다. '준'은 커다란 물결무늬다. 물결 수십 수백 장이  겹겹이 겹친, 무늬라고 부르기에는 양탄자 중앙을 온통 차지한.

웅덩이가 일어서면 왠지 거울이 될 것만 같다. '준'이 밑으로 다 쏟아지고 나면 사방으로 튀다가 일어서면 거울 앞에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한다. 정말 '준'이 거울 앞에 서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몸을 더듬더듬 만져본다. 물컹거리는 옆구리살 거유증처럼 처진 가슴, 짧은 목 위로 둔탁한 턱과 떡처럼 뚝 떼어질 것 같은 살. 그리고 거울에 잘려버린 얼굴. 고개를 숙이면 얼굴이 보일 테지만 '준'이는 굳이 고개를 숙이거나 거울을 들어 올리지 않는다. 얼굴을 확인하면 잠에서 깨버릴 것 같다. 그 얼굴은 절대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준.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더라?

중얼거리는 '준'의 음성이 거울에 반사된다.

어디서 봤지? 하면 어디서 봤더라?

뭐지? 하면 뭐더라?

아이고 무서워하면 아이고 너무 무서운데. 하는,

완벽하지 않은 음성. 그리고 조금 어린 얘 같은 목소리. 그 소리를 듣고 어찌 거울을 들어 얼굴을 확인하지 않을 수 있으랴, 조금씩 들리는 거울. 누군가 거울 붙잡는다. 그리고 거울을 뒤집어엎어놓는다. 울음소리가 들리다 점점 잦아지고 '준'은 깜짝 놀라 거울을 뒤집은 사람을 본다. 검은 그림자. 마치 배트맨의 실루엣처럼 온몸이 온통 검고 눈만 하얗게 빛난, 게다가 눈동자도 검다. 그는 갑자기 녹아내린다. 준의 발밑을 적신다. 웅덩이가 마르듯 바닥에 작은 구멍이라도 나있는 듯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다. 젖은 '준'의 발도 점점 사라진다.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고 물결이 치듯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준'도 거울이 사라진 자리로 흐르다 사라진다. '준'은 그때서야 잠에서 깬다.

눈을 끔뻑끔뻑 '준'의 방 천장이 순간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준'은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자신의 방을 둘러본다. 창은 열려 있고, 커튼이 바람에 나풀거린고 있다. '준'은 다시 드러눕는다. 그러곤 발을 천장을 향해 들더니, 내려찍기 하듯 수직강하 추진력으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나간다. 거실에는 '윤'이 소파 밑에 앉아 테이블을 가슴깨로 바짝 끌어당겨 책을 보고 있다. TV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들의 배경이 번갈아가며 가며 바뀌고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준'은 '윤'이 등받이로 앉아있는 소파로 가 엎어져 눕는다.    

 뭐 읽어?

 작가가 누구더라!

 나 이상한 꿈 꿨다.

 이상한 꿈같은 게 뭔데?

윤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한다. 준은 좀 무성의하게 느껴졌으나 문득 거울의 음성이 떠오른다. 윤의 목소리완 다른 것 같다. 그리곤 자신 꾼 꿈을 설명한다. '윤'은 건성건성 대답한다. 무성의한 윤의 태도가 괘씸하게 느껴진다. '준'은 '윤'이 읽고 있는 책을 빼앗는다. 책의 글자가 갑자기 쏟아지더니, 준의 온몸을 적신다. 한 바가지 물을 들이부은 거처럼 낭자하다.

이게 뭐야?

이게 뭐더라?

준은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글자를 손으로 씻어내고 '윤'이를 바라본다. '윤'의 얼굴에는 얼굴이 없다. 물 웅덩이가 거울이 듯 어둡게 '준'을 비춘고 있다. 갑자기 집이 흘러내리기 시작해 '윤'의 얼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수챗구멍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듯 회오리가 일어난다. 준은 이것도 꿈이구나! 양팔을 펼쳐 어서 빨려 들어가라고 눈을 감는다.

어두운 방 텔레비전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금성티브이, 노이즈 화면에 이상 점 하나가 생기더니, 둥글어졌다가 네모네졌다가 위아래로 사라졌다가 쪼개지더니 다시 이리저리 왔다 갔다가 반복한다. 아직 꿈인가? 자각도 잊고 계속 이상한 모션그래픽을 본다. 갑자기 '윤'의 얼굴이 티브이에 나온다. '윤'이 웃고 있다. 티브이에서 '윤'의 손이 불쑥 나와 준의 뺨을 거세게 때린다.          

윤 나 신기한 꿈을 꿨어!

준 컴퓨터 좀 그만해.

진짜야.

꿈은 다 신기하고 이상하고 그래.

진짜 이상했다니까! 네 얼굴이 자꾸...

'준'은 화장실로 뛰어가 거울을 본다. 거울엔 물컹거리는 옆구리살 거유증처럼 처진 가슴, 짧은 목 위로 둔탁한 턱과 떡처럼 뚝 떼어질 것 같은 살. 반쯤 자린 얼굴 위에 남은 얼굴이 분명 윤의 얼굴이다. 윤이 화장실로 따라 들어온다. 윤의 몸은 물컹거리는 옆구리살 대신 잘록한 허리. 거유증처럼 처진 가슴이 아닌 봉긋하게 솟은 가슴, 짧은 목 위로 둔탁한 턱 대신 긴 목과 브이라인의 턱. 떡처럼 뚝 떼어질 것 같은 살은 다 떼어낸 것처럼 음영이 드러난 턱선. 준과 완전 다른 몸의 윤.

윤은 조용히 뒤에서 준을 안는다. 그리곤 출렁거리는 배를 두들긴다.

배 안 고파?   




어렸을 때, 오후 네 시쯤 정규 방송이 끝나면 화면 조정이 끝나고 다시 정규 방송이 시작하기 전 이상한 모션 그래픽 TV 나온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의 가까운 반복적 화면을 한동안 구다보다 잠이 든 적도 있다. 이상하게 그때 그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벌러덩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티브이를 보며 잠들던 어린 시절 그때와 지금의 몸은 성장과 별개로 많이 달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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