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니들 인생에 훈수하세요

당신은 오늘도 누구에게 조언이란 명목의 훈수질을 하고 있지 않은가?

by 이동훈

유튜브를 즐겨보는 편이다. 자기 전에 잠깐, 혹은 쉴 때 잠깐. 평소 즐겨보는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의 유행어가 있다.

제발 니들 인생에 훈수하세요.

심지어 줄임말도 생겼다. 제니훈이라고. 이 스트리머가 이런 말을 한 계기는 간단하다. 평소에 게임 방송을 하는데, 어느 게임을 하든 간에 훈수가 끊이질 않았다. 지칠만 했다. 매 방송마다 3000명 이상이 이 사람의 방송을 보고 그중 15% 이상의 사람들이 훈수를 한다. ‘여기선 이렇게 해야지. 저기선 저렇게 해야지. 왜 그것도 못해?’ 이런 식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고 스트리머는 스트리머대로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 훈수를 하는 것이다.


흔히들 한국을 ‘오지랖의 나라’라고도 한다. 남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참 많으며 그에 대한 충고를 많이 한다. 파생어로 오지랖을 즐기는 자 혹은 많이 하는 자로 ‘오지라퍼’라는 용어도 생겼다. 혹자는 그게 ‘한국인의 정’이라고도 말한다. 정. 좋다. 그놈의 정.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상관해주고 이야기해주는 것에 대해 내가 너에게 ‘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너한테 관심도 없으면 이런 이야기를 하겠냐고. 착각하면 안 된다. 정이 있을수록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것이 좋다.


나라고 안 그랬겠는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은 선배들을 만났고, 많은 사회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항상 이야기해주곤 했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제시해주는 길, 가기는 힘들지만 그들이 안내해주는 길의 미래는 너무나도 창창했다. 항상 정답만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복학 후 나는 선배가 되었다. 복학 전 군생활을 남들보다 조금 길게 했으며, 전역 후에는 공사 현장에서도 일을 했다. 참 느낀 게 많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 후 나는 어떻게 됐을까? 그렇다. 그렇게 ‘꼰대’가 되었다. 남들에게 조언이라는 명목 하에 훈수를 두고, 남들이 가는 길을 네가 가는 길은 위험하고 험한 길인데 왜 편한 길을 놔두고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물어봤다. 글로만 써도 기분이 나쁜데 듣는 당사자들은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왠지 그들에게 또 미안해진다.


그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누군가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 마냥 나에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갑자기 기분이 나빴다. 내가 하려고 하는 길에 나는 응원을 바라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마치 그걸 왜 하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런 상황을 참 많이도 겪었다. 그 후에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상당히 기분이 나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뒤로 그 지긋지긋한 훈수질을 그만뒀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 당신은 남들한테 조언도 안 하고 사는가? 대체 훈수와 조언의 차이는 뭐냐? 그 구분은 사실 명확히 할 수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분류를 해보자면 상대방의 수요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조언을 구할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언이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때 혹은 상대방이 명확히 의사 표현을 했는데 그에 대해 반발하거나 혼자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훈수가 된다. 상대방이 수요가 없는데 무조건적으로 공급을 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시를 해보고자 한다. 이는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다. 당시 나는 맥북을 구매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전공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물어봤다.


나 : 제가 맥북을 구매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맥북? 맥북을 무슨 용도로 사려하는 건데?

나 : 그냥 애플 제품도 많이 가지고 있고, 친구가 쓰는 거 보니까 편해 보여서요.

A : 정확히 어떤 기능을 쓰고 싶은지 안정해두고 사려는 거야? 특정 목적이 없으면 맥북은 가격이 높고 윈도를 사용하는 노트북에서 대부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니까 한번 잘 찾아봐

나: 아, 그래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두 번째 상황은 내가 결국 맥북을 사기로 결심했을 때였다. 그리고 B 씨와 우연히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이야기를 하려던 도중 맥북이 생각이 났다.


나 : 아, 저 맥북 사기로 했어요!

B : 맥북을? 너 딱히 영상 전공이나 디자인 전공도 아니고 맥북이 왜 필요한데?

나 : 그냥 한번 써보고 싶기도 했고, 이것 저것 찾아보니 편리한 기능도 많고 쓰기 괜찮을 거 같더라고요. 어차피 전 아이폰도 쓰고 아이패드도 쓰니까 연동성도 좋고 같이 쓰면 너무 편리해서 좋을 거 같아요.

B : 맥북? 너무 비싸잖아. 어차피 윈도 노트북으로도 다 쓸 수 있는데 뭐하러 그걸 사. 그럴 바에 더 저렴한 노트북 사고 남는 돈으로 다른 부가 기기를 사겠다.

나 : 아 예…. 뭐 제가 쓸 거니까 알아서 할게요.


이 두 상황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첫 번째 상황에서 나는 A 씨에게 조언을 구했다. 맥북의 구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리고 A 씨는 해당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을 했다. 특별히 맥북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가격에 대해 합리적인 조언을 한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상황에서 나는 맥북의 ‘구매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B 씨는 맥북이 너무 비싸고 특별한 이유가 없이 구매할 이유가 없다고 ‘훈수’를 뒀다. 내가 그걸 고려 안 했을까. 그 비싼 맥북을 구매하면서 다른 기능들도 다 찾아보고 내린 내 나름의 ‘합리적 결정’에 대해 반박하며 조언을 했다. 이때부터 그 사람의 말이 내게는 ‘훈수’가 되었다.

이 스트리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쪽 길로 가려하면 꼭 당신들은 나서서 저쪽이다, 왜 저쪽을 안 가냐, 바보냐 라고 말을 하는데 나도 저쪽이 길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저 난 이곳이 궁금하고 다른 곳이 궁금해 가보는 건데 왜 당신들은 내가 한쪽 길로 안 가면 나서서 난리들이냐.’ 그렇다. 알고 있다. 그쪽이 맞는 방향일 거라고. 그런데도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훈수를 둔다.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거나 혹은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언을 해준다는 거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가 조언해주는 사람이 나는 잘 모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물론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고, 조언을 구하는 데에 부담감을 느끼는 성격도 있다.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은 '그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모르면 물어봤을 것이다.’ 난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조언을 해주자. 그리고 응원을 바랄 때는 응원을 해 주자. 그리고 훈수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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