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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보석

by 김동현

23살, 전역을 하고 반년이 조금 넘은 시점 나는 패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관련 전공이 아니었고 대구에서 할 수 있는 관련 직종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알바몬에서 뉴발란스 매장의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았고, 형들과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며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1년이 조금 지난 시점, 나는 지쳐갔다. 실수가 잦아졌고 마음이 힘드니 더더욱 그랬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고, 한 달간 다닌 후 선생님께서 "그렇게 답답하면 여행을 떠나봐요"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몇 일 동안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문득 군대에서 재밌게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책이었다. 20대 초반에 만나 뜨거웠던 연인이 헤어지고 스쳐가는 말로 "30살 생일에 보자" 했던 말을 기억하고 30살에 만나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피렌체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유럽 어딘가겠지 하면서 책을 읽었지만,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렌체 듀오모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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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6일의 휴가였다. 유럽을 다녀오기에는 짧은 시간이었고, 7월 말 극성수기 때 비행기 표가 220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통장에 적금을 깨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잠깐이나마 모든 걸 뒤로 하고 처음 타보는 국제선에 몸을 실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물론 시차 적응은 나에게 사치였다. 첫날은 로마에서 개인 가이드를 신청하여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두 번째 날, 드디어 피렌체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피렌체로 가는 기차를 타고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내렸다. 넓고 트여진 기차역, 낭만의 시작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구글 로드뷰를 통해 걷는 상상을 여러 번 했기에 처음 가보는 길을 알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고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나름의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그날은 듀오모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듀오모를 침묵 속에 맞이하고 싶었다. 마치 맛있는 소시지를 제일 마지막에 먹으려 아끼는 것 같은 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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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듀오모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에 누웠다. 내 방은 투 베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그것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나도 못 알아듣는 이탈리아 방송도 날 기쁘게 만들었다. 외로움과 설렘이 가득한 채 밤을 보냈다. 그리고 알람을 듣기도 전에 몸이 먼저 정신을 깨웠다. 6시에 눈을 뜨고 호텔에서 주는 아침 식사 티켓을 가지고 듀오모 바로 앞에 있는 카페로 가 애플파이와 커피 한 잔을 했다. 그때 먹은 애플파이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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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듀오모 성당 앞에서 올라가는 줄에 섰다. 당연히 내 앞에는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제일 먼저 올라가고 싶었다. 9시에 티켓팅이 시작되고 한발 한발 올라갔다. 머리 위에는 큐폴라가 있고, 지옥부터 천국까지를 그린 천장화가 있었다. 그 천장화를 가운데 두고 좁은 통로들을 지나 마침내 듀오모 끝에 도착했다. 귀로는 그날을 위해 다운로드해 갔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들이 들렸다. 그 순간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피렌체 전체가 보이는 트여진 광경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1시간을 멍하니 앉아있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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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 내 20대가 아름다운 이유이자 보석이다. 월급이 들어오면 한 달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 회사원처럼 힘든 순간에 보물상자의 보석처럼 가끔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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