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
올해 나를 격하게 칭찬해주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바로 '시부모님과의 해외여행을 손수 계획하고 충실하게 실행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마냥 아름다운 여행만은 아니었다. 여행 마지막날 시아버지는 화가나셨고 마음이 좁은 며느리는 반성과 억울함속에서 헤매는 마음을 달래고 정리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나와 남편이 여행사가 되어 시부모님을 잘 안내할수 있을까, 과연 잘 할수 있을까?
엄청난 불안과 행복이 오락가락하며 공존했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을 대차게 결정했지만 불안했다.
친정부모님과도 가본적없는 여행이었다. 여행동반자가 시부모님이라는 사실자체가 꽤 큰 불안요소였지만 2년동안 큰 불화없이 지내왔기에 한편으로 자신감은 있었다. 남편은 중간에서 잘 컨트롤해주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자기부모님이기에 이것저것 해드리고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금전적인 부분에서 나와 충돌이 있었지만 대체로 남편을 이해하며 잘 풀었다. 나의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나도 남편과 같이 행동했을테니까 말이다.
여행지는 우리의 신혼여행지였던 '홍콩'과 '푸켓'이었다.
이 점은 우리에게 매우 큰 힘이 되주었다. 일단 한번 가봤던 곳이기 때문에 대충의(정말 대충의) 지리와 음식점을 파악하고 있었고 액티비티와 마사지 등을 예약하기도 수월했다. 물론 다른 나라로 가보고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찾아보았지만 오토바이가 너무많아 다니기힘듦, 경비행기를 또 타야함, 우기, 긴 비행시간 등 어르신을 모시고 다니기엔 좋지않은 조건들이 눈에 걸렸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다른나라를 찾는 이유중 40%정도가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처럼 보였는지 그냥 우리가 갔던 곳으로 가자고 설득을 했다. 더 이상 인터넷 서칭이 괴로운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여행지선정을 마쳤다.
여행날짜를 정하는것도 꽤 머리가아팠다. 시부모님 두분은 모두 직장을 다니고 계셨고 따로 길게 휴가를 쓰지 못하시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가장 알맞은(?) 때는 바로 명절이었다. 게다가 이번 추석은 최대 10일 이상을 쉴 수 있는 연휴였기에 추석에 가기로 했다. 시댁은 기독교집안이어서 따로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추석은 최고의 여행날짜였지만 금전적으로는 전혀 알맞지않은 기간이었다. 비행기표, 공항택시요금 등 모든 요금이 두배이상 뛰는 시기였기에 우리의 부담은 꽤나 컸다. 그나마 이 여행을 위해 모아둔 적금이 있어서 가계의 큰 출혈을 막을 수 있었다. 미리미리 티켓예약을 못한 바람에 저렴한 티켓은 없었다. 겨우 홍콩을 경유해 푸켓을 가는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찾아내 당장 예약을 했다.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항공사까지 우리가 신혼여행에 이용했던 항공사를 예약할 수 있는건지 말이다.
원래는 시할머님까지 5명이 가기로 한 여행이었다. 남편은 시할머니에게 애틋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결혼 전 따로 자기방없이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다. 할머니와 함께 자고 드라마도 같이 봤다. 나와 어머님, 아버님 모두 할머니는 여행하시기 힘드실것같다고 남편을 설득했으나 남편은 할머니 안가시면 이 여행 못간다며 어머님의 애를 태우기까지 했다. 결국 할머니까지 여권을 만드셨지만 같이 여행은 못하실것 같다며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이미 비행기표와 숙소를 모두 예약한 후였다. 홍콩숙소는 문제가 없었지만 푸켓의 숙소가 문제였다. 방을 3개 예약한 것이다. 그것도 환불불가상품으로. 남편의 입을 막고 한참 잔소리가 하고싶었다. 겨우 참고 한마디 했다. "이건 어머님, 아버님을 위한 여행이야. 효자손주노릇은 나중에 오빠가 따로해" 라고 했다.
호텔예약사이트에 전화를 하고 호텔측에 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정말 구구절절했다. 환불불가상품인건 알지만 제발 취소를 해달라고 애걸복걸을 했다. 결국 환불을 받아냈고 난 또 남편에게 한마디했다.
"오빠 욕심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짓이야"
그리하여 4명이 출발하게 되었다. 출발 1주일 전부터'추석황금연휴에 공항을 이용하려면 평소보다 서두르셔야겠습니다' 라는 뉴스가 가장무서웠다. 결혼하기 전만해도 '대체 명절에 해외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집은 제사도 지내고 차례도 지냈다. 우리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시고 살았기때문에 명절에 해외여행을 간다는건, 아니 국내여행이라도 갈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아오셨다. 나도 그게 당연한줄 알면서 컸기 때문에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엄마는 큰 내색은 안하셨지만 부러워하시면서도 한편으로 딸이 본인과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우리 강아지를 맡기고 가는게 미안하여 비싼 등산복 조끼를 선물했다. 물론 그걸로 나의 미안함이 전부 갈음되지는 않았다. 언젠가 우리아빠도 환갑이되면 꼭 해외여행을 같이가자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한 쪽 마음이 편치않았다.
나는 여행내내 후두염으로 고생했다. 특히 비행기안에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비행기의 찬 공기가 숨을 들이쉴때마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목이 간지러워 3시간씩 기침을 멈추지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여행 전에 병원을 가지 않았던 내가 바보같았고 원망스러웠다. 감기약과 테라플루를 잔뜩 챙겨온 덕에 여행기간내내 그걸 먹고 버텼는데 푸켓에서는 맥주가 먹고싶어서 약을 먹지않았다. 정말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없다..풉.
우리는 무사히 홍콩에 도착했다. 시부모님은 고기를 드시지 않는 분들이라 기내식부터 입맛에 안맞으셔했다. 홍콩에서는 딤섬도 별로이신듯 했다. 결국 그날밤은 컵라면과 제니쿠키를 드셨다. 바로 다음날 아침일찍 푸켓으로 출발하기때문에 홍콩에서는 짧게 있었지만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는 시부모님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푸켓에서는 해산물을 실컷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부모님은 입맛이 까다로우신 분들이다. 내 생각엔 그렇다. 이 점을 나는 간과했다. 컵라면과 김치를 무조건 챙겨왔어야했다. 시부모님이 나처럼 여행지의 새로운 음식을 즐기실거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다음 여행에는 무조건 김치와 컵라면을 챙기리라.
침사추이의 아름다운 야경을 끝으로 우린 홍콩을 떠났다. 다음날 오전 11시에 푸켓에 도착했다. 도착한 숙소는 홍콩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방도 넓고 침대도 넓었다. 직원들도 친절했다. 괜히 내 어깨가 으쓱했다. 홍콩에서는 숙소도 열악했다. 옆방 여자들 떠드는 소리가 다들렸다. 그리고 이곳저곳 이동하는데 지하철도 타고, 택시도타고 오래 걸어다녀야 했다. 우리 부부에게 구글지도를 끌 틈은 없었다. 길을 잃지 않으려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바보같은 실수가 결정적이었다. 10월 1일 예약했던 트램투어는 취소되었다는 사실도 모른채 트램을 30분씩 기다렸다.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메일은 무려 여행출발하기 전전날에 와있었다. 난 메일을 열어볼 여유도 없었나보다. 아무튼 홍콩에서는 몸과 정신이 피곤했다. 푸켓은 빠통지역만 다니면 충분했다. 숙소를 기준으로 1KM이내의 지역에 모든것이 다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진짜 휴양을 할 수 있겠구나 했다.
홍콩에서 식사를 잘 못하셨던 시부모님은 푸켓에서는 그나마 식사를 하셨다. 모두 해산물요리였지만 문제는 향신료였다. 강한 향신료냄새에 뿌빳퐁커리도, 랍스터도 시부모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화가 나면 안되지만 속으로 화도 났다. 조금 더 즐겨주시면 안되나 하는 서운함이 이따금씩 들었다. 결국 마지막날 저녁은 우리부부와 따로 드셨다. 어머님은 입맛이 없으시다며 맥도날드에서 피쉬버거를 사다달라고 하셨다. 남편과 나는 부지런히 걸어 맥도날드에 도착했지만 피쉬버거가 없었다. 고민끝에 고기가 안들어있는 치즈버거를 사서 가져다드리고 우리는 겨우겨우 기뻐하며 리조트 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쇼도 보고, 마사지도 받고,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푸켓에서 즐길 수 있는건 다 즐기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아버님은 나에게 화가 나셨다. 그 당시 말씀을 안하셔서 모르고 있다가 1주일정도 후에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그 날 남편과 나는 대판 싸웠다. 남편과 싸울일은 아니었다. 그치만 억울함과 서운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화내실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운하다고 했다. 남편은 자기도 동의한다고는 했지만 크던 작던 잘못은 잘못이라고 했다. 인정했다. 아버님이 요구하신 것에 바로 반응을 하지 않았으니 무시받는 느낌이 들으셨을 수도 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와 아버님은 2달정도 데면데면했다. 그 사건 이후로 난 앞으로 착한 며느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017년 2월부터 10월까지 당신들을 위하여 열심히 준비한 여행이었는데 나의 잘못으로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었다. 서운함이 사라지지않아 남편도 미웠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버님에게 혼이 났다. 그날 시댁을 나서며 나오는 눈물을 꾹 참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울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다 털어버렸다. 맥주를 한 모금도 안하시는 아버님은 며느리를 위해 맥주를 반잔 마셔주셨다. 그렇게 나는 털어버렸다. 그렇게 한 계단 성숙해졌다. 시부모님께 바라는것도 줄어들었다. 여행은 이렇게 좋은 기억을 통해 혹은 나쁜 기억을 통해 배울점을 던져준다.
다행히 여행기간동안 남편과 나는 다정한 부부였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남편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오늘도 고생했다며, 수고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여행기간 틈틈이 우리 둘만의 시간이 생기면 신혼여행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 갔었던 맛있었던 집도 다시 가보고 둘이 해보고싶었던 헤나도 하나씩 새겼다. 이번 여행은 시아버님의 환갑을 기념하는 여행이기도 했지만 우리 부부의 리마인드 신혼여행이기도 했던 것 같다.
시부모님과의 여행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보다 시어머니에게 더 감사하다.
내 편에서 생각해주시고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린 며느리가 서툴게 길을 헤매도 괜찮다하시던 모습이 감사했다.
이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들...
엄마도 보고싶고 아빠도 보고싶고
우리 강아지도 보고싶고
남편에게도 고맙고 시부모님에게도 고마웠던 감정
잊지말고 오래오래 기억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