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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Sep 12. 2023

와이프가 3박 4일로 제주도에 가면 벌어지는 일

떠나면 좋을 줄 알았다.

와이프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면 기뻐하는 남편 밈이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묻는 대리에게 차부장님들이 엄중하게 침착하라며 충고하는 썰이나 만화도 있다. 우리 회사 차장님들에게 와이프가 애 데리고 여행 간다면 어떨 것 같으시냐는 질문에 화색을 띠며 더 바랄 게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봐서 그럴까 나도 와이프가 여행을 떠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 했다. 그녀에게는 차마 밝힐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어딘가 길게 가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닌지라 이런 기회가 좀처럼 나에겐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몇 달 전쯤 와이프가 처가 식구들과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간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기뻤지만 표정을 아무렇지 않은 척 꾸미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때가 왔구나 싶었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내 가슴 한편은 묘한 기대감으로 일렁였다.

  

HJ가 제주도로 가는 날을 누구보다 기다렸다. 아마 당사자인 그녀보다 내가 더 설렜을 거다. 내가 해외여행을 간다 해도 이보다 기쁠 순 없었을 거다. 중간에 같이 갈 거냐는 그녀의 함정수사에도 표정관리를 잘하며 무사히 넘겼다. 좋은 딸이라며 HJ를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      

사실 그녀와 단 둘이 가는 거라면 갈 의향은 있었다. 하지만 처가식구들과 함께 가는 건 부담스러웠다. 여행지에서 겪을 필연적 어색함과 불편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질문하는 내가 보였다. 불만 있는데도 말 못 하는 나도 보였다.     


 거기에 사위와 장인장모 관계는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다. 와이프인 HJ에게는 내 불만을 가감 없이 얘기하지만 장인장모님에게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이런 식이면 서로 간 서운함이 쌓일 뿐이라 안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여하튼, 멀게만 느껴졌던 여행날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난 무대감독처럼 꼼꼼하게 동선을 확인하고 날짜를 체크했다. 난 이 일에 제법 진지했다. 드디어 디데이가 찾아왔다. 그녀가 제주도로 떠나는 날 야간 근무여서 바래다 못해 전화로만 잘 다녀오라며 배웅했다.     

 

혼자서 보내는 3박 4일이 얼마나 행복감을 줄지 기대가 됐다. 일단 다음 날 퇴근해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친구와 저녁식사 약속을 잡았다. 아마 그녀가 있었다면 이런 약속을 잡긴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내 기대와는 다르게 그다지 신나지 않았다. 친구 K와 만나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고깃집에 갔다. 숯불 위에 불판에 달궈지는 고기들과 공깃밥, 서비스로 나온 해장국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친구와의 대화도 집중이 안 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깊은 대화를 나눴고 음식도 맛있었건만 이런 점들이 내게 더 이상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점점 깨달았다. 그녀의 부재가 나에게 세상에 대한 즐거움을 빼앗아갔다는 걸. 헤어진 지 하루도 안 됐건만 부쩍 그녀 생각이 강하게 났다. 스스로 오버스럽다고 생각했지만 헛헛함이 사라지진 않았다.      

2차로는 PC방에 갔다. 열 한시쯤까지 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게임은 모두 이겼지만 돌아오는 길이 즐겁진 않았다. 집에 가려고 지하철역에 내렸는데 기분이 가라앉았고 발걸음도 무거웠다.     

 

집에 들어가도 HJ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 그녀 침대 위에 있는 흰색, 갈색 곰돌이 두 마리 사이에 파고들어 누웠다. 평소였다면 거들떠도 안 볼 텐데 이상하게 그녀 없으니 그랬다. 아마 헛헛한 마음에 그녀의 대용품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신기한 점은 저녁에 그녀와 통화를 했는데도 이런 헛헛함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녀가 없던 첫째 날은 이렇게 흘러갔다. 다음 날은 회사를 쉬는 날이었다. 엄마와 오후 3시에 약속을 잡았다. 오전에는 늘 하던 대로 카페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책을 보고 글을 썼다. 엄마와 만나선 모다아웃렛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옷도 사고 상설할인코너에서 엄마 옷도 사줬다. 점심으론 아웃렛 근처에 중국집에서 깐풍기와 짜장면을 먹었다.      

     

집에 가기 싫어서 본가로 엄마와 같이 갔다. 엄마가 해주는 발마사지를 받으며 이미 들어 아는 얘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들었다. 이런 행복한 순간에 허전함이 느껴졌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부재로 인해 한 번 가슴에 뚫린 구멍은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본가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집에 가기 싫어서 홈플러스에 들렀다. 홈플러스를 괜히 돌면서 본 하이볼 잔과 주황색 병의 분다버그 진저를 샀다. 평소라면 저녁에 술을 먹는 일은 없었는데 그녀의 부재로 인한 헛헛함을 채우고자 하이볼까지 먹었다. 점심에 남아 포장해 온 깐풍기랑 같이 먹었다. 그리곤 게임을 새벽 4시까지 했다. 이렇게 그녀가 없는 둘째 날이 지나갔다.


다음날 피곤함에 절어 회사로 출근했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교육이 잡혀있어 정신없이 일했다. 어제 두 시간밖에 안 잤는데도 바쁘고 피곤하니 헛헛함이 느껴지진 않는 점은 좋았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정신없이 일을 하면 도움이 되는 이유를 알겠다. 퇴근해 작전역 근처에서 기계 우동을 먹고 집에 돌아와 발더스게이트 3을 10시 반까지 하다가 잤다.


신기하게도 내 이런 텅 빈 마음은 그녀가 돌아오는 날 채워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녀의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가 돌아온다는 그 사실 자체가 헛헛함을 채워준 것이다.


가끔 너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거야라는 말을 보고 상투적인 레토릭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상대방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서 HJ가 부재와 실재가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을 느끼고 이제 이 말이 이해가 됐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나치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저자가 자신의 와이프를 상상하며 힘든 수용소 생활을 견디는 장면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71p,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도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들이 가슴에 채워준 충만함 들은, 우리로 하여금 힘든 세상에 잠깐 숨 돌릴 틈과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인들이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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