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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Oct 21. 2023

며늘아! 연락 좀 해라.

아들이 보는 엄마와 며느리가 보는 시어머니

엄마에게 오전 10시쯤 문자가 왔다.   

   

"오늘 외삼춘 오신대 송이 먹으러 올래?"     


이 날은 야간근무라 오후 6시 출근이었다. 고민이 됐지만 결국은 가기로 했다. 겉으로는 오랜만에 외삼촌을 보러 가는 것이라며 말했지만 내심 송이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본가에 오니 아직 외삼촌은 없었다. 엄마에게 들으니 서울역에서 1000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시는 중이란다. 


시간은 오후 세 시가 넘어 배가 고파 먼저 밥을 먹었다. 메뉴는 송이뿐만 아니라 소고기, 돼지 목살 등 초호화였다. 오랜만에 보는 고급 음식들에 눈과 손이 빨라졌다. 그렇게 식탁을 비워나가며 엄마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관문 벨소리가 들렸다.


까맣게 타고 키가 170 정도 되는 마른 남자가 화면 너머로 보였다. 외삼촌이다.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드리고 두 손 가득 찬 짐을 들어드렸다. 나이가 일흔이 넘은 외삼촌은 어렸을 때 같이 살지도 않았음에도 이상하게 정이 간다. 이게 혈육의 정인가 싶다.


삼촌과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새우란 주제가 나오자 얼굴에 활기가 돈다. 그는 까맣게 탄 얼굴로 침 튀기며 새우에 대한 정보를 주야장천 이야기한다.


그 모습에 내가 새우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자 삼촌은 아니라며 부정한다. 하지만 새우만 나오면 얼굴이 밝아지고 활력이 도는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모습이다.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듣다 출근한다는 핑계로 엄마와 집 밖으로 나왔다. 새우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들으니 피로했다. 내가 양식장 안에 새우가 된 기분이었다.


 마침 엄마도 사촌동생 돌을 위해 반지를 주문하러 집 근처 금은방에 가는 길이었다. 나도 출근까진 삼십 분 정도 남아 같이 가기로 했다.

 

반지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느닷없이 엄마가 다음 같은 말을 꺼냈다.    

 

“며느리 소식 듣기가 힘들어”     


엄마의 이런 말에 당황해서 “HJ는 일하느라 바쁘지” 하며 대강 넘겼다. 그런데 이 말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엄마가 뭐라 뭐라 말하는 내용은 안 들리고 이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명치가 뻐근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음 같은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 다녔다. “내가 너무 엄마한테 연락을 안 했나?”“나한테 본인에게 HJ에게 연락 좀 하라고 말하라는 건가”

     

혹시나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을 며느리에 빗대 얘기했나 싶어 다음과 같이 다시 물었다.   

  

“엄마 내가 아니라 HJ가 보고 싶어? 연락 오면 불편하지 않아?”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응 좋아. 원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 좋아해”    

 

이런 확답을 들으니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엄마는 진심이었던 거다. 이 대화 이후 출근해야 해서 엄마랑 헤어졌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나는 이 왜 이 말에 마음이 불편했을까? 며느리가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나에게 이 얘기를 전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HJ에게 이렇게 말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다. 가뜩이나 그녀는 우리 엄마를 어려워한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어려워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그런 것 보다 더한 느낌에 HJ에게 이유를 물어봤었다.


그녀가 말하길, 엄마가 가끔 같이 식사자리에서 만나서 우리 아들 뺏어간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장난이 아니라 진심처럼 들렸단다. 어머니 말투도 강하게 느껴져서 무서웠단다.


이 얘기가 나에겐 충격이었다. 듣자마자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닌데’라며 반발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에게 평소에 했던 이야기들도 떠올렸다.


엄마는 평소에 "자식이 컸으면 나가 살아야지, 결혼해서 너무 좋다, 집에 자주 안 와도 돼, 네가 나가서 너무 좋다"등 같은 말을 해왔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엄마처럼 쿨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거다. 그래서 HJ가 엄마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불편한 마음과 확고한 생각을 보며 어쩌면 HJ가 봤던 엄마가 맞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보통 내가 이렇게 치우쳐진 감정이 들면 고집부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곤 어쩌면 둘 다 틀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보는 엄마와 그녀 보는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은 똑같은 행동과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그녀가 본 엄마 모습과 내가 알고 있는 모습 둘 다 진실이라면, 난 중간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까지 오자 다시금 막막해서 머리가 아파왔다. 생각이 자꾸 맴돈다. 안 되겠다. 한 번 사고 실험을 해봐야겠다.


사고 실험이란 만약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어떤 과정과 결과가 도출될지 구체적으로 추론해 보는 것이다. 주로 구체적인 실험을 하기 어려운 이론 물리학에서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실생활에서도 도움이 된다.


첫 번째로 HJ에게 이 말을 전달하고 우리 부모님께 연락해 달라고 부탁한다. 와이프는 이 말에 압박을 느껴서 연락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락은 지속되기 힘들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한 게 아니라 외부적인 압박 때문에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런 행동은 내 양심에 찔린다. 나조차도 장모님이나 장인어른한테 생일이나 경조사 때만 연락하지 그 외에 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런 부탁은 나 스스로도 모순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이 방법은 패스.


두 번째는 이런 내용을 HJ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가 있다. 엄마가 말한 내용을 나 혼자 알고 있으면 HJ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하지만 며느리에 대한 부모님 불만은 쌓여 간다. 언젠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상황에 HJ는 당혹스러워한다. 나에게 왜 진작 이런 얘기를 안 해줬냐고 따진다. 배드 엔딩이다.


세 번째는 엄마에게 며느리가 궁금하면 먼저 연락해 보시라 말씀드리는 것이다. 엄마가 HJ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 와이프는 이런 상황을 불편해한다. 나에게 이런 불만을 토로한다. 이 방법도 현실적으론 어렵다. 와이프가 시어머니 눈치를 보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그녀 눈치를 본다. 며느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차마 연락을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연락이 오기를 바란다.

 

네 번째는 HJ와 연락하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불편해하니 자제하시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겠다. 나와 결혼해서 며느리가 되었지만 삼십 년 동안 남남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어떻게 가족 같은 관계가 될 수 있겠냐고 말하는 거다. 엄마는 서운해하며 아들놈 XX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한다.

썩 좋은 결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한테만 서운한 거니 이게 나아 보이기도 한다.


고민해 봐도 뚜렷한 답이 안 나온다. 남편이 중간에서 잘해야 한다고 많이들 하던데 다른 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싶다. 아.. 너무 어렵다.


Image by Jerzy Górecki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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