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HJ와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다. 집 근처엔 영화관이 없어서 차를 타고 이십 분 정도에 있는 아시아드 롯데시네마점으로 갔다.
은근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여기 영화관 꿀이다. 결혼식장이 있어 주차장 자리도 넓고 근처에 대중교통이 없어서 주말만 피해 가면 사람도 많이 없다. 나같이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기 빨리는 유형들에겐 최적의 영화관이다.
여하튼, 차를 영화관 근처에 주차하고 예매한 티켓을 출력하고 나니 팝콘 파는 곳이 보였다. 번쩍번쩍 빛나는 팝콘기계와 고소한 냄새가 우리를 유혹했다. 그런데 시간이 애매했다. 이때가 저녁 8시쯤이라 뭔가를 먹기엔 좀 과했다. HJ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먹고 싶다고 해서 팝콘 파는 곳으로 갔다.
핸드폰 어플을 통해서 기본 맛 팝콘 쿠폰을 구매했다. 여기에 돈을 좀 더 보태서 캐러멜과 치즈가 섞인 걸로 주문하려 했는데 변경이 안 된단다. 결국 기본 맛으로 시켰다.
팝콘통을 손으로 감아 안아서 가는데, 통이 하나인 걸 보고 HJ 표정이 달라졌다. 그동안 겪었던 트라우마들이 올라오는 표정이다.
HJ와는 팔 년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했는데, 연애할 때도 메뉴 주문으로 종종 부딪혔다. 몸이 찬 편인 나는 소화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더부룩하고 속이 부대낀다. 그래서 식당에서 메뉴를 시킬 때 많이 시키는 것보다는 딱 맞거나 조금 남게 시키는 걸 선호한다.
반면에 HJ는 나와 정반대다. 몸이 따뜻해 소화력이 좋다. 식당에서도 기본적으로 양이 넉넉히 나오는 걸 좋아한다. 아무리 맛있는 집이더라도 양이 부족하면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음 좋긴 한데, 양이 조금..”이라는 말이 여지없이 나오곤 한다.
이렇듯 우리는 명백한 식성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다른 점은 잘 맞아서 이 일로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한 번은 우리의 이런 차이가 참사를 불러온 적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니뽕내뽕이라는 퓨전 양식집을 갔을 때 일이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비가 오는 날이었다. 이 날도 난 피자 하나랑 짬뽕 한 개만 시켜서 나눠먹자고 했다. HJ도 못 미더운 눈치로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를 맞고 걸어서 그런가 난 거침없이 음식들을 흡입했다.
HJ는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닥을 보이는 식기를 보고 나에게 다음과 같이 분통을 터트렸다. “내가 세 개 시키자고 했잖아!”이럴 줄 몰랐다며 땀 뻘뻘 흘리며 변명했던 내가 기억이 난다. 결혼한 지금도 식당에 가면 HJ는 이 얘기를 꺼내곤 한다.
이제는 결혼까지 해 구 년이 넘는 시간을 HJ와 함께 보내며,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난 후부터는 식당에 가면 조금 남는 정도로 시키려고 한다. 그럼에도 주문할 때가 되면 속으로 “많을 것 같은데..”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우리 둘의 행복한 공존을 위해서 꾹 참고 마음을 다잡고 주문하곤 한다.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와서, 우린 팝콘 통을 가지고 영화관으로 들어갔고 광고를 보면서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먹는 속도가 빠른 나는 HJ 먹는 것에 맞춰 먹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빨랐다. 영화도 시작 전에 줄어드는 팝콘양을 보면서 HJ 표정도 빠르게 굳어졌다.
나중에 영화관을 나와 “오빠 저녁 먹고 와서 배부르다며..”라고 HJ가 말한다. 난 멋쩍게 웃음 짓는다. 속으로‘아차 내가 또...’라고 생각한다. 사람 잘 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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