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Mar 23. 2023

결혼 생활에 큰 싸움은 없다.

HJ와 결혼생활 관련된 글이 조회수가 잘 나온다. 사람들이 다른 집은 결혼해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내밀한 속사정을 적는다. 결혼 후 다툼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을 막 앞두기 전엔 8년이라는 연애 기간 동안 서로 맞춰왔는데 크게 싸울 일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살아보니 내 예상과 같이 큰 주제로 싸우는 일은 없었다. 다만, 아주 작고 사소한 주제로 다투게 된다.     


누가 들으면 “이런 걸로도 싸워?”라고 말할만한 것들이다. 아래는 그 아주 사소한 목록이다.     



1. 나갈 때 불 끄기

2. 전기 코드 뽑기

3. 세탁기 사용 후에 문 열어두기

4. 방문 열고 닫기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에 적혀 있을 것 같은 문구지만 실제로 서른이 넘은 성인인 우리가 부딪히는 일들이다. 하나씩 자세하게 살펴보자. 첫 번째는 나갈 때 불 끄기다. 미리 내 죄를 고백하자면 난 불을 잘 안 끈다.    


  

부모님 집에서 살 때부터 불을 켜고 나간 적이 많았다. 일부로 켜고 다닌다기보다는 이런 것에 둔감하다. 사실 “불 좀 잠깐 더 키는 게 뭐 어때”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내 이런 생각은 HJ와 같이 살고부터는 문제가 됐다. 그녀는 켜져 있는 불을 못 본다. 출근 전 엘리베이터가 문 앞에 왔을 때도 집을 확인해 불이 켜져 있다면 기어이 끄고 나오고 만다. 옛날 표어에 봤던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사람이 내 배우자다.      



이런 그녀에겐 틈만 나면 불키고 다니는 내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처음엔 내게 불을 끄고 다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잘 끄고 다니지 않자 요새는 말을 안 하고 본인이 끈다. 가끔 나 들으라며 “여기 불이 켜져 있네”라며 돌려 말하기도 한다.      



이럴 땐 난 웃으며 “그러네 누가 켜놨지?”하며 능청을 떤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내가 HJ보다 퇴근시간이 빠른다는 거다. 그래서 켜져 있는 불을 먼저 발견하곤 꺼놓고 모른 척 아내를 맞이한다. 이런 진실은 아내는 모른다.


두 번째는 전기 코드 뽑기다. 난 코드도 잘 안 뽑는다. 한 번 꽂아둔 코드는 방안 구조를 바꾸거나 이사 가지 않는 한 좀처럼 빼지 않는다. 반면 와이프는 쓰고 난 전기제품 코드란 코드는 다 뽑는다.   


   

매일 쓰는 고데기, 헤어드라이기도 예외 없다. 이런 모습을 보다 보면 매일 빼고 뽑는데 드는 거 안 힘든가, 코드 선 접착부가 손상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속으로 든다. 한 번 물어본 적도 있는데 습관이 돼서 힘들지 않단다. 아마 세탁기랑 냉장고도 뽑을 수 있었다면 매일 뽑지 않았을까. 


    

HJ의 이런 점 때문에 로봇청소기도 쓰다가 말았다. 로봇 청소기 충전 줄도 매일 뽑다 보니 배터리가 항상 방전되어 있었다. 이걸 쓰려면 다시 충전을 해서 기다려야 하다 보니 잘 안 쓰게 됐다. 결국 로봇청소기도 부엌 아래 수납장에 박혀있다.      



세 번째는 방문 열고 닫기다. 와이프는 나갈 때 방문을 다 닫는다. 답답하게 왜 닫냐는 말에 이렇게 해야 집 안 온도가 따뜻하게 유지된다는 말을 듣고 납득했다. HJ는 정말 절약정신이 투철하다.      



그럼에도 집에 들어올 때 닫혀 있는 방문을 볼 때는 가슴이 답답하다. 비밀이지만 가끔 몰래 열어두고 출근한다. 이 밖에도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고 세탁기 문 열어두기라든지 사용한 컵은 싱크대에 놓아두기 등 여러 개 있다.     


      

이렇게 다 적어 놓고 보니 전부 내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내용이 많다. 갑자기 이걸 업로드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같이 살아주는 HJ에게 고마울뿐이다. 내일은 불끄고 방문 닫고 출근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요 나 각방 써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