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Sep 30. 2023

데이트 통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남이다!

데이트 통장은 누구에게도 물어도 호불호가 갈리는 주제다. 언젠가 친구 J에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었다. J는 이것을 권유하는 남자친구를 생각만 해도 정이 떨어질 것 같단다. 마치 너에게 쓸 수 있는 사랑은 이 정도뿐이라고 선포하는 느낌이란다. 극단적인 반응에 움찔했다.

    

나와 와이프는 데이트 통장에 대해 꽤나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팔 년의 연애기간 중 마지막 2~3년 동안 데이트 통장을 사용했다. 쓰고 난 후 우리는 이것의 효과에 대해 대단히 만족했다. “왜 이 좋을 걸 이제야 썼을까?”하며 HJ와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느낀 데이트 통장의 장점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보복성 소비가 줄어든다. 이것을 쓰기 전에는 상대방이 이 만원을 냈으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밥을 샀다면 내가 커피를 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식당에 갔을 때 배가 그리 고프지 않음에도 추가 메뉴를 시키기도 했고 먹지 않아도 될 커피를 시킨 적도 있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시킨 메뉴들을 남기는 게 아까워 억지로 배에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과식으로 인해서 속은 더부룩했지만 상대를 위하는 거라고 합리화했다.    

  

생각해 보면 연인 사이 돈을 쓴다는 건 군비 경쟁과 비슷한 면이 있다. 적국이 병사를 늘리면 우리는 전차를 늘리고 또 상대방은 전차를 요격할 수 있는 폭격기를 늘린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무기 증강이 이어지고 어쩌면 다른 유익한 곳에 쓰일 수 있던 자원들이 이러한 경쟁을 위해 무의미하게 빨려 들어간다.   

  

이런 부채의식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소비를 하느라 돈과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하지만 데이트 통장을 쓰고 난 후부터는 이런 일이 확연하게 줄었다. 서로 돈을 내고 예산이 정해져 있으니 마음 편하게 눈치 안 보고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자기에게 알맞은 양만큼 시키고 먹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돈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각자가 돈을 낼 땐 어떤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는 것이니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쓰게 될 때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공동 예산으로 만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서로 만족할만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상대와 이야기하게 된다.     

 

이러한 고민이 거듭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가치관을 알 수 있을뿐더러 데이트의 질과 만족도는 높아진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을 피할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해보니 이렇게 의논하면서 돈을 쓰게 될 경우가 많다. 부모님 경조사비부터 자동차 할부값을 값는다던지 집을 구매해야 한다는 등 말이다. 이럴 때 연애하면서 데이트 통장을 통해 이런 연습을 미리 해둔다면 좀 더 수월한 결혼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은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데이트 통장을 만들면 정해진 날에 ‘일정’한 돈을 입금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한 달에 데이트를 위해 얼마 정도가 든다는 것을 예측할 수가 있게 된다.   

   

이 말은 그 외의 나머지 돈을 가지고 어떻게 소비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만약 얼마를 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여분의 돈이 있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나머지 돈도 묶여버리는 것이다.    

 

오건영 작가의 <위기의 역사>에선 수출·수입 기업이 환율이 높거나 낮아지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와는 다르게 일정한 것을 가장 선호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예측 가능성은 기업으로 하여금 미래를 구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는 개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용자금을 가지고 현재 내가 행복해지거나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행동들을 할 수 있다면 미래는 더욱더 찬란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상대방에게도 이것은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글 처음에 친구 J는 데이트 통장에 대해사랑의 한도를 정해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꼭 돈을 펑펑 써대야만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렇게 쓰는 사람 근저에는 아래와 같은 심리들이 숨어있다. 하나는 상대와 나를 동일시하는 거다. 그러니 이렇게 펑펑 써도 아깝지 않다. 왜냐하면 상대에게 쓰는 것이 곧 나에게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가 상대방이 나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황하며 상대에 대해 반발심이 들지 않을까?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말하며 상대방을 부정하고 싶을 거다. 이런 관계는 언제든지 불행해질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거래 개념이다. 내가 이 정도 해줬으니 넌 나에게 이만큼 해줘야 해라는 식이다. 이 방식이 가장 일반적일 텐데 이것도 상대방과 갈등을 초래할 확률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내가 이 만큼 해줬으면 이만큼 받아야 되는데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는 나와 상대방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혹은 계속해서 받기만 하게 되면 상대방은 나에게 부채의식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비굴하게 행동하거나 만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연인이 이렇게 내 행동으로 인해 나를 피하거나 자유에서 억압되는 모습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상대방에게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마인드는 위험한 면이 있다. 이런 심리 아래에서는 건강한 사랑과는 전혀 다른 기제들이 작용한다.


사랑하는 사이에 자질구레하게 이것저것 따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런 면에서 더 철저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어느새 사랑은 식어버리고 남만도 못한 관계만 남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엔 이누야샤가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