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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Oct 17. 2023

우리 집 거실엔 티비가 없다.

진정한 노후 대비를 위하여

결혼하면서 세탁기, 건조기 같은 물건들을 혼수로 받았다. 그중엔 장인어른이 주신 TV도 있었는데 처음엔 받지 않으려고 했다. HJ와 결혼 전에 거실에 티비를 두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퇴근 후에 같이 티비 앞에 멍하기 있기보단 책을 읽거나 다른 생산적인 것들을 하기 위한 환경설정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셔서 결국은 받게 됐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그 반대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받은 티비를 설치해서 거실 벽면 중간에 뒀다. 곧 TV는 장식품이 됐다. 처음에 작동하는지 테스트할 때 빼고는 일주일 동안 한 번도 트는 일이 없었다. 앉아서 볼 소파가 없기도 했고 그 당시 내가 게임에 빠져있기도 했다.


이런 일주일 동안 모의 테스트를 거친 후에 HJ와 다시 티비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장인어른께 돌려드리자는 내 의견은 반려됐다. 선물로 주신 건데 돌려드리는 건 예의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티비를 다시 포장한 후 옷방 한 구석에 뒀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자면, 이 TV는 회사 차장님께 삼십만 원에 팔리게 됐다. 선물 받은 걸 판다는 죄송함보단 구석에 썩히느니 누군가 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더 컸다. HJ도 이런 내 생각에 동의했다. 아니면 돈을 받는다고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돌아 돌아 우리 집 거실은 텅 비게 됐다. 한동안은 이 공간에 넣을 의자를 찾기 위해 혼자 집 근처 가구 단지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HJ와 이케아에 가기도 했다. 마침내 그 빈자리는 4단짜리 책장 두 개와 독서용 빈백, 이케아에서 산 의자로 채워졌다. TV와 쇼파는 우리만의 독서 공간으로 대체됐다.

   

책장을 둔 맞은편엔 HJ의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녀가 3D펜이나 영상 편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높이 조절되는 책상인 모션데스크도 안방에서 가져왔다. 대체로 이런 배치는 만족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익숙한 티비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HJ가 없을 땐 조금은 적적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거실에 티비가 없다는 점이 주는 장점들이 있다.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삶이 능동적으로 변한다. 본가에 살 때는 거실에 티비가 있었는데, 할 게 없을 때 나도 모르게 그 앞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심심함을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배고픈데 힘도 없고 귀찮을 때 패스트푸드를 시켜 먹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가 몸에 안 좋듯이 이렇게 쉽게 자극을 채워주는 행동이 내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런데 티비가 없으니 독서나 글쓰기 같은 다른 새로운 활동들을 찾게 됐다. 이렇게 찾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고 새로운 것들을 함으로써 나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됐다. 손쉬운 선택보단 조금 더 어려운 것을 택한 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한 내가 근사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로 배우자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티비를 볼 시간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각자가 하고 있는 활동들로 대화를 나누니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졌다.


아무래도 티비는 누군가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입장이니 깊게 말하는 데 한계가 있다. 내가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콘텐츠들을 서로 말하며 주고받으니 좀 더 대화할 때 깊이가 있고 재미가 있다.


마지막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 HJ가 다른 것들을 열중해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멋지다고 느껴지는 것은 덤이다. 어찌 보면 내가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이런 영향 중 하나다.


반면 단점 아닌 단점도 있다.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을 비교적 잘 알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친구랑 이야기하거나 회사에서 이런 주제가 나왔을 때 적극적으로 이야기가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OTT도 다양해지고 어떤 한 프로가 독보적으로 인기가 있는 경우는 드물긴 하다. 거기다 그런 화제는 좀처럼 길게 이어지는 주제가 아니다. 듣다가 일 이야기를 하면 되기도 하고 이걸 모른다고 그 사람과 친해지는 데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우리나라 노인 빈곤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경제적 측면만을 다룬다고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인 것 말고 정작 노후에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준비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우리 아버지만 봐도 남는 시간에 유튜브를 보거나 술을 마시는 등 취미가 다양하지 않다. 특히 나중에 일에서 은퇴하시면 인해 갑자기 많아진 시간에 우울감에 빠지거나 술에 탐닉하게 될까 걱정도 된다. 


이런 것을 대비해서 젊을 때부터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빈 시간들을 행복하게 채워 넣을 다양한 활동들을 배워두는 것이 진정한 노후대비가 아닐까 싶다. 거실에 티비를 없애는 것도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Image by PIRO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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