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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Jul 13. 2023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이심이체로 살아가는 법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다. 연애할 때는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해 보니 알겠다. 이건 틀린 말이다. 부부는 이심이체다. 같은 공간에서 지낼 뿐 마음도 몸도 엄연히 독립적인 존재다. 전 여자친구였던 HJ는 나에겐 잔소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엔 달라졌다. 그녀에게 다양한 요청이 들어왔다. 화장실 문을 닫고 다녀달라든가 빨래를 갤 때 양말 두 짝을 같이 접어달라, 설거지 그릇을 둘 때 큰 그릇 안에 가지런히 놓아 달라는 등 말이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속으로 “난 불만이 없는데 왜 나한테만 바꾸라고 얘기하지?”라며 서운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서 주변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면 당사자가 빌런이라는 말에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라디오 스타에 나온 권상우 씨가 결혼하고 나서 혼날 일이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나에겐 웃프게 들린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상식적으로 서로 삼십 년 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부딪힐 일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 거기다 연애할 때는 서로 컨디션 좋을 때만 주로 보게 되는데 같이 살면 나쁠 때도 봐야 한다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하는 취미가 있다. 그건 독서다. 사실 관심 있는 분야가 달라 공유라는 말을 쓰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책이란 매체를 통해 세상을 읽어나간다는 관점에서는 공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역사, 경제, 지리, 뇌과학등 온갖 잡지식에 관심이 많은 반면 HJ는 돈 버는 경제, 재테크 같은 류를 선호한다. 그래서 서로의 취향의 책들이 짬뽕돼있는 서재를 서서 바라보다 보면 이런 게 다양성인가 싶다. 유전자의 다양성이 우리 인류의 생존을 높여주듯이 서재의 다양성도 우리 부부의 생존력을 높여주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한다.          


이렇게 같은 취미를 공유하니 좋은 점 중 하나는 데이트 장소를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 데이트의 기본은 책을 같이 읽을만한 곳을 가는 것이다. 둘 다 먹는 거나 예쁜 것을 보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테이블 간의 거리가 넉넉하고 사람이 많지 않은 독서하기 좋은 카페를 선호한다. 여기에 커피까지 맛있다면 금상첨화다. 요즘은 괜찮은 도서관도 많아서 예쁜 곳을 찾아서 가기도 한다.    

  

카페에 가서도 얘기를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서로 조용히 책을 본다. 음료를 각자 시키고 테이블이 크다면 같이 앉고 협소하다면 각자 다른 곳에서 읽는 편이다. 그러다 얘기하고 싶으면 와서 수다를 떨다가 각자 자리로 다시 간다. 

      

가끔은 교보문고나 알라딘 중고 서점도 간다. 가서도 우리는 이심이체다. 삼십 분 정도 시간을 정해두고 각자 보고 싶은 책을 본 후 약속장소에서 만난다. 처음에는 같이 다녔는데 이렇게 해보니 본인이 관심 가지도 않은 분야를 봐야 하니 서로 괴로워 이렇게 하는 걸로 자연스레 정해졌다. 그래도 집에는 같이 간다.

           

이렇게 각자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면 참 좋다. 이상하게 혼자 하는 독서인데도 HJ가 옆에 있으면 더 좋다. 신기한 일이다. 어떤 공통의 행위를 같이 함으로써 느끼는 행복감이 인간에겐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각자가 함께’라는 얼핏 모순적인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런 소중한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가슴 한편에 남는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쌓아가며 오늘도 HJ와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Image by PublicDomainPNG.com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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