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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Mar 15. 2024

아내가 전재산을 비트코인에 넣자고 말했다.

오빠 우리 비트코인 들어가자.

아내가 저녁 식사 중에 한 말이다. 요즘 비트코인이 구천 원 만을 넘어 연일 상종가를 친다는 말을 듣긴 했다. 하지만 태생이 쫄보인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저녁 식사에서 듣게 될 줄이야.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김치찌개를 앞접시에 담는 손이 느려진다. 이 순간 여러 상상들이 내 안에서 상영됐다. 


비트코인으로 자산을 두 배 넘게 불려 기뻐하는 우리 모습이 보인다. 또 자산이 삼분의 일 토막이 나서 울상인 아내에게 속 쓰린 위로를 건네는 모습도 보인다. 여기서 “우린 젊으니깐 괜찮아”라고 아내에게 말하려고 하는데 다시 아내 말이 들린다.


“오빠 어떻게 생각해?”

이 말에 내 망상은 놀이동산의 회전목마가 멈추듯 멈춘다. 아내를 쳐다본다. '비트코인은 아닌 것 같은데'란 말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일단 반짝반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실망시키곤 싶진 않다. 어떻게 에둘러 거절할까 고민한다.

      

일단 긍정의 언어를 내뱉어본다. 그리고 물어본다. “그래 비트코인 좋지. 얼마 정도 넣고 싶은데?” 나름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에 나 스스로 칭찬한다. 


하지만 다음 답변을 듣는 순간 다시 멈칫한다. “한 몇 천?” 내가 생각한 맥시멈은 오백이었는데 생각보다 통이 크다. 아내가 홈플러스에서 장 볼 때 대량으로 사는 것으로 알아봤어야 했는데 장모님도 아내가 손이 크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상상을 넘는 금액에 잠깐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대화를 계속해나간다. “몇 천은 너무 많은 것 같은데?”“몇 백은 어때?”라고 되묻는다. 달갑지 않아 하는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그녀의 표정이 달라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그러면서 아내가 나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요컨대 이번이 기회이고 우리는 젊으니깐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머릿속 경고신호가 울린다. 그동안 책에서 봐왔던 경제 스승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워랜버핏이 소파에 앉아 이야기한다. "제1원칙은 돈을 잃지 않는 거네. 제2원칙은 제1원칙을 까먹지 않은 거네."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이어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한다. "돈은,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스려야 하네" 홍춘욱 박사가 벽에 기대며 말한다. "젊었을 때 자산은 잃으면 안 됩니다."

      

그 밖에 책에서 읽었던 저자들의 말들이 메아리친다. 이런 내 안의 소리들을 잠시 뒤로 밀어둔다. 그리곤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여보 자기 말이 맞아. 우리는 젊고 다시 벌 수도 있어 비트코인이 대박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런 투자는 옳지 않아. 우린 아직 공부가 부족해."     

 

내 말에 아내가 맞받아친다. “그래서 우리 이 년 동안 뭐 한 거 있어?” 크.. 아픈 지적이다. 맞는 말이라서 더 아팠다. 그녀 말대로 이 년 동안 경제 책은 읽었지만 실제로 한 것은 절약과 개인연금을 꾸준히 붓는 정도였다.      


나도 자산을 불리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 년 후 사전청약이 당첨돼서 그때까지 뭔가에 투자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만약 그때 돈이 필요한데 우리가 투자한 자산이 마이너스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 보면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대답을 기다리며 흘겨보는 그녀에게 다시 이야기한다. “그래도 이렇게 충동적으로 투자하는 건 아닌 것 같아”나는 솔직히 이런 투자는 우리가 벌어도 문제라고 생각해. 이건 우리 실력으로 번 게 아니라 단순히 도박을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가 이번에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다면, 나중에 또 이런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그러면 세 번 성공해도 한 번 깨지면 그동안 벌었던 모든 수익을 다 토해내는 거야.

      

이런 내 얘기해도 그녀는 불만이 있는 눈치다. 안다. 아내는 낙관적이고 부자를 꿈꾸는 사람이다. 비교적 수동적인 내 태도에 불만이 있었을 거다. 사실 그녀가 투자하자고 했던 채권,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무조건 위험하다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그녀가 추천해 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채권, 비트코인 관련 책들 말이다. 동기는 불순한 면이 있었다. 반대를 하더라도 근거 있게 반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어보니 아내와 이 사람들 말에도 일정 부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책을 읽은 후에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다. 단기채권이나 비트코인을 우리 포트폴리오에 일정 부분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다. 이런 생각 변화를 그녀에게 말하고 이렇게 책 읽으라고 읽는 남편 없지라고 말하니 이렇게 책 추천해 주는 아내도 없다고 말한다. 순발력 있다.


나에게 이런 자극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가져와 준 시련(?) 덕분에 경제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나가고 있다.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투자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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