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오늘은 아내 회식 날이다. 시계 시침이 열 한시를 가리키건만 아내는 통 연락이 없다. 다섯 시에 마지막으로 통화했으니 벌써 여섯 시간째 연락두절인 셈이다. 익숙하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아내가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게 이런 기분일까.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회식 중에 연락이 힘들다는 건 안다. 술에 직장생활을 안주 삼으며 먹는 회식 시간은 얼마나 빠르게 가는가. 나도 한창 이야기하다가 벌써 이 시간이 됐나 했던 경험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아내가 1차에서 2차로 갈 때나 중간쯤에 한 번쯤 연락해 주면 좋겠다는 건 내 욕심일까.
혹은 몇 시에 마무리될 것 같다는 말이라도 좋다. 이 정도만 해도 걱정하며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회식만 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기약 없는 기다림 시작이다. 이렇게 정해지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건 유독 힘들다. 이런 상태에선 아내가 올 때까지 다른 일을 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해보려고 핸드폰을 꺼냈지만 한참 즐겁게 대화중인 분위기를 깰까 싶어 폰을 다시 옆으로 치운다. 그럼에도 마음만은 치우지 못했는지 잘 있나 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물론 그동안 잘 있었으니 오늘도 잘 있을 거고 앞으로도 잘 있을 거다. 혹시나 잘생긴 후배가 그녀를 꼬시진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해본다. 그럴 일도 없다. 중간에 한 번 연락해 주면 덧나나 싶어 심술도 난다.
어제도 야간 근무를 나가서 그녀를 보지 못했다. 이렇게 이틀 연속 얼굴도 보기 힘든 건가 싶어 그녀에게 야속한 마음마저 든다. 이렇게 마음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문득 그녀가 행방불명됐던 일이 떠오른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안 됐을 쯤이었다. 주일 중 수요일 같은 다른 날과 크게 차이가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그녀가 퇴근하고 집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좀처럼 현관문 도어록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퇴근 전에 늘 연락하는 그녀였는데 이 날은 카톡이나 전화도 없었다.
이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저녁 여덟 시가 됐을 때 장모님께 전화드렸다. 혹시나 친정에 갔나 싶어서였다. 장모님도 그녀의 행방을 몰랐다. 짧은 통화 후에 연락이 오면 저한테도 전화를 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마쳤다. 불안함이 점점 더 커졌다.
시간은 흘러 저녁 11시가 됐다. 그녀 회사 번호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회사에 전화를 해볼까 하다 너무 과한가 싶어서 기다려 봤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회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12시가 넘고 새벽 한 시에 다가가자 걱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안 좋은 상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공장지대 근처에 있는 우리 집에 있는 어두운 골목길들이 떠올랐다.
평소 그녀는 우리 집까지 가는 길에 어두운 곳만 골라서 가는 습관이 있었다. 신호등을 기다리기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우리 집은 우범지대라며 위험하다고 말해봤지만 다 큰 성인이 다른 사람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거기다 그게 남편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새벽 한 시가 되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12시 50분쯤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급한 마음으로 받아 자초지종을 들으니 회사에서 팀원들이랑 갑자기 회식을 했다는 거다. 연락이 안 된 거는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꺼져있어서 그랬다는 거다.
이 얘기를 듣고 있으니 가슴에 화가 차 올랐다.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면 연락을 해줘야 되는 게 아닌가. 왜 이렇게 나를 배려를 안 하지란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런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해 강하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명백한 위험 신호였다.
이렇게 감정적 동요가 커서 내 생각이 옳다는 마음이 크게 들 때 난 말을 멈춘다. 이런 상태의 난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나를 호흡 가다듬었다. 그리곤 연락이 안 돼서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들었고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엔 꼭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이런 내 말에 그녀는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아마 이 상황에서 난 격정적으로 그녀에게 화를 표출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걱정했던 내 마음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없었을 거다. 사람은 진의보다는 먼저 오는 감정을 먼저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마 화를 먼저 인식하고 내 걱정이라는 진의는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부부와 관련된 책에서 봤던 것 같은데 상대방 탓을 하지 말고 자기가 느낀 감정을 솔직히 배우자에게 말하라는 내용이 생각났다. 그래서 화를 방출하기보다는 그녀에게 많이 걱정했다고 말하고 다음에는 연락을 꼭 해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아내 실종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렇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번 일을 넘겼지만 다음에도 이런 비슷한 일은 종종 일어났다. 오늘도 열한 시가 넘어가면서 슬슬 걱정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회식을 한다는 사실 자체는 아니 전보다는 낫다.
열 두시쯤 그녀와 연락이 됐다. 그녀에게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중간에 연락 한 번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다시 말한다. 그때의 나와 같이 이번에도 똑같이 말한다. 그녀도 이런 나를 보고 미안하다고 연락하기 애매했다고 대답한다.
이렇게 하루가 넘어간다. 그녀가 바뀔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기대하는 마음이 크면 상대방을 원망하게 된다는 것을 오랜 연애 과정으로 깨달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녀는 종종 회식을 할 테고 연락이 되지 않을 거다. 그러면 난 다음과 같이 그녀에게 말하겠지. "여보 보고 싶었어 연락이 안 돼서 걱정됐어 앞으로는 중간에 한 번쯤은 연락해 줬으면 좋겠어”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