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실패한다.
브런치 발행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원래는 나흘에 한 편씩 올리는 게 목표였는데 이 날들이 점점 늘어져서 최근에는 십일이 넘도록 올리지 못했다.
이런 나태함이 반복되자 내 구독자인 친구 A도 언제 올리냐며 카톡으로 성화다. 내 글을 A가 이렇게 기다리는지 몰랐다. 이런 반응에 내 글이 “그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의 행동은 자주 봤던 친구가 안 보이면 궁금해지는 그런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도 내야 한다는 걸 안다. 몰랐다면 열 달이 넘도록 이렇게 꾸준히 글을 발행하진 못했을 거다.
그럼에도 한 번 놓아버린 글쓰기는 다시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글쓰기도 근육처럼 쓰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근육이 우리 몸에 있어 사치품이듯 글의 원재료인 우리의 사고도 그렇다.
글을 안 쓸 뿐인데 신기하게도 생각도 단순해지고 퇴화된다. 글을 한창 쓸 때는 어떤 사람을 봐도 좀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그의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면 지금은 무생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열 달 동안 꾸준히 해오던 것을 안 하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과는 단순하지만 원인은 복잡하다. 그럼에도 대강 짐작은 간다.
그동안 루틴으로 유지해 왔던 삶에 대한 지루함일지도 모르고 회사에서 차장님과 나눴던 대화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좀 더 직접적인 계기는 후자 같다.
작업하러 가기 위해 우리는 지하철 중간칸에 서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쓰고 있는 데일리리포트 이야기 나왔고 그는 나에게 이것을 찢어버리라고 말했다.
참고로 데일리리포트는 200일 넘게 써오고 있는 내 루틴 중 하나다. 이건 내가 한 일에 대한 시간과 집중도를 적고 그것에 대해 저녁에 평가하는 나만의 도구였다. 브런치에 아래와 같이 이것에 관련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의 극단적인 표현을 처음 듣었을 땐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차장님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에 납득이 갔다. 본인도 그런 비슷한 걸 썼다고 한다. 나는 오늘 한 일을 기록하는 정도지만 차장님은 내일 해야 할 일도 썼단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이것에 대한 강박이 심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걸 안 하게 되자 강박이 좀 나아졌다는 내용이다. 표현은 러프했지만 나 스스로도 그의 말이 납득이 갔다. 나조차도 쓰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날부터 데일리리포트를 쓰지 않았다. 벌써 한 달이 됐다. 한 달을 꾸준히 쓰는 건 엄청 힘들었던 것 같은데 안 쓰는 날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면 과연 나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새로운 것을 하고 있을까? 전혀 아니었다. 새로운 것은커녕 게임만 많이 했다. 책도 덜 읽었고 글도 거의 쓰지 않았다. 심지어 운동도 몇 번 안 갔다.
이 두 삶 사이 어떤 게 조금이라도 나은 삶인가? 내 생각엔 그래도 전자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속에 있는 본질을 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표피만을 볼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차장님이 쓰지 말라고 한 말의 본질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계획한 일을 못하게 됐을 때 스트레스받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해둔 일 때문에 새로운 것을 못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유 다 나에겐 적합하진 않았다. 내가 일을 못했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새로운 것을 할 시간 자체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행위이지 기존에 하던 것을 그만두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의 의견을 수용한 것은 심플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데일리리포트를 그만두면 뭔가가 해결될 것 같이 느껴졌던 거다.
쉽게 한 선택은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나 또한 안 했더니 나 스스로를 반성할 장치가 없어지고 결국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게임만 주구장창하게 됐다. 새벽까지 하느라고 오히려 개인적이나 회사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배웠다. 어떤 일을 대할 때 본질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점. 거기다 내 브런치 매거진이 하나가 더 늘었다. 바로 ‘도냥이의 아름다운 실패 생활’이다. 이런 매거진을 통해 내 실패에 대해 바라보고 좀 더 다른 실패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있다. 그러다 뭔가 하나 얻어걸려서 대박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내 실패를 공유하면 누군가가 보고 성공의 거름으로 삼을 수도 있다.
<성공법칙 포뮬러>란 책에도 본인의 실패 경험은 크게 도움이 안 되지만 다른 사람의 실패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된다는 내용도 나온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서는 내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놔 보려고 한다. 누가 들으면 “이게 무슨 실패야 그런 건 실패축에도 못 껴?”라고 말할 것 같아 위축되기도 하지만 실패란 건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관대한 누군가는 살아만 있으면 성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위대한 성취를 이뤄냈어도 본인이 실패라고 여기면 실패다. 결국 다 자기 생각하기 나름이다. 매거진을 만들자마자 벌써 하나 깨달았다.
이 매거진을 쓰면서 어떤 실패를 하게 될지 두근두근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단 설렘이 많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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