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삼 년 만에 대리가 됐다. 누군가에게는 느린 진급이겠지만 나에겐 좀 빠르다. 할 줄 아는 것도 많지 않은데 벌써 대리라니 진급에 대한 기쁨보단 부담스러움이 더 앞선다.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보낸 연락들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런 기분이 나만의 것은 아닌가 보다. 얼마 전 통화했던 동기도 나와 같은 이유로 진급에 대한 부담스러움을 호소했다. 아마 이 친구는 삼 년 동안 한 곳에서 막내로 서무업무만 해서 더욱더 그런 기분이 컸을 것 같다. 대리 업무를 해보지도 못하고 대리가 돼버린 거다.
아마 이런 공포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느끼거나 상상해 봤을 거다. 이제는 더 이상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기분, 내 미숙함을 알아채고 날 무시하는 후배들, 상사로부터의 질책.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이렇게 되지 않는다. 본인이 이런 공포 속에서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원에서부터 살 때부터 있었던 이런 무리에 배재되는 공포는 시간이 지난 현대 사회에서도 생생하게 발휘된다. 어찌 보면 아직 구석기시대 뇌를 가지고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이다.
이런 그에게 그동안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 응원했지만(실제로 같이 일했을 때도 잘했다.) 정작 나를 향해서는 이렇게 따뜻한 응원이 안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만큼만 이라도 나에게 해주면 좋을 텐데 왜 나에게만은 이렇게 엄격하게 구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것도 인간의 본능이려나.
책 <여행하는 인간>에서 문요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위축될 때마다 자기 팔로 스스로를 안고 괜찮다며 위로해 준다고 하는데 내게도 그런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방금 쓰면서 해봤는데 효과가 있다. 괜히 뭉클해진다.
이런 내 자신감 부족은 최근 바뀐 업무 영향도 있는 것 같다. 3개월 전 부서를 이동하면서 막내를 탈출하고 서무업무를 벗어나 한 분야의 담당자가 됐다. 일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서무업무를 했기에 깊게 고민할 일은 없었다. 성실하게 교육일정을 짜고 영수증을 정리하고 취합해야 할 정보들을 모아서 상위 부서에 제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되니 그때와는 좀 결이 다르다. 지금도 아주 깊게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는 더 넓고 깊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졌다. 육하원칙에 따른 기본적인 업무사항들과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된 법적인 사항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업체들과 연락할 일들도 많아졌다. 전화 공포증까진 아니지만 연락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개념도 안 잡혀 있어서 한참 고생 중이다. 전화를 끊고서도 뭔가를 빠뜨린 것 같은 찜찜함이 있다.
이런 내게 언젠가 직속 상사에게 본인의 일에 대해 관심을 좀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질책 어린 조언을 들었다. 들을 당시에는 당황해서 둘러대며 넘어갔던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집도 적당히 더럽고 어떤 걸 할 때도 그리 치열하게 하는 법이 없다. 대학교 때도 한 번 밤샘을 하면 B를 맞을 수 있다고 해도 잘 자고 D를 맞는 성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향이 인간관계에는 도움이 됐다. 상대방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인드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대화할 때 상대방 내용보단 그 사람의 제스처나 목소리의 고저 감정등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업무에 있어서는 조금 문제가 됐다. 아마 내 위 조장님이 모든 걸 알아야 하는 꼼꼼한 스타일이라 그런 것 같다. 원래 문제라고 여기면 문제가 된다. 직장인은 개인 성향이 어떻건 간에 상사에게 맞춰야 하는 게 일종의 정답인지라 까라면 깔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조장님과 팀장님에게 계속해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계속해서 받는다. 저번에는 웃고 있는 나를 보고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느냐고 지적한 팀장님말에 머쓱한 표정으로 넘어간 날도 있다. 속으로는 “진지하게 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나?”란 발칙한 생각을 했다는 건 비밀이다.
이렇게 나에 대한 피드백이 계속되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자꾸만 주눅이 든다. 이제는 보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할 일이 생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주변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씩씩하게 잘만 일하고 있는데 나는 왜 그럴까란 생각도 든다.
나도 안다. 이런 내 생각이 진실과는 다르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다 나름의 힘든 점이 있다. 다만 내 상태에서는 안 보일 뿐이다. 이게 현재 내가 힘든 상태라는 반증이다. 생물이란 위기를 느끼면 본인의 안위만을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이런 죽는소리를 배우자인 HJ에게 한다면 “오빠 생각을 고쳐먹어야 해 그런 생각이 미래를 만드는 거야!”라고 일갈하는 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그리고 본인의 이런 호탕함에 스스로 웃겨서 한바탕 웃어댈 거다. 반칙이다.
이렇게 웃으면 뭐라고 하기도 뭐해진다. 그리고 그녀 말이 맞다. 그래도 가끔은 위로를 받고 싶어질 때가 있단 말이지.
최근 읽었던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에서도 이런 상상이 내 미래를 만든다고 뇌과학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런 얘기를 난 밑줄 쳐가며 인상 깊게 봤다. 하지만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머리론 알고 있지만 몸으론 체화가 안 됐다.
그래서 책에 내용을 실천해 보기 위해 메모장에 목표를 적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곧바로 이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치환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 최고의 하루를 상상할 때도 있다. 어디서 본건 다 하는 중이다. 물론 이런 것만 하는 건 아니고 업무를 할 때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한다.
조장님도 최근에 이렇게 고생하고 나면 연말이 되었을 때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있을 거라며 그때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인상 깊었는지 계속 기억난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나중에 이 글을 보고 “내가 이랬었다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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