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Mar 07. 2024

내가 본사에 가려는 이유

가기 싫은데 하고 싶다.

우리 회사가 다른 곳이랑 좀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강한 본사 기피 경향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동기들에게 본사 갈 생각이 있냐고 물으면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심지어 본사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 현업 부서로 온 분들도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물론 본인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아서 내 앞에서만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본사나 메인부서를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영 딴판이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근무량이 폭증한다. 현업에 비하면 일양이 두 세배다. 현업에 있을 때는 유지관리 업무를 위주로 하니 규모도 작고 일이 많지가 않다. 하지만 본사 단위로 가게 되면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큼직한 일들이 많다. 들리는 말로는 주 6일은 기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보수는 더 적다는 점이다. 더 많이 일하는데도 돈은 더 적게 주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교대근무에 원인이 있다.


현업에 있을 때는 보통 교대근무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야간에 추가로 받는 수당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사는 기본적으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를 하니 받는 월급이 줄어든다. 아마 못해도 수십만 원은 차이가 나는 걸로 안다.     


거기에 우리 회사 특성상 파격적인 승진이 어렵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 더 승진에 유리하긴 하겠지만 요즘은 유독 승진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아무래도 정년이 보장된 우리 회사를 선택한 사람은 승진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유형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최근 읽었던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도 사람들은 초과보수보다는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오는 손해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말에 따르면 요즘 세대들 입장에서 진급은 손해보다는 추가적인 이득으로 여겨진다. 이래서 상대적으로 진급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우라 직렬 특유의 폐쇄성에서 나오는 꼰대문화도 이런 낮은 지원률에 한 몫하는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는 본사로 가는 외부적 동기가 떨어지다 보니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된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본사로 간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선택을 했다. 본사에 가겠다고 지원했다. 와이프는 말렸다. 지금 있는 곳이 회사에서 편한 편에 속하고 집에서도 15분 밖에 걸리지 않는 황금 위치다. 그런데 본사로 가게 되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린다.


그리고 처음에도 말했듯 임금도 줄고 일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내 성향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한 번 가본데 보다는 새로운 다른 곳을 가보는 편이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있는 곳 현업에서는 유지관리를 주로 하기 때문에 어떤 사업을 기획하거나 설계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새로 가는 곳은 아마 내가 설계를 직접 해보거나 공사를 발주해 볼 수 있는 곳으로 갈 확률이 높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내게 있어 대단히 매력적이다.     


두 번째는 두려움 때문이다. 안 해 봐서 그런지 본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런 일은 아무나 못할 것 같고 이런 느낌이 들어 본사에게 누군가를 뽑아간다고 하면 기피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진다. 두려움이란 막연함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을 극복해 보자 지원한 것도 있다.

     

사실 아직 인사 발령이 난 상태는 아니라서 못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본사 분위기를 기피하는 우리 회사 분위기로 보아하면 갈 것 같기도 하다. 살짝 오바 보태서 비트코인에 전재산을 올인한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싶다. 하루마다 내 선택에 대해 오락가락한다. 어제는 잘 지원했다 싶다가도 오늘은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지 싶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으나 이런 내 선택과 감정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선택이 왔을 때 이 글을 참조로 해서 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Image by Michal Jarmoluk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진급이 싫은 사람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