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 직장에서 큰 이슈가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다른 부서로 이동한 A대리가 B과장이 일을 핑계로 주기적으로 자신을 괴롭혔다며 팀장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그가 속해있는 조직은 난리가 났고 주변 관련 인물들도 면담을 위해 불려 다니는 등 사무실 분위기가 흉흉해졌다고 한다.
위 사례처럼 심하진 않더라도 일을 하다 보면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돈을 이유로 한 공간 안에 묶어두니 당연한 결과다.
직장에서의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상사나 부하직원들에 대한 하소연은 이미 단골 소재다. 이런 것들을 듣고 있자면 오히려 평온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나도 이런 고통에서 자유롭진 않다. 특히나 부서를 옮기고 나서 내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해지던 참이었다.
이런 이유로 교보문고에서 <사무실의 도른자들>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이거 나를 위한 책이야!”라며 속으로 외치며 바로 구매버튼을 눌렀다.
이 책의 저자인 테사 웨스트는 뉴욕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이런 그가 20년간의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이 책을 통해 회사에서 겪을 수 있는 도라이(?) 유형과 이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거기에 책 말미에는 내가 도라이인지 테스트해 주는 검사지와(이런 검사를 스스로 할 정도면 도라이는 아닐 것 같다만) 주변 사람이 어떤 유형의 도른 자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검사지도 제공한다.
이 책에 따르면 내가 겪고 있는 상사는 통제광 유형이었다. 좀 위안이 됐던 건 통제광 상사를 만나는 일은 흔하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만나는 상사 두 명 중 한 명은 통제광 유형이다. 통제광 상사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모든 사안이 하나같이 긴급하다.
2. 끊임없는 통제 폭격에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사라진다.
3. 오직 상대를 바쁘게 하려고 지루하고도 쓸데없는 업무를 던져준다.
4. 부하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법이 없다. 자신의 일이 대형 프로젝트의 작지만 중요한 부분에 해당한다는 것을 부하는 절대 모른다.
모든 항목에 O을 할 순 없지만 대다수는 고개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 다책에서 다음과 같이 뼈를 때리는 구절을 발견했다.
통제광의 아이러니는 가장 열심히 일하면서 가장 적게 성취한다는 것이다. 통제광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도 똑같다.
딱 내가 얼마 전에 경험했던 일이었다. 상사가 보고서를 쓰라고 쉬는 시간까지 반납해 가며 썼었다. 그런데 최종 보고서를 보고 좋다고 하더니 결국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지막엔 본인이 일일이 수정한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했다.
결국 내가 고생해 가며 쓴 문서는 빛을 못 보고 아직도 파일함 귀퉁이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이때의 경험 이후로 난 일에 대한 열정이 현저하게 떨어짐을 느꼈다.
이 책에 따르면 이런 통제광 상사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거시적 관점에서 목표에 대해 대화한다
2. 기대 목표는 상호 합의로 정한다
3. 상사에게 맞설 때는 일반화를 피한다.
4. 주기적으로 업무를 확인한다
5. 근무시간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한다.
첫 번째는 거시적 관점에서 목표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다. 통제광 상사는 부하에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잘 설명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이 일을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른다. 당연히 일에 대한 동기와 디테일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라.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전체적인 일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이런 질문을 통해 상사의 목표를 명확히 알 수 있고 일에 시행착오를 줄임과 동시에 일을 추진해갈 수 있는 동기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상사가 당신에게 품는 기대치에 대해 질문해라. 내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과 작은 일에 대해 물어라. 이를 통해 상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세 번째는 일반화를 피하는 것이다. 내가 상사에게 갑갑하다고 느꼈던 일만 이야기하라. 이 일을 일반화하려고 하면 통제광 상사는 말문을 닫고 경멸하며 방어적 태도를 보일 확률이 높다. 네가 일을 제대로 못해서 내가 이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답답함을 느꼈던 구체적인 상황만 얘기하는 것이 좋다.
네 번째는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것이다. 익숙하진 않겠지만 이런 잦은 보고를 통해서 통제광 상사에게 안심을 심어줄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내 자유의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은 근무시간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설정해두지 않으면 상사는 연장 회의나 퇴근 후에 잦은 연락을 통해 우리를 통제하려들 것이다.
위에 소개한 방법들을 전부 적용할 순 없겠지만 내 맥락과 상황에 맞게 적용해보고 있다. 내 경우는 잦은 보고를 주로 실천하고 있는데 아직 이에 대해 상사에게 이렇다 할 피드백을 받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쁜 피드백을 주진 않으니 계속해서 실천해 나갈 생각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지 않은 유형들도 많다. 강약약강형, 성과 도둑, 불도저, 무임승차자, 불성실한 상사, 가스라이팅 형 등 다양한 유형에 대한 설명과 대처방법들도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 말미에 내가 사무실에 도른자들인지에 대해 파악하게 해주는 설문지는 이 책에 백미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문제를 풀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회사에서 연차가 쌓여갈수록 일보단 사람에 대한 힘듦의 비중이 커져감을 느낀다. 이런 이유로 직장인으로서 살아나가기 위해선 업무적인 숙련도와 더불어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함을 느낀다.
특히나 조금이나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해서 재앙 수준인 도른자들에 대한 공부는 필수다. 이 책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들 사례를 통해 이런 공부를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교보재다.
ps) 적고 보니 상사 입장에선 내가 도른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