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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Jan 04. 2024

제1회 도냥이 독서 시상식

내가 뽑은 올해의 책

올해 연말은 연말 같지가 않았습니다. 남들은 쉬는 연휴에 회사에 출근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연말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도 했고요. 같은 처지인 아내도 비슷하게 느꼈답니다.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신촌거리에서 수많은 인파들과 거대한 트리를 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요.

     

이런 모든 이유들이 제 각각 합당하지만 저는 이런 헛헛함의 근원은 한 해를 매듭짓는 결산을 안 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정성스럽게 선물을 준비하고 마지막 리본을 묶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런 공허함을 조금이나 메워보고자 제 취미이자 낙 중 하나인 독서에 대한 연말정산을 해보려고 합니다. 좀 오글거리지만 수상식 형태를 빌어서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핑계고 연말 시상식을 인상 깊게 봤거든요. 이 수상식에 참여했던 권진아 가수의 <운이 좋았지>의 여운이 남아 아직도 입으로 흥얼거립니다.      


여하튼 사족은 여기까지고 다시 책 수상식 관련 내용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올 한 해 읽은 책은 약 90권 정도입니다. 


여기서 한두 권만 뽑기에는 아쉬워서 여섯 개 부문별로 나눠서 뽑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번 올 한 해의 독서 소감 및 다음 연도 독서 생활에 대한 바람을 적어봤습니다. 바로 들어갑니다.    




첫 번째는 과학입니다. 과학 분야 제 올해의 책은 캐럴 계숙 윤 저자님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입니다. 

김상욱 물리학자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도 “다시 읽어봐야지”할 정도로 재밌게 읽었지만 이 책을 꼽은 건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줬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된 책 <물고기는 살아 있다>의 부모님 격입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에도 <물고기는 살아 있다> 저자 분이 실제로 영감을 받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죠.      


이 책에는 움벨트란 핵심 개념이 나옵니다. 움벨트는 인간이 자연을 본능적으로 분류해 내는 타고난 능력입니다. 우리가 푸들이나 몰티즈, 골든 레트리버 같은 생김새가 다른 개들을 봐도 개라는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죠.      


이런 움벨트를 이용하여 자연을 분류해 온 인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계에 부딪치고 과학을 통해 새로운 분류 체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진화론과 다윈에 대한 일화도 대단히 흥미를 자극합니다.     


분명 과학 서적인데도 한 편의 추리물을 보는듯한 짜임새와 긴박감이 있습니다. 안 보신 분들께 강추드립니다. 수상 축하합니다.     


두 번째는 전기입니다. 전기 부문 제 올해의 책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입니다. 


전기류 대가인 윌터 아이작슨의 <일론머스크>도 후보에 있었지만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이기긴 역부족이었네요. 페이지부터 차이가 납니다. 일론머스크는 760페이지로 벽돌책이지만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더합니다. 1152페이지로 거의 400쪽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이 더 있습니다.


참고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내용은 그대로나 판본을 작게 만들어서 덜 무겁게 만들어놓은 특별판이 있습니다. 이걸 사시면 조금 더 쾌적한 독서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소개를 가볍게 해 보자면, 이 책은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담은 전기입니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미국의 핵무기 제작과정을 진두진휘하며 필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더불어 미국 과학사뿐만 아닌 현대사에서도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우리는 이 인물에 어린 시절부터 이 인물의 자식의 마지막까지 함께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스쳐 지나가듯 이름을 들어본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등 수도 없는 과학 명사들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미국 현대사의 일부분을 함께했던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고 추후에 미국사를 책을 따로 사서 읽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크리토퍼 놀란이 이 책을 근거로 <아메리카 프로메테우스>라는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서 화제가 됐습니다. 저자는 영화를 보고 축약된 부분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했다고 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네요. 수상 축하합니다.


다음 소설 부문입니다. 소설 부문 수상작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인간 실격>을 제치고 <데미안>이 올라갔습니다. 두 작품도 워낙 유명하고 재밌는 작품이니 안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일독을 권해봅니다. <데미안>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서 수상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짧게 소개해보자면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면 성장하는 그런 소설입니다. 글솜씨 자체만 봐도 훌륭하고 거기에 인물의 내면 묘사나 시대상 은유도 풍부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그렇게 좋다고 못 느꼈는데 삼십 대가 된 지금에 읽으니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빠르게 가겠습니다. 경제 부문 수상작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입니다. 


2008년 미국 대공황을 다룬 <폴트라인>도 재밌었지만 저는 이 책이 더 좋았네요. 사실 최신 책을 좋아하는 제 성향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장하준이라는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음식과 경제를 이어서 만든 경제 교양서입니다. 저자 말마따라 독자들을 딱딱한 경제로 꼬시기 위해서 음식을 미끼로 삼았다고 했는데 그 효과가 훌륭하다 못해 넘칠 지경입니다. 


차라리 음식에 대한 교양서적을 쓰셨어도 됐을 정도입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우리나라 식문화를 본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를 보여줘서 재밌었습니다. 음식과 경제의 연관성에 대한 것도 흥미로웠고요. 수상 축하합니다.


철학 부문은 <스토아적 삶의 권유>입니다. 

철학자가 아닌 헬스 트레이너 출신이 썼다고 해서 기대감이 없었는데 읽고 나니 제 편견을 깨준 책이었습니다. 읽은 후에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차분해졌던 감각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 책 이후로 스토아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수상 축하합니다.


역사 부문은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입니다. 

원래부터 로마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정한 12가지 큰 틀로 로마사를 바라보는 책이었습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황제들의 일화도 흥미로웠고 기존 유명한 로마사책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의 내용을 수정해 주는 부분에서 로마사가 현대에서는 어떤 식으로 평가되는 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 이후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나 마스터오브로마 시리즈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마지막 수상 축하합니다.


일곱 분야 모두 수상 완료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올 한 해 그리 많은 책을 읽지 못했다고 느꼈는데 그래도 쌓이니 생각보다 많은 양이 되었네요. 의외였던 건 수상작에 제가 고른 책보단 독서모임 선정도서가 꽤나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래서 독서모임하는 가 싶습니다.


나라면 읽지 않았을 책들을 접하게 해 주니까요. 특히나 한 삼 년 연속 모임을 해가면서 느꼈던 권태들을 최근에 친구들이랑 같이하는 독서모임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었던 점이 신의 한 수라고 여겨집니다.


다음 한 해에도 <자연에 이름 붙이기>처럼 제가 예상하지 못한 책들을 읽고 예상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더 많이 느끼는 독서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라면 읽지 않을 책들을 읽어보시고 새로운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기원합니다. 모두 즐거운 독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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