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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Apr 21. 2024

일은 함께 퇴근은 혼자 하겠습니다.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회사가 지하철과 가깝기도 하고 흔들리는 전동차 안에서 책 보는 걸 좋아한다. 적당한 소음과 진동이 있는 지하철은 독서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이렇게 지하철에서 책 보는 게 습관이 되니 집에서는 책이 안 읽힌다. 회사를 안 가고 집에서 쉬는 날에도 지하철을 타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이렇게 지하철은 내 출퇴근과 취미생활을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다.     


이런 고마운 친구와 단 둘이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항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동료들과 퇴근 길이 겹칠 때가 있다. 


그들이 자차나 버스를 탄다고 하면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짓지만 속으론 미소를 감출 수가 없다. 이때 내 속마음은 '흐흐 혼자서 여유롭게 갈 수 있겠다.'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료가 있다면 긴장감은 높아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적지를 물어보지만 방향이 같다. '최악이다. Shit!'      


“저는 혼자 갈게요. 당신이 싫은 건 아니에요 다만, 도냥이에겐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호호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직장인 도냥이의 자아가 간신히 이 말을 참아낸다. 휴 오늘도 내 회사 평판을 지켜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동료와 함께 지하철을 탄다. 물론 이때도 얼굴은 웃고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울상이다. 가끔은 일보다 퇴근 후에 같이 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스트레스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같이 가는 시간이 길지는 않다는 것이다. 예전 근무지에서는 지하철을 사십 분 정도 타면 팀장님과 이십 분을 같이 갔었다. 이때 느꼈던 어색함과 불편함은 아직도 선하다. 


다행히 지금은 근무지가 집과 많이 가까워졌다. 회사에서 내가 내리는 역까지는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십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직장 동료랑 스몰토크를 하는 게 왜 이리 힘든 지 모르겠다. 십 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내가 내가 봐도 참 유난이다 싶을 때도 있다. 그거 십몇 분 같이 간다고 뭐 세상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근데 내게는 이 일이 너무나도 힘들다. 지하철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주제도 마땅치 않다. 취미가 같다면 이것을 물꼬로 신나게 이야기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거기다 난 영상 콘텐츠들도 잘 안 본다. 스포츠도 안 본다. 이러니 더욱더 할 얘기가 없다. 


그렇다고 “요즘 마음이 어떠신가요? 행복하신가요?”라고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대화가 내 취향에 더 맞긴 하는데 이런 속얘기를 할 사이도 아니고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기도 하다. 


또 이런 얘기를 했다가 회사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질 수도 있다는 공포심도 있다. 지금도 브런치를 한다는 사실도 회사 사람에게 절대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피상적인 이야기들만 하게 된다. 일 얘기, 부동산 얘기 등이다. 이런 얘기를 한창 쏟아내고 나면 속이 허하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내뱉은 것 같아서다. 이런 얘기를 하면 할수록 몸이 시드는 느낌이다. 관심 없는 일을 하는 건 근무 시간이면 충분하다. 


새삼 직장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이렇게 힘든 일을 매일 하면서 다니는 걸까? 난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대화의욕이 더욱더 떨어지는데. 그럼에도 이것도 회사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사회성을 마른걸레 쥐어짜 내듯 쥐어짜 내고 얘기를 하고 내리면 그 짧은 시간에도 녹초가 된다. 마치 감옥에서 출소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시간에 책을 보면 충전되는 것과 대조된다.       


지하철에서 읽는 그 십 분 가량의 독서랑 동료와의 대화는 대비된다. 대화 농도 차이가 크다. 전자가 갓 나온 카페라테를 먹는 기분이라면 후자는 얼음이 다 녹은 카페라테를 먹는 것 같다. 무슨 차이냐고? 당신 카페라테를 좋아하지 않으시는군요. 


여하튼, 책은 저자가 인생을 담아 각 잡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갈하게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직장 동료와의 대화에서 이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벼운 스낵 같은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된다. 아빠가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스낵을 좋아하지 않게 됐나 보다. 


Image by Ai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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