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회사에 인사이동이 있었다. 내 위에 있던 과장님이 다른 부서로 가고 나와 동기인 Y가 이 자리로 왔다. 나보다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 이 자리로 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알고 보니 우리 팀장님이 그를 부른 것이었다. Y는 팀장님과 신입 때부터 일을 해온 사이였다. 그때부터 팀장님은 그를 좋게 보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기회가 있을 때 그를 불렀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팀장님이 Y가 종종 어려운 일을 잘 처리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나에겐 이런 일이 당혹스러웠다. 내가 그보다 이 근무지에 더 오래 있었기 때문에 내 위에 있던 과장님 자리로 내가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내 위에 동기 Y가 온 것이다.
이 사실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팀장님이 날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난 유독 이런 상황에 힘들어한다. 배우자인 HJ와 싸울 때 서운했던 점들도 보면 대부분 다 나를 못 믿는다고 여겨질 때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신뢰할만한 행동을 보여줘야 신뢰하지!” 맞는 말이다. 난 한 음식점을 골랐다가도 오분 후면 다른 곳에 가고 싶어 진다. 어느 때는 HJ가 날 사랑한다고 느끼다가도 안 좋을 때는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맞는 말이 아프다는 걸 우리 아내는 알까?
여하튼, 내 이런 감정과는 별개로 인사 이동은 진행됐다. Y가 오고 한 달간 같이 일해보니 그는 좋은 평판답게 훌륭했다. 사실 “얼마나 일 잘하는지 보자”라는 심술도 있었다. 그런데 같이 일해보니 그를 인정하게 됐다.
Y는 일도 열심히 하고 탁월했다. 남들이 쉴 때도 그는 일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그가 하는 질문 하나하나가 핵심을 찔렀다. 처음에는 그가 새로운 곳에 와서 잘 보이는 건가 싶었는데, 계속 같이 일하다 보니 그가 탁월한 것이었다. 나는 놓치고 그냥 넘어가는 내용도 그는 집어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들을 이야기할 때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며 감탄했다.
또 팀장님에게도 쉽게 척척 보고를 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조리 있게 잘 말하는지 신기하다. 난 아직도 팀장님이 날 부르기만 해도 몸에 잔뜩 긴장이 된다. 보고할 때도 이런저런 피드백을 받을 때도 많다.
심지어 성격도 좋다. 동료들과 대화도 스스럼없이 잘한다. 개인적으로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취미도 헬스다. 동기 모임에서도 제로콜라가 아니면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한다.
경험해 보니 팀장님이 왜 이 친구를 불렀고 중용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상사라도 나보다는 그 친구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런 냉혹한 진실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내 안에서 여러 감정이 요동친다. 그의 탁월한 일처리를 보며 감탄하는 마음이 있다. 한편으로 비교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
내 안의 악마가 "동기 Y는 저 정도 하는데 너는 회사생활하면 그동안 뭐 했어?"라는 말을 내 귀에 속삭인다. 얼마 전 삼 년간 같이 일해왔던 과장님도 Y를 보면서 나에게 저렇게 일을 하라며 직접적으로 비교당해서 그런 걸까.
겉으론 아무런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런 게 열등감인가. 그에게 감탄하고 있는 그대로 그를 대하고 싶은데 왜 난 그럴 수 없을까? 나에게 왜 저 친구의 잘남이 위기로 느껴질까?
내가 내린 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내가 인생을 제로섬게임이라고 인식해서 그렇다. 제로섬 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이득을 얻으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 그러니 이 세계관에선 그가 잘하는 만큼 내가 손해를 본다. 하지만 정말 인생은 제로섬 게임인가?
논리 실험을 해보자. 그는 탁월함을 무기로 나보다 빠르게 승진한다. 그와 같은 탁월한 사람이 위로 올라가는 게 조직에도 좋고 결과적으론 나에게도 좋다. 위 사람의 안일한 단편적 판단으로 아랫사람은 바쁘고 복잡하게 움직여야 한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인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두 번째는 내가 목적지로 가는 길은 하나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그러니 그 길로 누군가 빨리 가고 있는 것 같이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모두가 죽음이라는 종착지로 향한다는 점 하나뿐이다. 이런 엄중한 진실을 생각해 보면 빨리 가고 늦게 가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어차피 갈 길이라면 나랑 맞는 길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나랑 맞는 길이라는 건 내 타고난 기질과 환경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이 즐겁건 고통스럽건 별개로 말이다. 그러려면 일단 나를 잘 알 필요가 있다. 내 장점과 단점 기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와 맞는 길을 선택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길을 빨리 가기보다는 여러 길을 걸어보고 나에게 맞는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출처 : Ai Co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