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료하다면 세 가지를 바꿔라.
Y : 대리님 요즘 뭘 해도 재미가 없어요.
도냥이 : 그래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시잖아요. 일도 잘하시고.
Y : 그런데 그러네요.
의외였다. 동기인 Y는 신중한 성격으로 일처리도 꼼꼼해서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현재 팀장에게도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고 팀장이 다른 부서로 이동할 때마다 꼭 같이 데리고 다니는 인물 중 하나였다.
거기다 얼굴도 준수했고 주기적인 헬스와 엄격한 식단관리를 통해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다. 이렇게 그의 넓은 어깨와 핏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전완근은 섹시하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그였다.
한 때는 이런 그를 질투하며 내 브런치에 열등감 어린 글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인생이 무료하다는 그의 말에 “저런 사람도 무료하면 누가 재밌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 말이 사람 사이에 으레 하는 인사치레인 줄 알았다. 처음 본 회사 사람에게 할 말이 없으면 하는 "어디 사세요?"같은 말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일주일동안 하는 그를 보면서 정말로 이런 고민에 빠졌구나 깨달았다. 그는 인생에서 노잼시기를 겪고 있었다.
회사에서 받는 인정도 준수한 얼굴과 탄탄한 몸도 그의 무료함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전형적인 인프피인 나는 이럴 때 망상에 빠진다. 만약 내가 상담사고 그가 내 의뢰인으로 왔다면, 그에게 어떤 해결책을 내줄까 고민한다. 물론 이런 내 해결책은 브런치 속에서만 남게 될 거다. 그럼에도 망상은 재밌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다시 상상 속으로 돌아온다면, Y의 고민은 그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고 무슨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난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그에게 세 가지를 바꾸라는 처방전을 내린다.
첫 번째는 장소다. 내가 활동하는 바운더리 너머로 가야 한다. 그에겐 해외여행을 혼자 가볼 것을 권한다. 반드시 혼자 가야 한다. 그래야 먼 타국에서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온전히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나라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내 본질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장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리프레쉬되는 건 덤이다.
두 번째는 사람이다.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 모든 사람은 각각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 한 명이 소우주라는 말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나는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가는 셈이다. 위에서 얘기한 해외여행을 가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싸다.
이런 면에서 솔로인 그에게 연애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따지지 말고 조금이라도 괜찮다면 편하게 만나보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해외여행을 갈 때 그렇게 엄격하게 장소를 따져서 가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좀 더 편하게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거다.
세 번째는 시간이다. 내가 뭔가를 하는 시간을 바꾸는 것이다. 이걸 하려면 본인이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래서 내가 한 행동과 시간을 적는 데일리리포트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게 귀찮다고 느껴지면 본인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새로운 것을 배워보라. 그럼 자연스레 시간이 바뀌고 장소와 사람도 바뀐다. 일석 삼조다. 상대적으로 정적인 그가 오히려 동적인 취미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춤 같은?
듣다 보면 느끼겠지만 이 세 가지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장소를 바꾸면 사람과 시간도 바뀐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실천할 수도 있어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참고로 이 처방전은 부모님 집에서 발견했다. 유튜브를 자주 보는 엄마는 인상 깊은 내용을 벽장에 A4용지로 써서 붙여두곤 했다. 여기에 삶을 바꾸기 위해선 장소, 사람, 시간 이 세 가지를 바꾸라는 내용을 봤다.
사실 이 문제가 Y 것만은 아니었다. 나 또한 회사에서 노잼 시기를 겪는 중이다. 이런 면에서 그에게 한 컨설팅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놀이를 하다 보니 느낀 건데 앞으로는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보단 나에게 먼저 물어봐야겠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처방전을 내린다고 상상하면서 하면 더욱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