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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Jun 27. 2024

나는 별거 아니다. 그러니 너도 별거 아니야.

우리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다.

유시민 작가 신작인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읽고 있다. 이렇게 쉽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저자가 책에 대해 말하는 육성도 듣고 싶어 진다. 유튜브에 유시민을 검색하니 매불쇼, 뉴스공장에 출연한 한 시간짜리 영상이 나온다.     


클릭해 들어갔다.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책만큼이나 정돈된 유시민 작가의 언변을 감상하고 나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작동했다. 


뉴스공장 앵커인 김어준 씨 영상이 내 유튜브에 뜬다. 일 분도 안 되는 짧은 쇼츠다. 이 정도는 볼 수 있지 하며 클릭해 본다.     


영상에서 누군가 김어준 씨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김어준 씨는 무서운 게 없으세요?”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본인은 무서운 게 없다고 말을 꺼내고 잠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저는 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깐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이 말을 듣는데 전율이 흘렀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힘들었던 핵심을 꼭 찔렀기 때문이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자의식 과잉이다. 이렇게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자기 애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이런 공공장소에서 글을 쓸 리가 없다. 그것도 일 년 넘게 꾸준히. 나뿐만 아니라 브런치에 글을 쓰는 대부분 작가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쓰다가 이렇게 자아 비대해지는지 이미 과잉이 된 사람이 글을 쓰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과한 자아는 글 쓸 때 도움이 된다. 나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지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좀 더 불편하게 느낀다. 이런 불편함 하나하나마다 글쓰기 소재가 된다.      


꾸준히 쓰기 힘들어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소재 고갈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점은 대단히 유용하다. 지금까지 글을 써올 수 있었던 건 이런 기질에서 비롯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선 이 점 때문에 힘들어진다.      


상대가 무심 코하는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서 아르바이트생이 주문받을 때 불친절하다고 느끼면 기분이 상한다. 회사에서 상사인 차장님이 표정이 좋지 않으면 혹시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한다.      


다 비대한 자아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다. 아르바이트생이나 차장님이나 아무 생각 없을 확률이 높다. 있어도 어제 잠을 못 잤다는 등 대부분 내가 아닌 다른 것에서 비롯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동안 경험으로 봤을 때 내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이런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행동은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 낭비인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특별하다. 하지만 이 세상 20억 인류 모두가 특별하다면 내가 과연 특별한 것일까. 마치 무한도전에서 전원 간부화를 외쳤던 노홍철이 떠오른다.      


우리는 이미 이것을 어렸을 때 경험했다. 부모의 사랑을 형제와 나눌 때 그렇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도 알게 된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사람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진실과는 별개로 세상은 우리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매체에 생각을 내재화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게 진실은 아니다.  

   

집 프린터 옆에 있는 A4용지를 꺼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난 별 게 아니다.” 그리고 뒤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였다. “그러니 너도 별거 아니다.” 요즘 이런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뇐다. 나만의 주문이다.    

  

이런 문장을 처음 들은 아내는 별로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 문장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자유를 준다. 난 별 게 아니다. 난 세상에서 그리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우주의 먼지와도 같다. 내가 뭘 한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행동마다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고민하는 삶을 얼마나 힘든가. 사람들은 유재석을 보면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난 저렇게는 못살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래도 그렇지만 타인에 대해서도 크게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별 거 아닌 것처럼 상대 또한 그렇다. 좋게 보여도 인간은 다 그 환경에 맞는 고민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쓸데없이 큰 기대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실망할 일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도 크게 주눅 들지 않게 된다. 나도 너도 별거 아니니깐. 굳이 비굴해질 필요가 없다. 

   

오늘 회사에서 연차를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입력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괜찮다. 나 별거 아니다. 그러니 이런 실수 저지를 수 있다. 다음에 안 하면 되지. 오늘 늦잠 자서 오후 12시에 일어났다. 괜찮다. 나 별거 아니다. 이렇게 일어나도 세상에 큰 지장 없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 올려서 누가 안 좋은 댓글 올리면 어쩌지? 괜찮다. 나 별거 아니다. 


마음속으로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나 별거 아니다. 그러니 너도 별거 아니다. 



ps. 남에게 얘기하면 된다. 대부분 화낸다.(아내 포함)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Image by Evgeni Tcherkasski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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