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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Oct 09. 2024

이제는 숙론이다.

누가 옳은가에서 무엇이 옳은가로

핸드폰 상단바에 교보문고 알림이 떴다. 화면을 보니 신작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교보문고에서는 좋아하는 작가를 등록해 두면 그가 신작을 낼 때마다 알림이 온다. 가슴에 설렘이 주입됐다. 독서가의 낙 중 하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신작을 냈다는 소식을 알게 됐을 때니깐. 어떤 작가님일까 궁금해 알림을 눌러봤다.


저자 이름을 보니 최재천 교수님이다. 이 분 신작 알림을 받은 지 삼개월도 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새로운 책이 나왔다니 놀라움이 앞선다. 한 편으론 읽어봐야 할지 고민도 됐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최재천의 곤충사회>를 읽고 실망해서다. 


책 제목만 보고 곤충의 생태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웬걸 알고 보니 교수님이 그간 했던 대중 강연들을 모아둔 책이었다. 곤충에 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더 속아보겠다.


전작이었던 <통섭의 식탁>, <최재천의 공부>를 재밌게 보기도 했고 책 제목인 <숙론>이 뭔지 궁금했다. 


저자인 최재천교수님을 짧게 소개해보자면 그는 소탈한 언변과 푸근한 인상과 별개로 대단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은사님이 우리나라에는 <통섭>, <지구의 정복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개미와 사회 생물학 연구의 대가인 에드워드 윌슨이다. 


이런 대가 밑에서 그는 민벌레와 성선택 이론 등을 연구해 이 분야의 최고가 되었다. 그 밖에도 하버드대학교에서 펠로우나 기숙 사감으로써 각종 다방면의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교류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동물 생물학 백화사전에 세계적인 과학자 530명을 총괄하기도 했다. 그 밖에 동강댐 전면 백지화나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 내는 데 기여하는 여러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실천하는 지식인이시다. 최근에는 서울대에서 "혼자 잘 살면 무슨 재미냐"는 축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 제목처럼 숙론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용어가 낯설게 들릴 텐데 당연하다. 저자가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토론이나 토의 같은 단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오염되어서 새로운 용어를 만드신 거다. 


책에서 우리나라 토론문화는 너무나 논쟁적이라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온 게 숙론이다. 서로를 존중해 가며 토의하면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의미다. 책에서 나온 정의대로 누가 옳은가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책에 장점은 얇다는 점이다. 빠르게 읽을 수 있고 술술 읽힌다. 이 책에 따르면 본인 글을 오십 번은 넘게 수정한다고 하셨는데 그 결과물인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알차다. 교수님 책을 여러 개는 봤기 때문에 중복되는 내용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쓰셔서 그런가 처음 보는듯한 신선함이 있다. 예전 교수님 책에서 같은 내용이라도 다시 쓰시려고 노력하신다고 들었는데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가 토론 수업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가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그동안 우리가 토론을 못하는 이유를 까라면 까 식의 위계질서를 중시한 문화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페미니즘이 부상함에 따라 남성들이 불편함과 억울함을 드러낼 거라는 예측을 이미 했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왜냐하면 그동안 남성 쪽으로 쏠려있던 저울추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데 완전히 중간에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설명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남자들의 억울한 소리가 단숨에 이해가 됐다.


실제 숙련할 때 팁도 유용했다. 그는 미국 간판 프로인 <나이트 라인>에서 메인 앵커 테드 카펄의 인터뷰 기법을 소개한다. 이 것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할 때 바로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그에게 이런 주제를 물어볼 것이라고 얘기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쉬운 질문을 해서 먼저 질문받은 사람이 답을 생각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래서 나중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을 때 좀 더 정교하고 퀄리티 높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


행정을 잘 모르던 그가 3년 동안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서 제법 성공한 CEO로 평가받은 비결도 재밌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는데 이때 그는 회의는 물론 회식 자리에서도 웬만하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직원들의 불편들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하나 차근차근 노력했다는 부분도 좋았다.  


이 책에서 내가 가져가고 싶은 문장은 아래와 같다.

    

64p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게 내가 얻은 결론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소통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잘되리라 착각하며 산다.


180p 학생들에게 칼 세이건의 이 말을 들려줘도 좋을 것이다. "질문에는 순진한 질문, 지루한 질문, 부적절하게 들리는 질문, 지나친 자기비판을 앞세운 질문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 엑스 X 팔로워가 300만 명이 넘는 필리핀의 방송인 라몬 버티스 타는 더 간단하게 마무리했다.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은 질문이다."


198p '경청의 1:2:3 법칙'이라고 알려진 조언은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쳐라."     


상명하복 문화에 넌더리가 나는 사람,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나 궁금하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림 출처 : Ai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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