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아니면 추구하지 않는다.
윌터 아이작슨의 책 <스티븐 잡스>를 읽었다. 이 책은 애플의 심장이었던 스티븐 잡스의 전기다.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인지라 중간에 하차에 대한 욕구가 있었으나 결국은 다 읽어냈다. 이 책을 다 본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에 대해 큰 동경은 없었다. 그가 개발한 아이폰을 쓰지 않기도 했고 깡마르면서 날카로운 그의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건 이 책을 쓴 작가인 윌터아이작슨의 <일론 머스크>를 재밌게 본 경험 때문이었다.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윌터 아이작슨 작가님은 전기를 참 잘 쓴다. 거기다 이 책이 집에 있기도 했다. 내가 산건 아니고 아내가 읽으려고 사뒀었다.
이 책을 통해서 잡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거 미친놈 아니야' 하는 구절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속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책 귀퉁이에 몇 번이나 이렇게 적었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동안 그의 기행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는 대학생 초기에 선불교에 심취해서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았다. 애플이 벤처회사였을 때 맨발로 거래처에 가서 거래를 시도했다.(근데 놀랍게도 성공했다.) 가끔 긴장을 해소한답시고 변기물에 발을 담고 있기도 했다. 물론 사무실에서 그랬다. 이것을 본 직원들은 혀를 찼지만 그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아마 누가 뭐랬다고 바꿨었으면 지금의 잡스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는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것이 본인의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것을 쓰레기 같다고 직설적으로 담당자 면전에 대고 이야기한다. 이미 결정된 사안도 본인이 성에 차지 않으면 하루에 몇 번씩이나 의견을 바꿔서 회사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철저하게 급수로 나눈다.
그래서 본인이 인정하는 A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겐 최대한 자율권을 제공하지만(그 마저도 번번이 의견을 바꾸기 일쑤긴 하다.) B, C급은 해고하거나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깔아뭉갠다. 그리고 본인의 높은 안목을 고객들에게 강요한다. 고객이 왕이다라는 우리나라 식당에 있는 문구를 그가 본다면 아마 내가 왕이다로 그가 수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행동들 저면에 있는 것은 그의 두 가지 가치관이다. 첫 번째는 최고가 아니면 상종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이다. 이런 가치관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뒷면까지도 정성스럽게 가공하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런 가치관은 추후에 그가 만들 애플맥이나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 때도 반영된다. 그리고 이 제품들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에 힘이어 세상을 좀 더 세련된 방향으로 바꾼다. 이런 일관된 성향은 사적인 영역에서도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이분법적인 세계관만 존재한다. 최고 아니면 쓰레기라는 식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기준에 오르지 못하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타협은 없다. 그래서 그와 같이 일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치를 떨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성취를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심해서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집에는 거의 가구가 없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최고가 아니라고 여기면 들여놓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 회장으로서 스톡옵션과 더불어 받은 전용기 내부를 인테리어를 본인에게 맞는 것으로 수정하기 위해 일 년이나 끌었다. 아내는 이런 그의 모습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려려니 한다.
두 번째는 선택과 집중이다. 그는 이런 점을 중요시 여겼다. 이런 그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주는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다. "나는 내가 이룬 것 못지않게 포기한 것도 소중하다"
애플에서 쫓겨나고 다시 재건을 시작할 때도 이 점을 강조했다. 쓸데없이 많았던 애플의 제품라인업을 제거하고 핵심 제품 몇 가지에만 집중했다. 보고를 하거나 받을 때도 본인은 화려한 언변과 프레젠테이션을 이용해서 유명해졌지만 내부 발표 때는 이런 화려한 ppt를 선호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잡스의 최고가 아니면 쓰레기라는 생각에 강하게 매료됐다. 아마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서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이렇게 평가하는 게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에는 다양한 부분이 있어서 어떤 부분에서는 최고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최악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준조차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은 대단히 공감이 간다. 우리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일에 많은 일을 쓴다. 인간의 편향 때문이다. 인간은 본인이 익숙하거나 하기 쉬운 일을 먼저 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런 편향을 극복하려는 잡스의 태도가 유익하다고 본다.
그의 극단성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보게 된다. 나와는 완전하게 대비되는 태도라서 더 그렇다. 나는 적당히 좋으면 괜찮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느 정도 적당하다 싶으면 만족해 버린다.
그래서 회사도 적당히 좋은 곳에 들어갔고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했고 적당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지금 취미활동들도 적당한 것들을 하고 있다. 지금도 적당한 만족을 즐기며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적당함이 주는 만족이 분명히 있다. 커다란 흥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크게 괴롭진 않다. 하지만 그의 삶을 보면서 내 모든 힘을 다해 가치 있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한구석에서 꿈틀거린다. 잡스가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유지하게 된 것은 그의 삶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