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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천 원짜리 인생 수업,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전직 임원 출신 기사님과의 짧은 대화가 내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by 도냥이

팔천 원짜리 인생 수업,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일 년 만에 택시를 탔다. 버스로 가려면 삼십 분, 택시는 고작 십 분이면 도착이었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버스를 이용하는데 오늘은 특별했다. 일주일에 두 번뿐인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두 주 연속 수업을 빠졌으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물론 이것뿐만 이었다면 버스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하필 전날 새벽까지 일한 다음 날이었다.

이미 밤샘근무로 심신이 지친 나로서는 도저히 버스를 탈 힘조차 나지 않았다.


수영 수업은 오후 두 시였다. 12시 30분 맞춰둔 알람에 허겁지겁 일어나, 아내가 어제 사둔 해물파전과 이마트 냉동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뱃속에 쑤셔 넣었다.


씻지도 않은 채, 노스페이스 여름 바람막이를 걸치고 떡진 머리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수영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서 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앱을 보니 5분 후에 택시가 내가 있는 곳까지 도착 예정이었다. 골목을 돌아오는 경로라 싶어, 대로까지 뛰어나갔다. 내가 부른 택시가 우회전하면 내가 있는 곳. 손을 흔들어 탔다.


이렇게 경로가 아닌 곳에서 타도 되나 싶어 기사님한테 여쭤보니, "어차피 타면 시작버튼을 누를 거라서 상관없다"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미 정한 경로를 손으로 드래그에서 수정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깊고 낮았다. 흔히 말하는 동굴보이스. 지적인 인상이 묻어났다.


"목소리가 좋으시네요"라고 말하고 혹시 전에 누군가를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는지 물었다. 내 나름 고도의 칭찬이었다. 이런 내 속마음을 읽으셨는지 머쓱하게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싫은 기색은 아니셨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예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쭤봤다. 원래 이렇게 말을 꺼내는 성격은 아닌데, 호감인 그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그가 말해도 통하지 않을, 흔한 '꼰대' 같았다면, 그냥 조용히 갔을 것이다. 어색함을 견디면서.


모든 택시기사님이 그렇듯 이 분도 이력이 평범하진 않았다.


기사님은 기아자동차 회계부서에서 삼십 년 넘게 일하시고 제약회사로 이직해서 몇 년간 임원으로 일하시다 퇴임해서 나오셨다고 했다. 다수 직장인이 임원까지 가지 못하고 퇴직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이었다.


그러면서 환갑을 넘겼지만 자기는 젊고 일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여러 군데 지원서를 내봤지만 면접까지 갔던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며 재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말끝마다 짧게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어딘가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의외였다. 회계라는 부서는 어떤 조직이든 꼭 필요한 심장과 같은 것이라 임원 커리어까지 있는 분이면 뽑히고도 남을 것 같은데 말이다.


회계도 문과 쪽에서는 흔히 '~쟁이'라고 불린다. 일종의 문과의 기술직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와서 일이 없으니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사님도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지시해야 하는 상황을 불편해한다. 나 역시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해서 회사에서 고작 두어 살 많은 후배조차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 풍토로 인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시니어들도 은퇴하게 만든. 사회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기술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말도 했다. 회사를 나와서도 할 만한 일을 찾아 놓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씀이 오래도록 남았다.


우리 회사에서도 회계나 인사과에서 기술직을 차별할 때가 있다.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이런 근거로 드는 것이 '너희는 회사에서 했던 일을 바탕으로 노후에도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노후에 할 일이 없는 우리는 지금 혜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에서 내리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공대를 나와 공공기관에서 기술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과연 내가 하는 일을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을까. 그 물음 앞에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퇴직 후 아파트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전 팀장님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나도 그 길을 걷게 될까.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찾아야겠다. 그동안 방치해 뒀던 브런치를 다시 열고, 한 자 한 자 타이핑을 시작했다. 작은 시작이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문장들이다.


택시비로 거금인 팔천 원을 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시간이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눈 이야기는 마음에 오래 남았다. 택시라는 직업에 대한 우리의 편견, 그리고 '영국이나 일본처럼 이 일에도 품격이 깃들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맴돈다.


'목소리 좋은 멋쟁이 기사님'이라는 후기를 남기고, 조용히 '다시 만나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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