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시초
마라톤의 전설에 대해선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라는 전령을 그리스 본토로 보냈다. 열심히 달려 그는 그리스에 승리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기리기 위해 마라톤이 생겼고 그가 뛰었던 거리인 42.195km는 마라톤 공식 코스 길이가 됐다.
페이디피데스의 죽음의 이면
그런데 이 죽음 뒤엔 의뭉스러운 점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페이디피데스가 페르시아가 쳐들어 왔을 때 스파르타에게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이틀 동안 241.4km를 달렸다는 사실이다. 241.4km도 달린 사람이 약 20%에 해당하는 42km를 달렸다고 지쳐 쓰러져 사망에 이른 것이다. 이 이야기는 회사원이 1시간 거리 직장에 출근하다가 쓰러져 죽었다는 얘기와 비슷하게 들린다. 42.195km는 현대인에겐 엄청난 거리지만 우리 조상들에겐 결코 아니었다. 특히 그리스 최고의 전령이었던 페이디피데스에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과거 우리 인간의 주된 사냥방법은 달리기였다. 무슨 소리냐고? 말 그대로다. 우리 조상들은 사냥하기 위해 동물이 지칠 때까지 달렸다. 루이스 리벤버그의 책 <추적의 기술>에선 칼리하리사막에 사는 부시먼이 영양을 사냥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부시맨은 사냥 전 물을 충분히 마신다. 약 35km를 평균 시속 8km로 영양과 같이 뛴다. 지친 영양의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면 부시맨은 다가가서 목숨을 취했다.
페이디피데스의 죽음의 진실
책 <진화의 배신>에선 페이디피데스가 죽은 이유가 너무 많은 거리를 뛰어서가 아닌 땀을 흘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땀을 운동 후 배출되는 노폐물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사실 우리가 격한 운동 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땀 덕분이다. 체온에 있어서 우리 몸은 오프사이드 깃발을 거침없이 들어대는 깐깐한 축구심판과 같다. 우리는 37︒ C에서 3~4︒ C 범위만 벗어나도 몸의 이상신호가 나타난다. 땀의 효율 또한 엄청나다. 땀은 실내에서 에어컨을 30분 동안 트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이런 땀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물이라는 원재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당시 페이디피데스가 뛰었던 그리스 산악지대는 열기와 습도가 높은 환경이었다. 따라서 그리스 본토로 강행군을 하던 페이디피데스의 체내 수분은 빠르게 고갈되었을 것이고 높은 습도로 인해 땀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체온이 40︒ C 이상으로 올라가 열사병으로 숨을 거뒀을 것이다. 이렇듯 탈수는 우리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인간은 탈수증을 막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소금의 역할과 역설
그리고 이런 진화의 도우미 역할을 한 것이 소금이었다. 우리는 충전기에 꽂혀있는 스마트폰과 같아서 주기적으로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다. 이때 소금은 대용량 보조배터리 같은 역할을 한다. 몸 안에 나트륨을 이용하여 체내의 물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우리가 짠 것을 먹으면 물이 당기고 저녁에 라면을 먹은 후에 아침에 얼굴이 붓는 것은 그래서이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귀했던 소금이 흔해졌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소금은 금보다 비쌌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금 1g에 소금 71000g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에 따라 소금 섭취량도 대폭 증가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평균 4.646g이다. 예전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조상들이 섭취했던 양인 0.7g과 비교해보면 무려 6.6배 이상이고 WHO 기준인 2g에 비했을 때도 2.3배에 달하는 양이다.
소금과 고혈압
이런 과한 나트륨량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혈액 내 나트륨량이 많아지면 삼투압 원리로 체내 수분이 혈관 속으로 이동하여 혈압이 증가한다. 또한 체내 나트륨을 보존하거나 동맥을 수축하는 일을 맡은 호르몬 중 하나 이상이 과다 분비하면서도 혈압이 증가한다. 즉, 소금을 많이 먹으면 고혈압에 걸리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2019년 10월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 수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 조상들의 탈수증을 방지하는데 도움을 줬던 보호 조절 장치가 이제는 고혈압을 촉발하고 점점 더 심화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리 골드먼의 책 이름처럼 우리는 지금 ‘진화의 배신’을 겪는 중이다.
참고문헌 :
책 <진화의 배신>_리 골드먼(2019)
https://www.thinkfood.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22(소금의 변천사)
https://www.price.go.kr/tprice/portal/main/main.do(소금가격)
https://finance.naver.com/marketindex/goldDetail.nhn(금가격)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364(우리나라 고혈압 환자수)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089(소금과 고혈압 간 관계성)
참고사진 : Image by Bruno Glätsch from Pixabay